2022년도 성령강림 스물셋째 주간

 

1. 스룹바벨 성전 (학 1:15-2:9 찬송가 586장 어느 민족누구게나)


이스라엘 성전역사를 보면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헤롯 성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38년간의 공사로 건설된 헤롯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 성전도 예수님 십자가 후에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지금 아직까지도 그 폐허의 잔해로 남아있는 것은 헤롯 성전의 잔해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스룹바벨 성전 건축공사 과정에 있었던 정보를 알려주는 단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학개서가 기록된 시기는 다리오 왕 제 2년으로 521년경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그 때는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학개의 기록연대인 다리오왕 제 2년은 B.C 521년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귀환명령은 B.C. 539-538년 실제로 귀환은 537-536년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전 건축 시작은 1차 귀환 후 2년 후 535-534년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이 중단된 시기는 521년(다리오 왕 2년)까지로 약 15년간 성전건축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성전 공사 중단 이유는 파사 왕에게 유대인들이 고소편지를 보내었고 그에 따라 왕이 회신을 보내 성전공사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4:21-22)
성전 공사 착수를 하여 공사의 책임을 맡았던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동참했던 백성들이 성전공사중단으로 인해 낙심하고 있을 때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 위해 선지자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 1:2-4을 읽어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2절)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3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4절)”
오늘 이같이 백성들은 성전 건축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고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집은 황폐한 채로 내버려 둔 채 너희들이 사는 집은 인테리어를 잘 해놓고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데 백성들이 성전 건축에 관심을 보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가? 왜 백성들이 가난해졌는지를 질문하면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6, 9절에 보겠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6절).”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9절)”
백성들이 이렇게 살기 어려운데 성전 건축을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고 아직은 우리에게 때가 아니라는 여론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왜 너희가 수확이 적으냐 배부르지 못하고 삯을 받아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부은 격이 되었느냐?
그 다음에 9절에서 하나님은 1인칭 표현으로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잘 사는 것을 배 아파하시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1인칭으로 말씀하시면서 "내 집은 황폐하였으나 아무도 관심이 없고 도리어 너희는 자기 집을 짓는데 빨랐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 무너졌든 파멸되었어도 관심없고 자기집 세우는데 자기들의 경제활동에만 집중하고 빨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1:10)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1:11)”
인간이 노력해도 하늘의 이슬과 물을 주지 않으면 기후조건을 주시지 않으면 땅의 산물이 멈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가 되는 중에도 한재를 주어 가져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가축과 땅에 소산에 대하여 기근 병충해 전염병 태풍으로 하나님이 불어버리므로 그 산물을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집에 대한 관심을 내 집보다 더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관심을 못 가져서 온 모든 재난을 멈추게 하고 축복이 돌아오게 하는 출발로서 성전건축을 하라는 것입니다.
2장 3절에서 질문합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3절)"
이전의 성전의 영광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 영광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 그것에 비하면 지금 파괴된 모습은 얼마나 비참한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조금 있으면 온 세상을 진동시키고 질서를 뒤집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공사를 위해 모든 나라에서 보물을 가진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성전공사를 위한 재료로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6절) 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7절)”
너희들이 걱정하는 것은 성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공사에 들어가는 돈 걱정하지 말고 오직 힘을 합하여 성전공사를 재개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전공사에 필요한 모든 은과 금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8절)”
이렇게 성전재건에 참여하면 솔로몬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이 성전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9절)”
공사하고 있는 성전이 가리키는 것이 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놀랍게 나타날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힘을 합하여 성전공사 책임을 지고 지휘하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참모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걱정하고 염려하던 문제들이 다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궁금증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살림 걱정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공사에 함께 마음을 합하여 참여하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스룹바벨의 성전공사가 재개되고 그 성전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자의 음성이 들렸기 때문에 그 큰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들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성전시대가 아니고 교회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기 원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먼저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들이 엄두를 못내어 동참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생활이 어렵고 경제가 뒷받침해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 모두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교회가 부흥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다하여 섬기면 각 가정에도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가 황금기를 만나고 부흥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입니다.

 

2. 산 자의 하나님 (눅 20:27-38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다음의 질문을 합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계대혼 제도 풍습이 있었습니다. “자녀없이 죽은 남편을 보내고 시동생과 결혼하여 살다가 시동생 죽고 결국 6번째 막내 시동생과 결혼하여 죽었을 경우에 그 사람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대답을 지켜보고 있던 서기관 중 몇 사람들은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부활시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답변하신 후 사두개인들을 침묵시킨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사후에는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한 자인 반면에 믿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으로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자입니다. 반면에 부활의 주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입니다. 결국 사후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심판의 부활과 심판을 면하고 부활하게 되는 생명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시에 사람들은 어떤 지위에 있게 될 것인가? 부활시에는 천사와 동등이요 모두가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3. 감사와 찬송의 일 (시 145:1-4, 17-21 찬송가 140장 왕되신 우리 주께)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영원히 찬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을 축복하고 송축하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매일 그리고 영원히 왕 되신 하나님을 높이고 축복하고 송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함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다윗에게 너무나 크고 능력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원해주시고 무너진 명예를 회복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구원하실 수 있었는가? 하나님은 구원하는 손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짖는 자에게 그 손을 펼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 소원을 아뢰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손을 펴서 원수를 막아내고 원수로부터 생명을 건져 주신 것입니다.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16절).”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축복하고 찬송하는가?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이다”고 하였습다. 영어성경 NIV에서는 "I will meditate on....(내가 묵상할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들-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매일 묵상을 통해서 기억하면서 찬송하고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한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일을 기념하여 감사함으로 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같은 감사와 찬송의 일은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서 공동체적으로 확대해 가야 할 일입니다.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4-5절)“

 


4. 성전 건축의 비젼 (학 1:15-2:9 찬송가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그 때는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B.C. 536년에 1차 포로 귀환 시에 돌아온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학개의 기록연대는 B.C 520년경으로는 1차 포로 귀환 후 16년 후 2차포로 귀환 후 1년 지난 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낙심해 있는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이전 영광보다 나중의 영광히 훨씬 크리라는 비전을 백성들이 보게 되리라고 합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2:9)”
그런데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1장에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일 삯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백성들이 가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나라 경제가 침체되고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1:9).”
하나님이 불어버린 이유가 무엇인가?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9절).” 하나님의 집이 황폐하였을지라도 백성들은 각각 자기 집을 짓는 데 바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어떻게 하여야 힘을 얻을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1:8).”

 


5. 말씀 신앙 (살후 2:1-5, 13-17 찬송가 179장 주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데살로니가 교회가 알고 싶은 것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재림의 진위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 안에 재림의 날이 가까웠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주의 재림으로 찾아오게 될 세상의 종말과 심판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두려워하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알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직 주의 날이 이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퍼트리는 주의 날이 임박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근거를 바울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반드시 있게 될 일은 두 가지라고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배교하는 일이요, 두 번째로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미혹자로서 아직 활동 중에 있다는 것은 아직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가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이 혼란의 때에 믿음을 가진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불법의 사람들이 미혹하는 그 일은 금새 끝나지 않고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에 필요한 것은 미혹당하지 말고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재림 전에 일어나는 혼란의 때에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들이 교회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처음에 받았던 복음의 가르침인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기초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초가 디는 전통은 오늘날 성경말씀입니다. 고난과 혼란의 때에는 말씀으로 돌아가 신앙을 살피는 말씀 신앙만이 평안을 유지하며 교회 건덕을 세우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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