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5).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부여받고 이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계획과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의미 있게 하는 인생이리라.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15:5). 이 사명의 삶이 주의 길을 지키는 삶이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의 변화는 과학 문명의 지배와 경제적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움직여가고 있다. 세계의 질서와 변화도 이러한 경제 논리와 정치권력의 지배구조에서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세계적 공황과 투기적 시장은 더욱 활개를 치며 사람들은 물질 중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9:8). 이러한 세상의 현상을 통하여 믿는 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세계(the world of God)가 실존하며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Theocracy, 신정정치)가 펼쳐지리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을 믿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피하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간다.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시17:7). 이 시편 17편은 개인 시편의 형태(I-Form)로서 국가 탄식시편이다. 시편 16:10절, 49:16, 73:23절 이하 등 세 구절은 재난과 질병에 당한 사람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편이다. 다만 시인의 바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시17:15).
시편 17편은 하나님이 경건한 사람은 실패하여 버림을 당하거나 넘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시17:11-12). 하나님이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여 위험한 곳에서 구하시며 또 악과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그를 구출하신다.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시17:9).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시17:13).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의롭고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가하는 그 개인적 결단과 신앙에 달려있다. 의롭게 시작된 조직과 모임도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 개인적으로 맞닥뜨려서 심판을 받게 된다.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시17:2-3).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일대일의 현존, 하나님과 나의 삶의 대화가 인생의 승패를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결과는 개인의 현존과 삶의 궤적으로 말미암는다.
시편의 세계는 육체적 질병이 죄에 대한 신의 분노와 질병의 결과라는 인과론적 편견을 가지고 표현된다. 또한 이 질병 시들에 자주 나타나는 탄원 시편에는 시인들의 원수(오옙)또는 대적자(차르)에 대해 자주 나타난다(시3:7; 6:10; 7:5; 9:3; 13:2; 4; 17:9, 25:2, 19; 27:2, 6; 31;8, 15; 35: 19; 38:19; 38:19; 43:2; 54:7; 55:3, 12; 56:9; 59:1; 61:3; 64:1; 69:4; 71:10; 102:8; 143:3, 12). 이와 상응하여 악인들(레샤임)과 행악자들(포알레 아웬, 뽀그데 아웬)이 나온다. 결국 질병과 대적자들이 시인에게는 중요한 극복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응답의 신학으로서 시편 신학’을 보게 되는데 이는 대적자들과의 대립과 긴장을 신앙으로 푸는 시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9:10).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17:7-8). 이렇게 시인은 신앙으로 살며 오직 주의 얼굴을 뵙겠다고 하며 잠에서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겠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신앙의 삶을 살아간 분이 계시다. 셔우드 홀(Sherwood Hall, 닥터 홀, 1893-1991)은 캐나다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로제타 셔우드 홀과 윌리엄 제임스 홀 사이에 태워나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던 선교사이다. 그는 1911년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 허먼 학교를 거쳐 1919년 마운트 유니언 대학을 졸업하고 1922년 매리언과 결혼한다. 1923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뉴욕 롱아일랜드 홀츠빌 서퍼크 결핵 요양소에서 결핵을 전공한다. 그 후에 그는 1925년 8월 미국 감리회 의료 선교사 파송 받아 1926년 4월 19일 부인 매리언 버텀리와 함께 내한한다. 닥터 홀은 1926년 7월 해주 구세병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의창 학교 교장직도 겸임하였다. 운산금광(동양연합 광업회사)의 담당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홀 선교사는 1928년 10월 27일 해주시 왕신리에 폐결핵 퇴치를 위한 한국 최초로 ‘해주 구제 요양원’을 설립했다.
결핵 요양원을 세우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20명 중에 한 사람이 결핵환자인데 한국은 5사람 중에 한 사람 비율로 결핵 희생자가 난다고 말한다. 결핵균이 한국인에게 피할 수 없는 병으로서 이 병에 걸리면 한국인은 불치의 병으로 알고 부끄러운 병이라고 생각하며 악귀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이 운명적으로 받는 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양원은 치료뿐만 아니라 계몽과 교육 목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결핵 문제는 박에스더에게도 있었는데, 최초의 여성 의사인 에스더는 보구여관에서 셔우드 어머니 로제타와 함께 활동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셔우드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에스더는 과로가 겹쳐서 이 결핵에 걸려 1910년 사망했다.
결핵 치료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1932년 크리스마스 실을 도입했다. 이후 1940년까지 9회에 걸쳐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으나 일본 헌병대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여 벌금 5000엔(1000달러)과 함께 국외 추방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외국 선교사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강화되고 많은 외국인들이 체포되어 강제로 추방당하던 때였다. 셔우드 홀은 화진포 별장에서 영국 신부 캐럴을 만나고, 여기서 동해안 지역 사진을 촬영했다는 혐의로 간첩의 누명을 쓰고 추방당했다. 그 이후 씰의 판매도 중단되다가 1953년 11월 6일 대한결핵 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셔우드 홀 선교사는 1941년 한국을 떠난 후 인도의 변방 지역 마르다 연합 결핵 요양원에서 결핵 퇴치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다가, 1991년 캐나다로 돌아와 그는 98세의 나이로 소천한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 남긴 글을 요약해본다. “조선을 떠나기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문다면 우리는 물론 우리가 사랑하는 조선 친구들에게 더 큰 시련이 닥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아이들을 불렀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아름답게 수놓은 조선 국기를 꺼냈다. 해주에서의 환송연 때, 조선 친구들이 기념품으로 우리에게 준 것이다. 나는 태극기를 펼친 다음 나뭇가지에 걸었다. 우리 가족은 태극기 주위에 모여섰다. 우리 가족 다섯 중 네 명은 조선에서 태어났다. 매리안도 생애의 전성기를 조선에 바쳤다. 우리 가족은 목소리를 높여 만세!를 외쳤다.” 셔우드는 화진포의 아름다움을 알았고 그곳에 별장을 지은 것이 후에 김일성 별장 되었다. 그 인근에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등이 서서 오늘도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과제, 선교 비전을 보여준다. 셔우드 선교사는 대를 이어 선교하다가 십자가 고난과 추방을 당하였다. 그 후에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이라는 책을 통해 오늘도 북한 선교와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