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통하는 자*는 '위로'가 아닌 '부름받음'으로 번역되어야한다.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한글개역개정)


베자 헬라어 신약성경은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네스틀레-알란트 28판은

“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이 말씀은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부르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마 5:4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를 개역개정에서는 ‘위로를 받다’로 번역했는데, '부르심을 받다'로 번역해야 합니다.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의 원형은 ‘παρακαλέω’이며 이 단어는 ‘παρά + καλέω’로 ‘불러오다, 소집하다, 청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위로를 받다’가 아닌 ‘부르심을 받다’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러한 번역 유형은 영어 번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comforted(위로받다)로 모두 번역했습니다.

4 Beati mites: quoniam ipsi possidebunt terram.

5 Beati qui lugent: quoniam ipsi consolabuntur(shall be comforted). Vulgate 번역

4 Selig sind, die da Leid tragen; denn sie sollen getröstet(comfort, console) werden. Luther Bibel 1545 번역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의 원형 παρακαλέω’(3870)는 to call(부르심) to or for, to exhort(권면), to encourage(격려) 등의 의미가 있다. 신약성경(107회, 바이블허브)에서 다양한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위로하다(받다)'와 '간청하다'로 번역되고 있다.

그리고 ‘ὅτι’를 ‘~하는 것’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때문에, 왜냐하면’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이유나 원인 관계가 드러나야 합니다.

5장 3절에서 "영이 가난한 자"가 하늘 왕국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셨으며, 4절에서 "애통하는 자들"을 부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부르심을 받는 자들"은 말씀을 외면하는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의 불의와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애통해하지 않을 때에 죄와 불의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없는 자가 세상에 넘쳐나며 그 세상은 암흑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번역하게 되면 성경의 본의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 성경번역에 난점이 발생한다. 한 어휘가 복수의 의미를 갖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에는 위로하다, 간청하다, 초대하다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대부분 '위로하다'로 번역하는데, 장정석 선교사가 '초대하다(부름심을 받다)'로 번역해야 원문의 의미에 다가간다고 제언한다. 이 글을 받고 그냥 올리려고 했는데 절대 다수의 번역자의 방향과 다르기 때문에, 편집자가 조금 더 조사하면서 사족을 많이 끼워 넣었다.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평어체는 편집자의 글이고, 경어체는 저자의 글이다.

글_장정석 선교사
편집_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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