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이어트(DIET)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한 삶과 효율적인 삶을 살기 위해 유해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빼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사전적 의미는 ‘치료나 체중 조절을 위한 규정식, 식이요법, 덜먹기’이다.

다이어트는 유래는 종교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다. 수도자들이 종교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금식을 했다. 종교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다이어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사람이 가장 적게 먹고 일상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체격의 신장을 155cm로 정하고 그 에 맞춰 식사량을 주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잠수함을 만들었을 때 잠수함의 크기가 작아 승무원에게 감자 다이어트를 시킨 기록도 있다.

다이어트의 방법을 18세기 초에는 비누를 갉아먹는 다이어트, 19세기에는 설사약을 먹는 다이어트도 있었다.

이번 코로나19의 재난을 겪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현대인들이 누리는 모든 분야의 풍요로움에서 절제하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부족해서 오는 부작용보다 풍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 더 많은 것 같다. 과잉보호, 과잉영양, 과잉진료, 과잉진압, 과잉행동장애 등 “과잉”이 일반화된 현상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육체와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증후군으로 고착되어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여 사람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로나19에서 다이어트를 생각한 이유는 특이하게 부유한 국가(이란은 제외)에서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분별한 성장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제동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가족에게 큰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삶의 보람과 행복을 위해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생활의 다이어트, 사회활동의 다이어트는 물론이고, 불꽃을 태우며 몰입하기 위한 자신의 철저한 자기관리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다이어트는 불필요한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필요한 음식은 섭취하는 관리법이다. 필자는 육체와 정신에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제언한다. 만보에 턱없지만 최소한 30분 이상 걷기를 추천한다. 보다 과격한 걷기를 위해서 등산을 추천한다. 산책하면서 자연 경관을 통해 공간의 조화와 시절의 감각을 느끼며 정서적 충족까지 만끽할 수 있다. 안전한 지역에서는 찬송과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도 있다. 거대한 심포니보다 더 아름다운 공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먹지 않음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공간에서 분리를 제언한 것이다.

밀집 지역에서 전염병이 발생하니, 해결을 위한 방법은 격리뿐이지 않는가? 격리가 불가능하니 적절한 거리두기(2m 이상)를 제언하고 있다. 육체와 정신 건강을 위해서 나의 치열한 삶과 적절한 거리두기를 시작해 보자. 그것이 코로나19에서 보는 다이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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