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태복음 16:13-20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f one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became incarnate from the Virgin Mary, and was made 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토록 출생하신, 하나님에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입니다. 그를 통해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으심 그리고 장례되었습니다. 성경대로 사흘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는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신경(381년)의 내용을 분류하면 1조 신앙 아버지, 2조 신앙 아들, 3조 신앙 성령으로 구분합니다. 성경과 신학은 의외로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없습니다. 신조의 고백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2조, 주 예수 그리스도 신앙이 풍성하면, 아버지와 성령의 신앙이 함께 풍성해집니다. 교리(삼위일체와 그리스도 양성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 이해를 확립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와 동일실체(homoousion)이라고 고백함으로 신학의 방향을 결정한 것입니다. 20세기에 칼 바르트는 “동일실체(Trinity)”에서 “삼중일신(Gottes Dreieinigkeit, Triunity)”의 구도로 전환시켰으며, 그리고 2조의 내용을 재해석하였습니다(참고 『교회교의학, I/1』; 고경태, “칼 발트와 존 칼빈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 연구”, 총신대 박사논문, 2007년).

<사도신조>의 2조 내용인,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내용이 좀 많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사도신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첫째, 한국교회에 민감한 주제인 “음부강하(descendit ad inferos, he descended into hell)”는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음부강하”가 <사도신조>에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여 주장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작성될 무렵 사도신조에는 “음부강하” 표현이 없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음부강하를 하려면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고백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둘째, 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실체”임을 명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신조>는 325년 니케야 공회의 이전부터 교회에서 전래된 고백문입니다. 고백문은 세례용이 아닌 합법적 예배를 위한 문장입니다. 공적 예배에는 반드시 합법적 문장으로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것에 연관된 놀라운 믿음 문장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토록 출생하신, 하나님에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며”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 신성을 명확하고 엄중하게 고백하는 문장입니다. 신조에서 고백하는 문장은 이해한 문장이 아닙니다. 교리 문장은 이해된 인간의 문장이 아니라, 믿음을 고백하는 믿음 문장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말을 했기 때문에 사람이 반드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 문장은 계시를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혁파는 명료하게 믿음의 내용을 밝히도록 요구합니다. 우리는 신경이 고백하는 내용을 완전히 수용합니다. 그렇지만 보다 간략하게 예수를 “주과 구주(Lord and Messiah, 행 2:36)”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조. 비교.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고전 1:3, 고후 1:2, 갈 1:3, 빌 1:2, 몬 1:3, 벧후 3:18, 고후 13:13).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kirk)이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명료한 고백을 요구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예수를 고백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고백 문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정확한 어휘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동일실체이심” 입니다. 이 어휘를 싫어하는 유형은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유형과 간접적으로 거부하는 유형이었습니다. 동일실체(homoousion, 니케아 정통파), 유사실체(homoiousion, 아리우스파)와 반 아리우스주의(semi-Arianism, Binitarians)가 있었는데, 정죄된 아리우스와 화합을 도모한 부류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교부들로 말미암아 “동일실체”가 지켜졌고, 정통 교리로 확정되어 더 이상 부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일실체”는 정통 신앙이며, 이것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이단이거나 이단을 동조하는 무리입니다.

셋째, 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가 있습니다. 이 문장은 감동적인 문장이며, 신학을 결정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으로 많은 신학에 변별을 줍니다. 첫째, 천년기론은 콘스탄티노플 신조와 같지 않습니다. 천년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천년 동안 유지된 후 다른 형태로 유지되는 방식입니다. 정통 신앙은 그리스도의 왕국(Regnum Christi)은 영원합니다. 둘째, 성부께 모든 것이 귀속된다는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영원토록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입니다. 할렐루야.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2조 내용의 시작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 문장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총합(The Sum of the Gospel)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완전한 고백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는 이름이고, 인격에 합당한 직분이 있습니다. 외국 사람은 Mr, Mrs를 일반화하지만, 우리나라는 각 개인에게 해당된 호칭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직분 호칭을 좋아합니다. 이름을 잘 부르지 않고, 성(性) 씨(氏)를 부릅니다. “예수”가 누구신지 말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예수께 부착된 직분은 “주(하나님)와 구주(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구속주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복음서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름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당시에 비하적인 의미로 사용한 어휘입니다. 비록 사도 마태가 “나사렛”을 구약성경에서 예언했다고 해서 정당한 것이 아닌데, 나사렛은 예수의 지극한 겸비를 지목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호칭을 떼어내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조금 높인 표현이 “랍비”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사람들은 많았지만, 예수께서 기쁘게 허락한 부분은 찾을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을 랍비라고 이해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셨다고 하는데 맞은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보다 다윗의 후손, 유대 지파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은 혈통적 의미보다 1세기 팔레스타인 거주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파 의식이 있어야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유대교 신자가 아닙니다. 당시 여호와 종교의 흔적이 사라져갈 무렵, 바벨론에서 도입된 회당 회집으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두매 사람 헤롯이 건축한 황금 성전도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회당을 중심한 바리새인의 종교인지, 성전을 중심한 사두개인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1970년대에 형성된 새관점학파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로 규정하였고, 지금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새관점학파에서 예수님을 선지자로 분류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을 혁명가로 분류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질문한 내용이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마 16:13). 우리는 제자들처럼(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 더러는 선지자, 혁명가, 천재적 종교 설계자, 목수, 광신도, 등등입니다. 그렇다면 동일하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4). 그 답을 시몬 베도로가 하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이시니이다”(마 16:16). 사도 베드로께서 답변하신 것이 시작이고 마지막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한 말의 근원을 밝혀주셨습니다(마 16:17). 그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버지께 받은 지식을 가졌지만, 십자가 앞에서 무참하게 무너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고백 문장이 모든 교리의 시작임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입니다. 우리 번역에 “주”는 2인칭 대명사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베드로의 고백이 동일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께서 고백한 “하나님의 아들은 주”이고, “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는 주이시고 구주이십니다. 사도 베드로께서 오순절 성령의 내주로 첫 복음을 설교할 때, 성령을 부어주신 분이 하늘에 오르신 “주와 그리스도”(행 2:36)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서신에서 예수를 “하나님과 구주”(벧후 1:1),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Lord and Savior Jesus Christ, 벧후 3:18)로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로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께서는 바울의 글을 쉽게 풀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벧후 3:16). 기독교의 가장 심오한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말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the glory both now and to the day of eternity. Amen)”라고 믿음의 후진들에게 남겼습니다.

저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직접 전도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먼저 “사회적 인증”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사회에서 목사로 인증되었기 때문에 여러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적 인증”을 근거로 온유와 겸손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습니다. 나의 주이신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적 인증은 생존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예수를 증거하기를 시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딤후 4:2). 사도 바울께서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준 말씀이지만, 형제자매들도 부족한 종이 주는 바른 교훈을(딤후 4:2-3) 따라서 전력을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가며 은혜가 풍성할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흡으로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하늘양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백성의 호흡에는 찬양이 넘칠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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