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장은 예루살렘에서 유대 지도자들과 예수께서 마지막 격돌을 하는 모습이다.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헤롯당 모두는 비장의 카드로 예수를 공격했지만 전패했다. 누가는 마태와 마가의 내용보다 간략하게 제시했다.

1. [눅 20:1-8] 예수의 권위의 근거는(마 21:23-27; 막 11:27-33).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할 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권위(authority)”에 대해서 질문했다(1-2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해서 반문하셨다(3-6절). 예수의 반문(反問)은 세례 요한의 권위를 알지 못한다면 자기의 권위를 설명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을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6절). 백성의 선생이라 자처한 위인들이 백성의 생각을 두려워하고 염려해서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누가 선생이고, 통치자인가? 그들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백성은 왜 자기를 두려워하는 그들을 선생이라고 존경할까? 탐욕이 얽히고 얽힌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께서도 그들에게 자기 권위의 근거를 말씀하지 않으셨다(8절). 그럼에도 그들은 더 이상 답변을 요구할 수 없었다. 예수의 권위는 어디 있을까? 요한복음에서 요한 사도는 아버지에게 있고, 아들 자체에게 있다고 진술한다. 아들을 증언하는 최초 증언자는 아버지이시고(마 17:1-13, 막 9:2-13, 눅 9:28-36), 항상 그리고 최종 증언자는 성령이시다(참고 행 1:8, 계 2-3장). 예수의 권위(authority)를 위탁받은 교회는 신적 권위(Divine authority)가 있다. 우리는 예수의 권위나 탁월성을 논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고 전하는 백성이다.

2. [눅 20:9-18] 악한 포도원 지기 비유(마 21:33-46; 막 12:1-12). 예수께서 악한 포도원 지기를 비유를 백성에게 말씀하셨다(9절). 포도원을 조성하고 농부(tenants, 소작농, 고용인)를 고용하고 타국에서, 소작료를 받으려는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이 때리고 지불하지 않았다. 세 번까지 거부하자, 결국 주인은 아들을 보냈다(13절). 그런데 포도원의 농부들은 아들을 보면서 죽여 포도원을 탈취하자고 합의하여 죽였다. 그렇다면 그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하겠는가? 예수께서 특이하게 포도원에서 내 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6절). 그런데 그들의 답변은 더욱 특이하다.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16절, Surely not, 절대로 일어나면 안됩니다).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셨다(17절). 그것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말씀이다. 유대인이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어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다(시 118:22).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셨다. 그 돌을 공격하는 것은 곧 가루처럼 될 것이다(18절). 버려진 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고, 모퉁이 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는 유대인이 버린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의 도성에서 죽임받고 밖으로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흘리신 피로 교회를 세워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셨다. 교회의 제자를 미워하고 공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미워하는 것이다(요 15:18).

3. [눅 20:19-26] 세금 문제(마 22:15-22; 막 12:13-17). 서기관, 대제사장들이 예수께서 하신 비유가 자기들임을 파악했지만 백성 때문에 잡지 못했다(19절). 결국 그들은 정치범으로 몰아서 총독에게 고발하려고 협의했다(20절). 당시에 민감한 세금 문제를 예수께 질문하여 책을 잡으려고 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취하지 않고,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다고 하셨다(21절). 그리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24-25절). 그들은 예수에 대해서 어떤 책(責)을 잡지 못하고 물러갔다(26절).

4. [눅 20:27-40] 부활 논쟁(마 22:23-33; 막 12:18-27). 예수께 사두개인들이(Sadducees) 와서 계대 제도(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 수혼제, 형사취수법(兄死取嫂法), 신 25:5)를 놓고 질문했다.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those who deny that there is a resurrection).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그룹으로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채택하여, 사후 세계에 대해서 독단한 것이다. 사두개인들의 독단 메커니즘은 7형제와 한 여인의 관계를 제시했다(29-33절).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도 사랑도 안중에 없는 구도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확하게 가르치셨다. 사후 세계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으며(34-35절), 천사와 같은 상태라고 말씀하셨다(36절).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38절). 부활 세계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떤 서기관이 동의했다(39절). 사두개인은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40절). 사두개인들은 허망한 사색(idle speculation)에서 자기 귀결을 낸 구도이다. 계대제도는 혼인관계가 아니라, 형의 후손을 계승하기 위한 제도이다. 형수와 관계를 맺어도 동생의 아내가 되는 구조가 아니다. 동생이 형의 아내와 아들로 보호하여 양육하는 제도이다. 헌신적인 가계법을 호기심으로 변용한 것은 자기 욕망(lust)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욕망을 폭로시켰다. 서기관은 부활은 믿었지만, 부활 능력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부활은 대속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막연한 종교심으로 극락왕생이나 낙원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세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이루신 영원한 세계이다.

5. [눅 20:41-44] 그리스도의 주이신 메시아(마 22:41-46; 막 12:35-37).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를 질문했다(41절). 참고 누가복음은 “그들에게”이니 사두개인이고, 마태복음은 바리새인에게(마 22:41), 마가복음은 서기관들이(막 12:35) 예수께 질문한 내용이다. 세 복음서의 진술이 약간 차이를 갖고 있지만, 총합하면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구약의 예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르침을 따르는 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만을 고대하기만 했다.

시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했는데 어떻게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는가?(44절). 예수께서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지만, 다윗은 메시아를 향해서 경배하는 피조물이었음을 말씀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아브라함이 내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요 8:56). 구약시대에 믿음의 선조들은 오실 메시아를 믿고 경배하였다(Logos asarkos). 오실 메시아를 믿었던 백성들은 눈으로 보아도 믿어지지 않은 메시아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았지만, 오실 메시아를 정치적으로 고대했던 사람들은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처럼 예루살렘을 회복할 위인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사도들도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만을 고대했지만(행 1:6), 성령을 받은 뒤로는 그 말을 버리고 오직 예수만을 증거했다.

6. [눅 20:45-47] 서기관을 삼가라(마 23:1-36; 막 12:38-40; 눅 11:37-5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다(46절). 서기관들 자체를 삼가라는 것이 아니라, 서기관들이 행하는 외식을 금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문안받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고, 외식으로 길게 기도한다(46-47절). 우리시대에도 서기관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많다. 교회지도자는 서기관처럼 되지 않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서기관과 같은 지도자를 본받거나 존경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7. 전능하신 하나님, 예루살렘의 모든 지식을 동원했지만 예수님을 모욕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우게 한 것이 1세기 예루살렘이었고, 지금 우리시대에도 동일한 악의 모습입니다. 주의 지체인 우리가 가는 길이 쉽지 않지만, 주께서 주신 십자가입니다. 주께서 저에게 주신 십자가는 지고 가겠나이다. 주께서 함께 멍에를 메어주시기에 위로와 능력을 주심도 믿으며 기대합니다.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주의 십자가를 지고 가겠나이다. 지혜와 힘을 주옵소서. 주 예수께서 모든 것을 극복하셨지만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이 땅에서 승리하는 것이 번영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놀라지 않고 주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며 영광을 나타낼 수 있도록 성령의 지헤와 권능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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