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안 형제단을 이끈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 진젠돌프(Xinzendorf, 1700-1760)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리스도"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있는 그리스도의 초상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림을 보았을 때 부유하고 학식 많은 진젠돌프는 그 그리스도 초상에 써 있는 이런 글귀를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 일을 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려느냐?"
 
진젠돌프는 거기 오직 한 가지 응답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로부터 그의 여생은 "나는 한 가지 소원, 곧 오직 그만이 나의 소원이다"라고 고백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는 헤르후트(Hermhut)파의 지도자가 되어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사회를 이룩하였습니다. 진젠돌프가 이끈 모라비안파는 수적으로는 아주 극소수였다 할지라도 그들이 남긴 영적유산은 과소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존 웨슬레를 비롯하여 세계의 많은 전도자들이 이들의 열심과 선교비젼에서 영감을 받아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모라비안 성도들이야말로 18세기 경건주의의 최상의 결실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초상으로만 보고도 변화와 도전을 받아 18세기 경건주의에 큰 영향과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성령님께서 그를 감동시킨 결과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리스도"의 초상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그리스도의 수난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종려주일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장 14-15절, "[14]예수는 한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이는 기록된 바 사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나귀를 탄 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에 반하는 침묵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지난 번의 경우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을 때는 그들을 떠나 산으로 가셨지만(요 16:15), 이번에는 예수님은 솔선해서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하여 예수님은 "위엄 가운데 타고 가시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위엄이 아닙니다. 비천한 가운데 예수님은 죽음의 병거를 타고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죽음의 병거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병거는 죄와 죽음과 사탄과 율법의 권세를 정복한 권능의 병거였습니다. 인류의 모든 소망과 자유와 염원이 담긴 병거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병거는 과연 무적의 병거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으로 깊이 뿌리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신성의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는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임덕규 목사(충성교회)
임덕규 목사(충성교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