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설교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설교가 성도들에게 잘 전달되어 큰 은혜와 감동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설교자의 본래 의도대로 설교 내용이 성도들에게 전달 되지는 않는다.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신앙의 정도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고, 살아온 경험도 다르다. 또 청중들은 그 당시 마음상태에 따라 서울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속 마음은 부산으로 뉴욕으로 런던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니 같은 메시지라도 받아 드리는 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설교를 듣고 교회당 문을 나서는 사람의 80%가 그날 목사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설교를 들었지만 반응은 천차만별이고 그가 가진 선입주견이나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서 자기식대로 전혀 엉뚱한 반응이 일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가 늘 성경적이고 은혜가 충만한 설교를 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확신한다. 그러나 목사의 생각과 성도들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그러니 아무리 설교자가 동서고금의 좋은 말을 해도 마음에 꽂히는 것은 별로 없다. 설교자가 폭포수처럼 설교를 쏟아 내면 그것이 은혜가 되고 전달되는 줄 안다. 또 고상하고 어려운 말을 쓰면 설교의 권위가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설교는 중학교 2학년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최고의 설교이다. 목사님들은 단순한 하나님의 진리를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말해서 청중이 알아 듣지 못하게 한다. 사실은 쉬운 설교가 좋은 설교이다.

나는 금년에 목사가 된지 52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수도 없이 여러 곳에서 많은 설교를 해 왔다. 1970년대 후반 부산 초량교회에서 경남 주일학교 교사 연합 수련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 집회는 각급 주일학교 교사들과 지도 목사들이 합해서 천 여명 가까이 모인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설교할 때 비교적 발음이 정확하고, 음성의 톤이 밝고 높낮이도 대중들에게 잘 들린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날 설교 중에 나는 힘있게 “여러분! 우리는 내 힘으로 안됩니다!”라고 단정적인 메시지를 토해냈다. 그런데 청중 중에, 어느 목사님이 갑자기 파안대소하고 웃었다. 다른 교사들은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데, 정작 목사님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껄껄대고 웃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했고, 그 후에 도무지 설교의 맥을 잡기가 어려웠다. 내가 무슨 큰 실수를 했는지? 아니면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주 난감한 체험이었다.

집회를 마치고 교회당 입구에 가서 인사를 하는 중에, 그 목사님께 여쭈었다. “내가 설교 중에 왜 목사님이 파안대소하고 웃었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아이고 정박사님 조크도 잘합디다. 설교 중에 「맨입으로 안된다」고 했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목사님의 황당한 대답이었다. 아마 그 목사님의 마음속에는 ‘맨입으로 안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맨입으로 안된다고 한 일이 결코 없었다. 그때 전후좌우를 말씀 드리면 “우리가 주님이 주신 사역을 감당할 때, 내 자신의 제주나 열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할 수 있으며, 결국 내 힘으로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개혁주의 교회의 핵심은 하나님의 항거할 수 없는 은혜(Irresitible grace)이다. 인간은 결국 자력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는다. 그런 뜻에서 내 힘으로 안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했던 목사가 진지한 <나의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총의 설교>를 잘 못 알아듣고 농담으로 받아 쳤다면, 다른 청중들은 말해 뭘할까 싶었다.

나는 반세기 동안 총신대와 대신대와 칼빈대 등에서 칼빈주의와 개혁주의 설교학을 소리 높여 외치고 발을 굴리고 고함쳤지만, 듣는 학생들은 각자 자기가 은혜 받은 대로, 각자 자기 나름대로 덧셈, 뺄셈을 하면서 강의와 설교를 받아 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설교의 한계이고 목회의 한계였다. 

또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총회의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주 강사로 1977년부터 약 40년간 일했다. 매번 강단에 설 때마다 나는 완전원고를 작성하되 약 15회 이상의 수정 보완을 거쳐 최선을 다해서,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지키고 교단의 정체성을 지키자고 뜨겁게 외쳤지만, 정작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은 모두가 이미 자신이 가진 세계관과 경험에 갇혀서,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받아 드릴 뿐, 자신이나 교회가 변화됐거나 개혁되었다는 소문은 별로 못 들었다. 그래서 인간은 내 힘으로는 안되고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혜로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내 힘으로 안된다」는 말을 「맨입으로 안된다」고 내 설교를 들었던 그 목사님이 내 글을 보고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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