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24 중심으로

무늬만 학생인것과 진짜 학생의 차이가 있다. 무늬만 학생인 사람은 공부하는 척만 한다. 공부하는데 요란하다. 환경 탓을 많이 한다. 그러나 진짜 공부하는 학생은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고 목표를 향해 생명을 던져 자기와의 싸움을 한다.

무늬만 그리스도인들과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은 육신만 교회에 있다. 복음에 열정이 없다. 영적 자람 없다.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았다. 복음이 있고, 십자가가 있고, 예수님의 사랑이 있다. 삶이 있다.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증명한다. 진짜는 고난의 계절에 더욱 빛나지만 가짜는 고난의 계절에 빛바랜 가을 낙엽처럼 떨어져버린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후손들에게 영적 유산을 물려주는 가문에 놀라운 하늘의 은혜와 기쁨과 능력이 임한다. 점점 잘되는 인생이 되고 가문이 되고 교회가 된다.

제자의 3대 요소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예수를) 따르라. 이 기준점이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짝퉁 그리스도인과 명품 신앙인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1)자기를 부인하라

자기부인의 영역은 가족포함, 취미생활, 물질, 명예, 결혼, 직업, 가치관 모든 것이다. 날마다 자기부인을 해야 한다. 내가 살아난다면 나를 죽이는 작업이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아야 한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의 길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죄로부터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확신이다,

일생동안 구원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분들 많다. 이 길이 생명이 길인지. 저 길이 생명의 길인지, 머뭇머뭇 거리다가 시간 낭비하지 말라. 문지방에 머물지 말고 문턱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가라. 머리로만 예수님을 알지 말고 가슴으로 예수님을 만나라.

문턱을 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된다.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주예수그리스도께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나의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시고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을 버리고 이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그분께 다시 재림의 주님으로 오실 것을 저는 믿는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 저는 이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 이 땅 너머 저 천국이 있음을 믿는다. 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권세를 누린다. 믿어야 문지방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갔다면,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면 일생동안 날마다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길이다. 자기부인을 잘하면 신앙이 성숙하고 깊어진다. 반대로 자기부인을 안하면 신앙이 날탱이 처럼 철이 안 들고, 깊이가 없다.

내가 살면 예수님의 말씀이 힘을 잃어간다. 나를 부인하면 말씀의 능력이 회복된다. 내가 살면 교회가 시끄러워진다. 그러나 나를 부인하면 교회가 평안하다. 내가 살면 서로 이익을 얻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나를 부인하면 더불어 잘 된다. 내가 살면 손해 보기를 싫어한다. 나를 부인하면 이웃이 이익을 얻는다. 자기부인의 영역은 늘 기쁨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의 길이다. 거룩한 손해를 보는 것을 즐기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뚝 세워진다.

자기부인의 영역은 화려한 길이 아니다. 화려한 말 타고 대장군처럼 걸어가는 길이 아니다. 초라한 조랑말타고 겸손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늘 좁은 길을 선택하라. 그러면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산다. 이럴 때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어떻게 보면 교회이다. 교회에서 내 자리를 요구하시면 안된다. 교회에서는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위해 뒤에서 섬세하게 섬길 때 교회가 세워진다.

자기부인의 영역은 모든 곳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포기하라. 그러면 거꾸로 영향력있 는 주의 일꾼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세우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은 내려 놓으라. 그러면 거꾸로 내 인생이 거룩하게 세워진다.


2)자기 십자가를 지라

제가 목사님들과 대화를 자주하는 편이다. “작은교회 한다고 주눅 들지 말라고 권면한다. 당신이 개척했다면 한 사람의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드렸다. 얼마나 귀하냐.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다. 개척해서 임대료 걱정, 교회운영걱정, 자식 교육 걱정, 등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척교회의 열악한 삶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일생 주님만 바라보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목회자들에게 당신은 정말 잘 걸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끝까지 그 십자가를 지고 가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면 인생의 스토리가 있다. 그것이 축복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자녀들을 축복하신다. 목사님이 묵묵히 기도하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헌신의 길을 걸어간다면, 그 영적인 에너지를 받는 성도들은 복이 있다라고 말한다.

좀 안정된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고 해서 우쭐거리지 말라고 한다. 기존교회에 담임으로 무임승차했다면 최소한 2배를 성장시키라. 겨우 현상 유지하면서 교회 성장 말하고, 교회 어떠니, 등 폼 잡지 말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세운 터전에 무임승차해서 살아갈 뿐이다.

규모가 제법 큰 교회를 하는 분들에게는 그들이 짊어져야할 더 큰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말라. 성도들 비위만 맞추지 말라. 목사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딸랑이가 되지 말라고 한다. 그러려고 우리를 목사로 세운 것이 아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비위맞추라고 거룩한 교회를 맡긴 것이 아니다. 거룩한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맡긴 것이다.

작은교회를 하는 분들, 규모가 있는 교회를 하는 분들,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말라. 삶의 자리에서 힘들다고, 이익이 안 된다고 십자가를 지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 십자가를 지면 믿음의 이야기들을 얻는다. 십자가를 피하면 편할 수 있지만 믿음의 이야기, 인생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향기는 경험하기 어렵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라고 한다면 피하지 말라. 정면으로 승부하라.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라. 십자가를 지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3)예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마태가 근무하는 세무서로 찾아갔다. 예수님이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 이 한마디에 마태는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5:28). 세무공무원의 삶을 청산했다.

제자란 누구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제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사도바울은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불렀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겠다는 자기 고백이다.

마태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큰 잔치를 열었다. 그 자리에는 세리들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마태에게 이 자리는 세무공무원의 삶을 청산하는 잔치이다. 세리로서는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의 장이다. 당시 세무공무원을 세리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였다. 로마 정부를 위해서 마태는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일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리와 창녀를 동급으로 생각했다. 인간취급하지 않았다. 배신자로 생각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로 생각했다.

마태는 예수님을 모시고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세리와 사람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는 마태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는 자리이다. 더 이상 세리로 매국노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의 장소이다. 앞으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살겠다는 고백의 장소이다. 제자란 마태처럼 과거를 청산하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르겠다는 성도가 제자이다.

마태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홈 베이스와 헤어질 결심을 하라. 제자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홈 베이스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바로 안전과 안락과 익숙함과의 결별이다. 성경의 사람들은 영원한 집을 찾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났다. 홈 베이스와 결별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형성된 가치관, 명예를 비롯한 상처와 미움까지도 결별해야 한다. 이것은 필요한 고통이다.

안락함과 결별을 선언하라. 그래야 성장한다. 큰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원하는가? 보장된 안전한 길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자녀이다. 보장된 인생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그는 도시를 떠나 광야로 나갔다. 홈베이스와 결별을 선언하고 광야로 나갔다.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추위와 더위와 싸웠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서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1,2).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였다.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3:9)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3:17).

죄로 찌든 인생들에게 홈베이스와 결별을 선언하고, 믿음의 거룩한 길을 걸어가라고 외쳤다. 그 결과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았다.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안락함과 결별하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에 권세 잡은 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무엇인가?(6:10-18).

우리들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 하늘에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다. 영적 전투의 승리 비결은 말씀과 기도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은 안락함과 결별을 하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

오로지 기도회가 초대교회 문을 열었다. 1장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헌신했다, 그 결과 오순절날 하늘의 열리고 성령의 능력에 취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세상 것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라. 누가복음 14:15절 이하에 큰 잔치의 비유가 나온다. “하나님의 나라에 떡을 먹는 자는 복되다”(15)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었다,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사람들을 초청했다. 모두 사양했다. 나는 밭을 샀기에, 소를 샀기에, 나는 장가들었기에, 잔치에 갈수 없다고 초청을 거절했다. 큰 잔치는 천국잔치를 비유한 말씀이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헤어질 결심을 하라.

부자 청년과 삭개오를 비교해보라. 부자청년은 하나님 나라를 포기했다. 그러나 삭개오는 하나님 나라를 선택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 부자청년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임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청년은 영생과 물질 사이에 고민하다가 영생을 포기했다. 영생은 영원한 것, 물질은 유한한 것, 영생은 이생과 내생을 연결해주는 기쁨, 물질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만 유효한 것이다.

삭개오(19)는 인생에 물질이 전부였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앞에서 삭개오는 물질을 포기하고 영생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세상 것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라. 버려야 얻는다.

값싼 은혜와 결별을 선언하라. 본회퍼는 목사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명예와 업적, 생명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던져서 하늘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돌아섬’(turning)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자기 욕망과 이기심에 비수를 꽂고 돌아서는 것을 상징한다. 돌아섬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다.

본회퍼는 값싼 은혜우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은혜이, 참회가 없는 사죄, 교회의 치리가 없는 세례, 죄의 고백이 없는 성만찬. 개인적인 참회가 없는 사죄, 뒤따름이 없는 은혜, 십자가가 없는 은혜, 인간이 되시고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로 정의했다.

그러면 값비싼 은혜란그리스도의 통치이고 부름이며 살아 있는 말씀이. 값진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가던 길에서 돌아선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그것이 혈육까지 포함한다. 값싼 은혜로만 살았던 세상 사람들은 그런 내려놓음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를 보지도 못하고 살아가지도 못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제자 되기 위해 자기 찢어짐과 비움, 돌이킴이 없다, 이런 것 없이도 제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교회에는 뱀파이어 크리스천들이 너무 많다. ‘뱀파이어 크리스천이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그리스도의 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하며 제자가 되어 합당한 삶을 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크리스천을 지칭하는 말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라. 무늬만 그리스도인의 삶을 내 던져버리라.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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