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경건, 36일]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마26:17-30)

  • 입력 2022.04.12 06:40
  • 수정 2022.04.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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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배신과 마지막 만찬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는 장면으로 말씀이 시작된다. 열두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먹을 때,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1)고 하셨다.

제자들 중에 한명이 나를 판다. 나를 배신한다는 것이다. 배신이란 단어의 의미는 믿음과 의리를 져버린다는 뜻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혹시 밥 먹듯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있지는 않는지. 사람들과의 약속은 생명처럼 여기면서, 주님과의 약속은 늘 잊지는 않는지. 교회에서는 주님을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교회 밖을 나가면 말씀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주님을 배반하는 행위와 같다. 믿음과 의리를 져버리는 것이 배신이다.


"주님,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이 몹시 근심하며 주님께 묻는다. “주님,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의 틈에 가룟유다도 있었다.

주님께서 가룟 유다가 자신을 이미 팔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나를 팔 것이다. 나를 배신할 것이다.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 예수님은 말하지 않았을까?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까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분이다.

주님은 자신을 팔 사람이 누구인지를 간접화법으로 전해주고 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3). 대부분 유월절 때 무교병을 먹으면서 떡을 떼어 스프를 찍어먹는다. 많은 제자들이 그릇에 손을 넣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유다 예수를 팔것이라 전혀 눈치재지 못했다.

주님이 한 마디 더 하신다.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뻔 하였느니라.”(24)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은 인자를 파는 사람이다.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다.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좋을 뻔 하였다고한다.

대화의 모든 것을 들은 유다가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랍하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25).

, 12제자 중에서 갸룟 유다가 예수를 은 30에 팔았을까?


첫째는 가룟 유다는 한마음으로 주님을 따르지 않았다.


가룟 유다에게 있어서 예수는 자신의 인생의 성공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세상적인 야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유다는 예수를 민족해방자로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가 물거품처럼 무너져버렸다. 대제사장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알고 예수님을 은 30을 받고 버린 것이다.

주님을 내 인생의 성공의 지랫대로 보면 안된다. 그러면 성공이 무너지거나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주님을 등지게 된다.


 "하나님 한 분만 계시면 됩니다"


고난주간을 통해서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 고백을 다시 기억하면 좋겠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하박국 선지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부였다. 하나님 한분만 있으면 된다는 고백은 우리들이 다시 붙들어야할 신앙의 절대적 가치이다.

지금은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이념의 신, 물질의 신, 이기주의 신이다. 이것이 우상이다. 이중에서 최고의 신은 물질의 신이다. 예수님과 물질 두가지중에서 예수님은 선택의 대상이고, 물질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어떤 분들은 주식이 반토막이 났을 것이다. 사업장이 어려움이 찾아왔을 것이다. 건강에 이상신호가 올수도 있다. 인생이 내 스케줄대로 움직이지 않고 다 꼬여버린 분들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전염병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절호의 기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잃어도 나는 주님만 있으면 된다고 고백하며,T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하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보는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삶이 밑바닥으로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는 그 상황에서 고백을 했다. “나에게 구원의 하나님만 있으면 됩니다. 구원의 하나님만 있으면 기뻐하고 즐거합니다.”


"다윗의 One Thing"


다윗이 일생동안 사모하며 구했던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27:4)

주님을 너무 사랑해서 일생동안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 섬기는 신앙이 참으로 복된 인생이다.


"돈"을 사랑한 가룟유다


유다가 예수님을 왜 배반했을까? 두 번째 이유를 찾는다면,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했다. 가룟유다는 매우 탐욕적인 인물이었다. 제자들 그룹의 재정을 관리했던 인물이다. 요한복음12:6 등을 보면 여러 차례 횡령한 적이 있다. 탐욕이 이렇게 무섭다. 또한 탐욕은 계속 자란다. 결국 유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팔은 것이다. 돈에 대한 탐욕이 이렇게 끈질기다. 사람을 팔아버린다. 인신매매의 목적이 무엇인가? 탐욕이다.

말세의 징조 중에 돈을 사랑하는 배금주의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주식 시장과 가상화폐와 부동산에 몰빵하였다. 어떤분들은 저점에 사서 고점에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긴분들도 있다. 이익을 창출한 분들이 있다면 거꾸로 재산의 손해를 입은 분들도 있다. 고점에 사서 고민속에 빠진 분들도 많다. 해외 큰손들은 한국의 삼성을 비롯한 대형기업의 주식들을 팔았는데, 개미군단들이 그 주식을 몽땅 매입했다. 이번이 주식을 통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몰빵하는 것이다. 순수한 의미의 투자가 아니다. 이 정도면 거의 도박 수준이다. 돈 넣고 돈 먹는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의미에서의 투자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이 현상은 아닐 듯싶다. 모든 사람들이 돈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신앙이 자라지 못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팔아버릴 수 있다. 물질은 물질일뿐이다. 물질을 많이 벌어 의미있게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질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다.


"마지막 주의 만찬"


예수님은 이어서 성찬식을 제자들과 함께 나눈다. 떡을 가지고 축복하신 후에 떼어 제자들에게 주면서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6)고 했다.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셨다. 상징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로마병사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찢겨 살점이 떨어지는 고통을 당할 것을 예표한 것이다.

이어서 잔을 가지고 감사 기도하신 후에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8)고 했다.

주님이 포도주를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죄사함을 얻게 하는 피이며, 이 피는 언약의 피라고 했다. "언약의 피" 말로써 이미 약속된 것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피만이 인류의 모든 죄악을 씻어내는 언약의 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속에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었다. 유월절을 지키는 최후의 만찬에서 고기는 없다, 무교병과 포도주는 있지만 어린양 고기는 없다. 유월절 하루 전날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있다. 예수님이 다음날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마지막 10번째 재앙이 처음 난 것이 죽음을 당했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문지방 좌우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갔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가 없는 집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서 처음 난 것을 다 죽였다. 피가 묻어 있으면 살고, 피가 없으면 죽었다.

예수님의 피는 언약의 피이다. 생명의 피이다. 살리는 피이다. 구약의 율법에 보면, 죄는 사람이 짓고, 대신 양이 죽었다. 피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양을 죽여 피를 뿌리면 사람들의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죽으셨다. 그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씻어주셨다. 피는 생명이다. 성찬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질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 돈에 지배를 받으면 언젠가는 주님을 배신하게 된다.성찬식을 대할 때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되새기며, 제자의 본분을 다시 회복하는 자세가 귀한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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