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House Head)의 가정예배의 의무와 개인예배의 지도

코로나 바이러스(COVID 19)의 급속한 확산 가운데서 지금 한국사회 전체가 코로나 포비아(phobia)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 양상이 마치 호러(horror)물 속의 좀비(zombie)에 대한 공포를 방불케 한다.

사실 좀비의 아이디어는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에서 주술사들이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컬은 데서 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좀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할 길이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의식을 통해 철저히 마술사의 주술에 종속된 존재로서의 좀비의 개념 가운데서 실질적으로는 그 주술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는 부족들을 마술사의 주술에 종속된 좀비들로 만들 뿐이다. 즉 실체가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고양시켜서 다수의 사람들을 주술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장대선 목사
장대선 목사

그런데 한국 사회에 창궐해 있는 코로나 포비아의 생산지인 신천지라고 하는 이단도 마치 부두교의 주술과 같은 것에 현혹되어 있는 자들의 집단적인 무감각에 빠져 있다. 즉 좀비와 같이 스스로의 판단력이나 합리적인 판단을 위한 정보를 들을 수 없도록 하는 이만희의 주술에 오래도록 노출된 가운데서의 죄에 대한 무감각으로 말미암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교롭다.

무엇보다 코로나 포비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신천지들이 아니라 개신교 진영이다. 최소한 지금 개신교 진영의 패권을 주도하고 있는 대형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치리자들이 거의 경험한 적이 없는 보편적 두려움 가운데서, 마치 집단적인 주술에라도 사로잡힌 듯 여러 교회들이 스스로 공예배를 멈추고서 잠정적으로 예배당을 폐쇄하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분명 코로나 포비아의 실질적 피해는 개신교 진영의 대형교회들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처럼 치명적이고 두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적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안일한 생각처럼 비칠 수 있겠지만, 바이러스의 창궐과 사망자의 발생 수치는 사실상 그리 충격적인 수치는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치료책이 없기에 심각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치료책을 찾을 수 없는 질병이 코로나뿐이겠으며, 확산 속도와 사망률 또한 흑사병이나 천연두와 같은 것에 비하면 그리 놀랍지도 않은데도 선제적으로 만연해 있는 공포심이 사뭇 기독교에까지 위해를 가하고 만 것이다.

급기야 온라인 예배다 뭐다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코로나 포비아에서 발생하는 유일한 유익이 바로 그러한 약간의 발상 전환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우리의 신앙패턴이 그동안 지나치게 집단적이어서 오히려 신자들로 하여금 예배당을 떠나서는 거의 신앙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아닌지, 그러므로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개인들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닌지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된 점이 거의 유일한 유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예배당을 떠나서는 스스로 경건할 수 없을 신자들에 대해 현실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사실 장로교회의 신앙은 전통적으로 가정과 개인의 경건의 의무를 중요하게 강조해 왔었다. 단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에 포함되어 있었던 가정예배모범(1647)을 살펴보면, 목회자와 치리회가 지도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이 바로 가장(House Head)의 가정예배의 의무와 개인예배의 지도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심지어 노회에서까지 가정예배를 위해 가장을 세우고 지원하는 문제가 다뤄질 만큼 중요한 신앙의 패턴이 바로 가정에서와 개인으로서의 경건생활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장로교회의 신앙에 있어서 유독 약한 것이 바로 가정과 개인의 경건생활이다. 그나마 가정예배를 하는 가정이라도, 실질적으로 가장이 목회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그저 QT책이나 매일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묵상 수준의 예배로 가정에서의 예배와 개인의 경건 생활을 대치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코로나 포비아로 말미암아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발생한 작금의 상황은, 그동안 우리들의 신앙과 경건이 얼마나 빈약한 수준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그토록 사랑하던 교우들이지만 코로나 포비아로 말미암아 대화나 만남조차도 우려되는 현 상황이, 마치 좀비에게 물리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이었던 사람이었던 자를 두려워하며 무참히 죽이는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판단이라 비판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차제에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냉정하고 깊이 있게,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인 성경에 의지하여 차분히 숙고해 보도록 하자는 맥락임을 고려하기를 바란다. 코로나 포비아로 말미암은 세상의 호들갑에 기독교 신앙이 너무 쉽게 내탕고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하는 생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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