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8:16-20;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며, 제자들에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28:18-19).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하며, 세례는 반드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세례의 기원을 세례 요한에게 보는 분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세례의 시작은 주 예수의 명령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것인데, 오순절에 천상의 주께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행 2장). 그런데 세례를 받을 때 왜 여호와의 이름으로 받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겠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절대불변의 신적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주셨다고 가르쳤습니다(행 2:23). 그런데 세례는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베풀었습니다(행 2:41). 우리가 받은 세례에서 만난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믿음으로 받는 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신경에 Πιστεύομεν(라틴어, Credimus) 한 동사에, 세 εἰς(라틴어 in)로 연결한 한 믿음 구조를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번역에는 불가피하게 “~믿습니다”라는 동사를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 때 원어적인 언어 구조를 파악하면서 사용할 것을 제언합니다.

Credimus in unum Deum, ~Et in unum Dominum, ~Et in Spritum Sanctam, 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 Confitemur(εις μίαν, αγίαν, καθολικην και αποστολικην εκκλησίαω· ομολογουμεν)입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교회는 Confitemur(confidence, acknowledge)를 사용하였습니다. 사도신경에서는 Credo를 동일하게 사용하여, 칼빈은 삼위일체는 대상 믿음으로 교회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포된 복음의 내용을 믿음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는 Credimus와 Confitemur(ομολογουμεν, Confiteor)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한 믿음,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Credimus in unum Deum). 그리고 한 믿음에서 구분된 믿음, 아버지(Patrem), 아들(Jesum Christum), 성령(Spritum Sanctam)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믿습니다(εἰς(라 in)), 예수 그리스도를 밉습니다(εἰς(라 in)), 성령을 믿습니다(εἰς(라 in)). 앞에서 말한 한 믿음 안에 구분된 세 믿음이 있습니다. “한 믿음 안에 구분된 세 믿음”은 “한 하나님의 실체에서 구분된 세 위격의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에서 한 하나님의 세 위격, 세 위격에서 한 하나님으로 순환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 실체 하나님에서 세 위격의 하나님으로 제시하는 것을 제시하였습니다.

한 하나님 믿음과 세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음은 한 하나님에서 구분(區分, distinction)된 세 위격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에서 ‘구분(區分)’은 매우 심각한 이해이기 때문에 원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distinction은 차이라고 번역하는데, 동일하게 번역하는 영어는 contrast입니다. contrast의 차이는 특성이 반대되는 차이이고, distinction의 차이는 서로의 특징을 구분하는 차이를 의미합니다. 우리 언어는 구분(區分)으로 번역할 것을 제언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고백하면 자연스럽게 일체에 세 위격의 하나님을 한 믿음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믿습니다. 반복해서 제시하면 우리 어법(중국어, 일본어는 같음)에는 앞 믿음과 뒤 믿음을 구분할 수 없지만, 서양계 문법으로는 구분하고 있습니다(동사 + 전치사).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레고리우스가 고백한 것처럼 한 하나님을 고백하면, 시간의 차이가 없이 바로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 믿음이 등장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이 등장하면 즉각 한 하나님 믿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라틴어 번역과 영어 번역입니다.

Credimus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factorem coeli et terrae, visibilium omnium et invisibilium.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Et in Spritum Sanctam, Dominum et vivificantem [vivificatorem], ex Patre [Filioque] procedentem, cum Patre et Filio adorandum et conglorificandum, qui locutus est per sanctos prophetas.

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 Confitemur unum baptisma in remissionem peccatorum. Expectamus resurrectionem mortuorum et vitam futuri saeculi. Amen.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the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at is, seen and unseen.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became incarnate from the Virgin Mary, and was made 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We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With the Father and the Son he is worshiped and glorified. He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We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한 하나님을 믿으며,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위격으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위격(位格, Hypostasis, ὑπόστασις, subsistentia)은 persona 입니다. persona는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쉽게는 가면(假面, mask)로 이해합니다. mask는 교회론에서 표지(標識)로 번역합니다. 보에티우스(Boethius, 477-524)는 위격을 합리적 본성의 개체적 실체(實體)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보에티우스는 어거스틴의 개념을 발전시킨 학자입니다. 어거스틴(354-430)은 384년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설교를 듣다가 386년에 갑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것을 깨달았습니다. 387년 무렵에 tolle lege(들고 읽어라)라는 어린아이 음성을 들었는데, 그 때 어거스틴이 본 성경 본문이 롬 13:13-14절(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었습니다. 387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391년에 사역자로 서품을 받았고, 395년에 히포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작성된 뒤에 아프리카 히포에서 사역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헬라어 지역이고, 히포는 라틴어 지역입니다. 우리는 서방 교회 영역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라틴어, 어거스틴의 영향이 큽니다. 어거스틴은 413-426년까지 『신국론』(The City of God)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론』(On the Trinity)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 본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476년 서로마가 멸망되면서 동방 교회와 교류는 자연스럽게 단절되었습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바실(Basil the Great, 329-379)과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azianzus, 330-389)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 330-395)가 주도하였습니다. 세 신학자는 갑바도기아 교부들(Cappadocian Fathers)이라고 부르며, 니케야 신경을 계승하여 신학을 바로 세운 교부입니다. 바실이 주도적으로 연구하였지만 공회의 전에 소천되었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주도하였습니다.

니케야 신경을 기준으로 니케아 이전(pre-Nincene)은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로 니케아 회의 이후(post-Nicene)는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 논의는 현대 신학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니케야 전후(前後)로 나눈 것은 니케야 신경 이후 삼위일체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확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습니다(마 28장, 고후 13:13, 민 6:24-26). 사도신경이나 신경에서는 아버지, 아들, 성령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3:13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1장에서 영광스럽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신조에서 아버지는 이름만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많습니다. 성령에 대해서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내용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서는 “성령을 믿습니다”으로 합니다. 뒤에 논하겠지만 아버지께서 창조주라고 이해하지 못하도록 부연설명을 길게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창조주, 아들은 구속주, 성령으로 이어가면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 되며, 세대주의적 해석이 됩니다. 아버지 시대, 예수 그리스도 시대, 성령 시대로 나누는 해석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언제나 함께 하시며 함께 사역하십니다. 어떤 사역에서도 어떤 분도 배제되지 않습니다.

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아버지 신앙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구체화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여호와 신앙이며,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여호와는 복, 은혜, 평강을 주심으로 제사장이 축복합니다(민 6:24-26).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의 주이십니다. 아버지는 복을 주시며, 사랑의 주이십니다. 칼빈은 아버지를 자비의 하나님(mercy)로 표현하며, 부성애(父性愛, fatherly favor)를 강조하였습니다. 루터는 아버지와 아들이란 표현을 대신해서, 감추어진 하나님(Deus absconditus)과 드러난 하나님(Deus revelatus)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순서상 앞서지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 “전능하신”(omnipotentem)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전능은 창조와 구원과 영생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영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예배에서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구원하신 백성들과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신비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고난과 역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예수 조항(2조)을 비교하면,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훨씬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각한 논쟁이 발생했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을 고백하기 위해서 많은 긴 어휘를 사용하였습니다(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요, 빛에서 나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 창조주로 그리고 구원하시는 구원 사역을 재림까지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고백합니다(cujus regni non erit finis).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주이시며, 아버지에게서 출래하시고, 아버지, 아들과 함께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는데, 아버지, 아들,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시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삼위일체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cujus regni, Regnum Christi)를 고백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교회에 집중하며, 교황주의는 사회까지 확장시킵니다. 개혁된 교회는 문화운동을 하지만 그리스도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충만케하는 사역입니다.

주 예수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세우신 교회는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축도(Benediction)을 수행하였습니다(마 28:16-20).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 아들, 성령을 반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신 분이 아버지였고, 아버지의 아들은 예수였습니다(요 17장, 변화산).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 오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예수를 믿는 종교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으며,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위대성은 시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며, 아버지, 성령을 함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설명이나 이해가 아닌 고백입니다.

1문. 삶과 죽음에서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내가 삶이나 죽음에서 나의 몸과 영혼은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주 예수께서 존귀한 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완전히 갚으셔서,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나를 완전하게 구속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없이는 머리카락 하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질 수 없도록 보존하시는데, 모든 상황이 나의 구원에 협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확신시키시고 나로 하여금 이제 이후로 기꺼이 주를 위하여 살기를 원하게 하고 준비되게 하십니다.

한 하나님,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는 것은 고백과 경배로 진행합니다. 설명하려거나 이해하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며, 창조 세계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양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피조물이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거나 접근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이해되었다면 무릎을 꿇고 경배와 깊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을 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처럼 고백하며 확신하며 믿음을 정진합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명료한 신앙을 추구합니다. 맹목적 신앙은 불신앙으로 분류합니다. 그 깊음이 있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 종교들은 깊은 종교심이 있는 것처럼 포장합니다. 참 종교인 기독교 신자들은 참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깊은 종교심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하나님을 믿으며,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으면 자연스럽게 깊음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하나님을 믿읍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을 믿읍시다. 한 믿음으로 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한 교회를 이루며, 풍성한 삶을 경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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