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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칼럼】또 한명의 어른(김삼환목사)이 사라지고 있다명성교회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공교회임을 아는가?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9.09.2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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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본헤럴드신문 발행인, 본국제신학교학장, 새길과 새일(사)부이사장, 본월드미션(재) 이사. 등 저서: 충성된일꾼되어가기,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1,2권), 주기도문연구, 등

한국 대형교회의 세습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대형교회는 그들만의 룰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어떤 독자들은 세습이 왜 문제가 되는가? 자녀가 목회자로서 도덕적 인격과 영적성숙이 되었다면 교회에게 더 큰 유익이 되지 않는가? 반론을 제기한다. 이분들의 선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본 목사도 18년 전에 지하실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그 당시 자녀들은 유치원에 다녔고, 어느듯 개척교회에서 섬기다가 벌써 대학을 졸업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려운 개척교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의 삶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그들은 자기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교회 성도들이 우선이었고, 아이들은 항상 뒷자리에 묵묵히 있었다. 대부분 개척교회를 통과한 자녀들의 환경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책임과 의무만 자녀들의 어깨에 무겁게 덮여 있고, 늘 교회를 지키는 문지기였고, 교회의 아픔과 어려움과 고통과 관계로 인한 상처들을 다 보고 자랐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훈련을 받았다. 제가 아는 목회자 자녀분들 중에 정말로 잘 훈련된 목회자들이 참으로 많다. 그렇게 훈련된 자녀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교회로서는 큰 복이며 열매며 기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습을 찬성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중소형 작은 교회에서 자녀가 대를 이어 헌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대형 교회는 부의 세습과 권력의 세습이 세트로 물려주기에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인해서 명성 교회의 세습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명성교회는 공교회를 포기했다.

신학적으로 공교회란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것이다. 교회는 개교회 하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라는 말이다. 예를들어,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작금의 사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명성교회만을 생각한다면, 아들이 아버지가 이룬 대형교회를 이어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리더십 이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그들만의 교회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띠는 교회가 되었다. 대표적인 교회는 더욱 무거운 공교회 의식이 필요하다. 공교회라는 신학적 프레임이 무너지면 내교회라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리게 된다. 내 교회란 의식이 너무 지배적이면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가 교회이다. 교회가 성도가 아니라 건물이란 부동산의 가치가 앞서면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 교회란 의식에서 주님의 교회란 의식이 더 크면 내려놓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명성교회의 잘못된 선택은 교회는 하나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만을 강조하기에 교단과 사회에 물맷돌을 맞는 것이다.

 

둘째, 명성교회는 자발적 불편함을 버리고 아주 편한 길을 선택했다.

 한국사회가 한국교회에 대한 인식을 보면, 물질지향적 사고와 건물지상주의에 빠져있다고 보고 교회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명성교회는 단순히 교회만 이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속에 함께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엄청난 교인과 부동산과 수많은 이권과 특권이 있기에 세습에 대해 사회적 시선이 따갑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말은 예수님의 정신은 무엇인가? 성경의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그 답을 찾아갈 수 있다. 자발적인 불편을 선택하는 것이 성경적인 정신에 더 가깝다. 교회는 항상 손해를 보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다. 세습을 포기하다보면 교회가 손해가 날 수 도 있고, 리더십 이양에 어려움이 찾아올 수 도 있고, 자신을 다 던져 세운 교회를 바라보며 개척 목사의 마음이 불편할 수 도 있다. 그래도 교회는 손해를 보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자발적인 불편을 감수하는 사명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난 존재이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시키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동원하는 것은 공교회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명성교회는 이미 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하기에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리더십 이양에서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이 더욱 안정적으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세습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할 때 한국교회 전체를 살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명성교회가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은 아픔이요 시련이지만 한국교회에게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힘을 세상적으로 과시하거나 독단적으로 사용할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 번째, 김삼환목사님은 한국교회의 큰 어른의 자리를 포기했다.

많은 후배들은 어른의 뒷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개척하여 명성교회를 이루기까지 큰 결단과 아픔과 고난의 세월을 극복한 큰 어른이 되었다.

김삼환목사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를 뛰어넘어 지금은 한국교회의 자산이다. 또한 한국교회사와 세계교회사의 큰 자산으로 기억되어야하고 기념되어야한다. 그런데, 후계자 과정에서 사회적, 교단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세습을 하게 되면, 한국교회는 큰 어른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아픔이며 손실이다.

한국교회는 큰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이끌어갈 한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려움앞에서 한 마디 확신있는 말을 던질 어른이 부족하다. 어른만 있다면 모든 혼란과 싸움과 갈등은 일시에 봉합된다. 그런데  현직에 계실 때 에 존경받았던 큰 인물들이 지금은 똥별이 되어 그 이름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것은 내려놓지 못한 결과이다. 세습이란 족쇄로 인해서 그들의 언어는 이미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이익과 유익과 기쁨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이익과 공익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한다. 조금 손해보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고 예수님의 정신이다.

교회의 가장 큰  두 가지 목적은 있다. 첫째는 구원받아 영생을 선물을 받는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안에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손해 보지 않고서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전부 드릴 때 찾아오는 열매이다.

성도란 누구인가?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자발적인 손해를 기쁘게 감수하며 사는 분들이다. 자발적인 손해를 기쁨과 감사로 알고 봉사하며, 섬기며, 드리며 사는 분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자발적 손해를 기쁨으로 감수하는 삶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는 열린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발적 손해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십자가의 정신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루터를 기억하라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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