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 19:1-10] 여리고의 삭개오.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맹인을 고쳐주시고(눅 18:34-43), 삭개오를 만났다. 삭개오는 여리고에서 세리장이고 부저였다(2절).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보려고 했지만 키가 작아 볼 수 없었다(3절). 돌무화과나무(옛날 뽕나무로 번역했음, 지금 여리고 있는 돌무화과나무의 수령은 약 5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간혹 2,000년이라고 하는데, 2,000년 그 나무가 있었다할지라도 삭개오가 올라 보기에 적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에 올라가 예수를 보려고 할 때에, 예수께서 삭개오를 불러 집에 가겠다고 하셨다(5절). 삭개오는 기쁘게 예수를 영접했고(6절) 사람들은 수군거렸다(7절). 삭개오는 예수께 자기 소유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하며, 부당 행위에 대한 것은 갑절을 갚겠다고 용서프로그램을 제시했다(8절).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언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다(9절). 인자가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왔다(10절). 인자가 온 것은 전도하러 오셨다(막 1:38, 3:14). 예수께서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셨다(10절). 

누가복음에서 등장한 삭개오는 앞에서 등장한 부자(눅 18:18-30절)와 대조가 된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부자 관리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주님의 명령에 근심하고 떠났다(눅 18:22-23절). 그러나 삭개오는 여리고 세리장이지만, 예수께서 방문하셨을 때에 재산의 절반을 내놓았고, 부정한 것을 1/4로 변상을 약속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언하셨으며, 인자께서 오신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다.

2. [눅 19:11-27] 열 므나 비유(마 25:14-30). 예수께서 삭개오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유를 더하셨다.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이루어질 줄(the kingdom of God was to appear immediately) 생각했기 때문이다(11절). 그 때 예수께서 열 므나(minas) 비유를 하셨다. 참고로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를 비교하라.

비유의 내용은, 한 귀족이 왕직을 받으려고 먼 길을 떠나야 했다(12절). 우리 번역에는 먼 나라로 했는데, 단일 국가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다. 고대 국가는 귀족 국가(공국(公國))가 연합된 형태였다. 강력한 귀족(noble man)이 공동체 집단의 왕(king)이 되는 것이다. 귀족은 먼 길을 가야했는데, 종 10 명을 불러 10 므나를 나누어 주어 장사하도록 명령했다(13절). 그리고 특이하게 그 마을에서 귀족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14절). 귀족은 먼 나라에 갔고, 왕이 되어 돌아오다. 주인의 종들이 장사했고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열 고을의 상, 17절), 둘째는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다(다섯 고을의 상, 19절). 또 한 사람은 한 므나를 싸두어 놓아 한 므나를 내 놓았다(20절). 주인은 화를 내며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종에게 주었다(24절). 그 때 모두는 열 므나나 받았는데, 한 므나를 더 주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인은 있는 자는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빼앗길 것이라고 하셨다(26절). 그리고 자신이 왕됨을 싫어하는 원수들이니 죽이라고 엄단했다(27절). 백성 중에서 왕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과 주인의 종이지만 주인을 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무서워하는 것(21절)은 동일한 부류이다. 비유에서는 숫자가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그러한 부류가 훨씬 더 많다.

1 므나(Menah)는 100 드라크마(Drachma)로 노동자가 100일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본문에는 10명인데, 3 부분(10 므나, 5 므나, 0)이 등장하기 때문에, 세 부류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마태복음 달란트 비유는 차등으로 지급했는데(5, 2, 1 달란트) 누가복음은 10명에게 1므나씩 공평하게 지급했어도 차등으로 소득을 발생시켰다. 남기지 못한 종은 주인의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다(20-22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풀리지 않은 것은 빼앗은 1 므나를 10 므나받은 자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동일한 조건에서 많이 남겼기 때문에 좀 더 이해가 되는데, 마태복음은 5달란트 받은 자가 5달란트를 남겼는데도 그렇게 했다. 결국은 많은 일을 행하는 것이 쉽지 않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필자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교육하기도 한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하기 때문에 많은 책임과 고통을 수반한다. 탁월한 사람이 편하다는 생각은 합당하지 않으며, 권력에 중독된 사람은 중독을 전달시키기도 한다. 높은 사람은 결코 편하지 않다. 수고하고 노력한 자에게 합당한 대가가 지급되는 것은 당연하다.

달란트, 므나는 은사로 이해한다. 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특별계시). 그리고 이웃에 덕을 펼쳐야 한다(일반계시). 은사의 두 종류, 특별계시를 수종할 수 있는 은사와 일반계시에 전문적인 분야로 제시할 수 있겠다. 전문직종으로 특별계시 내용의 활동을 섬길 수 있겠다. 많이 감당한 자, 많은 의무를 받은 자는 합당한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의무가 없는 권리는 부조리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권위에는 책임이 부여된다. 동일한 형태의 지도자의 죄와 일반인의 죄일 때 죄과는 다르다. “많이 남긴 자에게 더 상을 주는 것”과 야고보 장로가 말씀한 “많이 선생되지 말라”(약 3:1)는 말은 맥이 같다.

3. [눅 19:28-48] 메시아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시다(마 21:1-11; 막 11:1-11; 요 12:12-19).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운 감람원 쪽 벳바게와 베다니에 도착해서 제자 중 둘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나귀 새끼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28-34절).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나귀 새끼를 주인의 허락을 받아 가져왔다(30-35절). 예수는 어린 나귀를 타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나귀를 타실 때 안장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제자가 겉옷을 나귀의 등에 펼쳤고(35절), 가시는 길에는 제자들이 겉옷을 길에 폈다(36절). 감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실 때에 무리들이 기뻐하며 하나님을 호산나 찬양했다(37-38절). 바리새인들은 염려하며 예수께 거부하도록 권면했다(39절). 예수께서 그들의 외침을 기쁘게 수용했다(40절).

예수께서 성에 가까이 오셨을 때, 성을 보시며 우셨다.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감람산, 기드론 골짜기로 성으로 입성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윗의 도성에 다윗의 아들께서 입성하는데, 예루살렘에서는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은 살렘의 성, 평화의 성인데, 참 평안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곳이다. 샬롬의 왕께서 샬롬의 성에서 죽임을 당하신다. 그 참 평안을 볼 수 없으면 참 평안을 죽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42절). 모르고 행하는 죄악을 어찌할 것인가? 십자가 이후로 허용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토둔(土屯, embankment)을 말씀하시며 그 날을 경계하셨다(43-44절). χάρακά를 토둔으로 번역한 것은 좋은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 번역에서 barricade, trench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는데, ‘토둔’ 번역이 상당히 좋다. 토둔(土屯)은 토성(土城)에서 개역하여 번역한 것이데, 어려운 번역이지만 좋은 어휘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서 마사다의 마지막 항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았다(45-46절). 그리고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셨다. 이에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다(47절). 그러나 어떤 방도를 찾지 못했다. 백성들이 예수를 추종했기 때문이다(48절). 그러나 예수께서 백성들이 실망한다면 즉각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단초를 가룟 유다가 제공했다. 친밀한 제자의 배신은 무리의 의심과 불만으로 가기에 충분했다.

6.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 저를 불려주셔서 주신 생의 목적과 의미를 충족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신 므나를 남겨 주 앞에 드리겠나이다. 한 므나에서 더 많은 므나를 남길 수 있도록 성령을 주옵소서. 세상의 관점에서 놓은 주님의 세계가 아닌, 주님의 구원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회를 굽어 살피시사, 주의 피의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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