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다가 이제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원장일을 보고 있으며 여러군데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있으며 어려운 문제 함께 의논하고 상담하기를 좋아한다. 미 공인상담사및 코칭 자격을갖고있다.
나사렛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다가 이제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원장일을 보고 있으며 여러군데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있으며 어려운 문제 함께 의논하고 상담하기를 좋아한다. 미 공인상담사및 코칭 자격을갖고있다.

부부관계에서 육체적 고독과 심리적 고독이 있다. 육체적 고독이란 집 안에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 홀로 식탁에 앉고, 해 저문 후 당신 홀로 집에 있고, 잠자리에 홀로 드는 것이다. 이것이 육체적인 고독이다. 심리적인 고독은 삶에서 자신이 홀로라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냐고 묻는다면 세월이 지나면서 후자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승리를 함께 나눈다거나 시련을 견디어 내도록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삶의 방향을 자신이 혼자서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심리적인 고독이다.

때때로 이혼한 사람들은 그만큼 더 고독의 실재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어느 경우는 이혼한 후 끊임없는 활동으로 자신을 혹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즉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함으로써 고독에 대처한다. 비록 전 배우자들의 거절로 상처를 입었지만, 곧 다른 사람들을 찾는다. 이혼 당한 여자의 2/3와 남자의 3/4이 다시 결혼한다.
재혼과 재수강의 공통점을 아는가. A+가 될 것이라는것~~~

왜 그렇게 많은 버림받은 사람들이 곧 다시 부부의 한편이 되는가? 그 한 가지 이유는 이혼으로 인하여 생겨난 두려운 고독 때문인 것이다.

이혼으로 인한 고독을 가장 적절하게 다루는 것은 시간을 가치 있는 활동으로 메꾸고, 휴식과 휴양에 적절하게 시간을 분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믿음 생활에 충실을 기하고 믿음의 공동체에 자신을 위탁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혼한 사람은 좌절을 체험하게 된다. "내게는 살 이유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련다." 분노, 자기 위축, 그리고 고독이 더 이상 살고 싶은 욕망을 앗아간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버림을 당하고, 심지어 정서적인 여파로 죄책감, 분노, 고독, 좌절에 싸여있을 때에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변통수단이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가족에게서 도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힘은 이혼 당사자를 좌절의 위기에서 끌어 낼 수 있다. 보살펴 주는 가족들의 사랑의 관계가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주는 환경을 마련해 준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친구들이 도움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친구란 온 세상이 물러갈 때에 다가오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거나 개발함으로써 고독과 싸울 수 있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감정을 회복할 수 있고, 서서히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다.

또 미래 그 자체가 도움이 된다. 시간은 치유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육체적인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또한 시간이 지나면 이혼으로 인한 심리적인 상처도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이혼한 여인들의 한 그룹에게 거절과 이혼의 상처를 치룬 후 저들의 상태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저들의 88%가 결혼했을 때보다도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들이 이혼한 당시에 내린 처음의 평가는 매우 희망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가장 본질적인 도움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일찍이 광야에서 하갈은 하나님께 향하였으며, 그분은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창 16:13)이심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에 관한 이 위대한 진리는 그녀의 생활이 뒤범벅이 되는 동안 잊혀졌었다. 그런데 다시 이 광야에서 이 진리가 한 번 더 깨우쳐지고,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 샘물이 보였고, 물자루에 물을 채워 아들에게 주었다(창 21:19).
이것은 단지 하갈이 체험한 한 실제적인 단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는 체험의 모형이다. 이혼은 죄책감에서 좌절로 진전되는데, 이는 우리의 초점이 우리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눈으로 볼 때에는 곤경으로부터 헤어날 방법이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보는 눈은 바뀐다. 이제는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것, 즉 하나님 안에 있는 샘물을 볼 수 있고, 이 샘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적으로 소생될 수 있는 것이다.

재혼과 관련되어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다양하다. 첫째, 영적인 부분이다. 만일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재혼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일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재혼이 죄책감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이 죄책감이 때로는 신앙을 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만일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자신의 재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며 어떤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상담자는 일차적으로 재혼에는 참회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모든 재혼은 설사 성경적으로 허용 가능한 경우일지라도 하나님의 이상으로부터의 한 퇴행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거만스럽거나, 아니면 온정주의적 방식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대신해서 심판의 자리에 서는 듯 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관련 당사자들인 그들은 물론이고, 우리들까지를 포함하는 죄의 보편적 오염을 고백하는 방식이지 않으면 안 된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이상 태도를 드러낼 수 있다. 불안신경증은 흔한 증세이다. 이전의 결혼 실태에 따른 충격과 새로운 환경의 도래에 따르는 심리적 부담은 불안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가벼운 증세로 끝날 수도 있으나 심각한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상담자는 재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결혼인 한에는 모든 결혼의 원리가 재혼하려는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그들 또한 새로운 가정을 꾸밀 것이기 때문에 그 가정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신시킬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결혼제도, 하나님이 그들 영혼을 사랑하심을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같은 원리로써 재혼하고자 하는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께 자신들의 문제를 내려놓고 용서함을 입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새로운 가정으로 축복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불안을 느끼는 재혼자들에게 큰 위로와 안정감을 선사해 줄 것이다.

사회적인 부분에서 부조화를 일으킬 수 있다. 재혼자들에게는 필시 각각 다른 가정의 문화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혼 전에 부모 밑에서 형성된 습관이나 문화 혹은 가족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때는 성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피동적인 가정 문화지만 재혼 때에는 이미 성인이 된 후 능동적으로 형성해온 가정 문화이기 때문에 더욱 이질적이고 융화되기 어렵다.

자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상이한 가정에서 상이한 가족 문화 속에서 자란 자녀들이 새삼스럽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족 간의 문화 충돌이 야기될 수 있고 역할 혹은 영역 고수를 위한 긴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심방 상담자는 재혼 문제를 재혼 당사자의 문제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가족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상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상담자는 가족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가족상담 기법을 활용해 볼 수 있다.

교회 구석에만 보이던 이혼자들이 이젠 여기저기 앉아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젠 수많은 이혼자들을 교회가 품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지만 그들만큼 아프고 힘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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