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복음 1:1-18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토록 출생하신, 하나님에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입니다. 그를 통해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으심 그리고 장례되었습니다. 성경대로 사흘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는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사도신조>의 2조 내용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입니다.

니케야 신경의 2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일하신 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아버지, 성부의 본체에서 태어나신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시고,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 성부와 동일실체이십니다. 그를 통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지은 바 되었으니, 이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 오사, 육신을 입어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당하셨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아멘.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μονογενῆ, only begotten, only Son)이십니다(요 1:14, 3:16). 예수는 먼저 나신 자(πρωτότοκοs, first-born)이십니다(골 1:15). 독생자, 외아들은 출생방식의 독특성(unique)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출생과 함께 분리되지만, 하나님 아들의 출생은 영원한 나심(the eternal generation of the Son, The Son begotten from eternity by the Father)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히 출생하시며 분리되지 않은 독특한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고백하는 것은 동일실체(삼위일체)가 결정된 뒤에 사색한 내용입니다. 독생자 고백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드러난 것입니다(self-disclosure). 아들은 출생하시지만, 아버지는 비출생적 위격이십니다. 성경에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에서 숨겨진 하나님(Deus abscoditus)과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으로 분류하기도 하였습니다.

공교회는 독생자이신 예수와 아버지의 실체가 하나임(homoousion)을 확정하였습니다. 그 고백은 교회가 이해하여 만든 문장이 아니라, 사도들이 눈으로 본 예수를 참 믿음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요일 1:1, 행 2장). 300 년이 지난 뒤에 교회는 사회에서 안정을 찾자 내부에 있던 이단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정통 교리를 확정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분별이 어렵고 분별할 필요를 느낄 수도 없습니다.

독생자는 성령 하나님에게서는 출생하지 않음의 구도로 고백합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하나임을 제시하셨고, 성령으로 육신으로 잉태되셨지만, 영원한 출생에서 성령에 대한 계시가 없습니다. 페리코레시스(περιχώρησις, 상호침투, 상호공재)의 문제점은 위격이 상호교류를 하기 때문에 영원한 출생 교리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하나님에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며”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하나님에게 나온 하나님입니다. 빛에서 나온 빛이십니다(요 1:1-4). 그리고 반복해서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자기가 믿는 주님과 내용을 정확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참 믿음을 담대하게 고백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훈련합니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독생자는 아버지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325년 니케야 신경이 밝힌 핵심 내용입니다. 아리우스는 골로새서 1:15의 먼저 나신 자(πρωτότοκος)를 영원에서 창조된 자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를 자기 확신으로 해석하여 피조물(Πλαστος)로 결정한 것입니다. 예수를 피조물로 보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리우스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리우스가 죽기까지 자기 견해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당시에 많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이단 교설은 사람에게 매혹적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수용하지 못합니다.

프로토토코스(πρωτότοκος, 먼저 나신 이), 골로새서는 골로새 교회가 행하는 천사숭배를 권면하기 위한 서신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천사와 비교급을 쓰는 것처럼 보이고, 낳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히 1:3-4). 그러나 곧 천사들이 경배할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히 1:5).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버지께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는 구속주이십니다. 고대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께 반역한 죄를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인도하실 수 있다면, 예수와 아버지의 권능이 같은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나신 자”라고 하였지만, 죄사함을 주신 아들께서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구속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아는 길은 아들의 십자가의 피, 오직 한 길 뿐입니다(골 1:20, 행 4:12). 프로토토코스(먼저 나신 자)는 파악이 가능한 출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구주를 표현한 어휘로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로부터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말의 개념화가 동일실체(homoousion)입니다. 아리우스는 영원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아버지와 같지 않고 유사한 실체, 유사실체(homoiousion)라고 주장하여, 유사하면 두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 믿음이기 때문에 두 믿음을 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리우스가 당시에 인기가 많았고, 권력도 약하지 않았음을 반복해서 증거합니다. 그것은 이단의 모든 현상일 것입니다. 우리시대에 가장 위력적인 위협은 재세례파, 유니테리언, 율법주의입니다. 이 모든 총합이 신비주의에 있습니다. 신비주의가 얼마나 강력한지 기독교에서 예수의 이름을 제거하려하거나, 동성애 옹호자로 해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속화의 변화(mutatis mutandis)는 언제나 부패로 나갑니다. 정통신학,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absolute truth, universal truth). 특별계시는 절대 진리이며, 일반계시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진리입니다. 특별계시는 성경 66권이며, 66권의 정점은 homoousion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삼위일체 해석이 잘 나오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명확하게 나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자기를 명확하게 계시하셔서 신자가 명확하게 자기를 섬기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성을 듣고(calling) 자기에게 나오는 자를 받으시며 기뻐하십니다.

성자 하나님, 로고스(LOGOS)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1-4).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창조주를 아버지와 아들에게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 계시입니다(요 1:3). 그리고 말씀(LOGOS)는 빛이십니다(요 1:4-5). 빛은 어둠과 반대이며, 빛은 생명입니다. 아들은 빛이시며, 아버지도 빛이신데, 두 빛이 아닌 한 빛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 아들의 은혜와 진리의 빛이 백성을 살립니다. 그 빛을 적용하며 완전케 하는 일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아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은 성경 계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붙어서 성경대로 만물의 창조주로 예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세 복음서에서는 말씀으로 바다를 잔잔케하시며, 말씀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며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직접 창조주로 선언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도 도마는 부활하신 주 예수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것을 보고하였습니다(요 20:28). 사도 베드로의 고백은 아버지께서 주신 계시이고, 사도 도마의 고백은 부활한 주님을 직접 목적하면서 사도 베드로의 고백을 확증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자기에게 임한 성령을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보내셨다고 증거하며,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으라고 전파하였습니다(행 2장).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고백하려면, 반드시 죄를 구원한 구주로 고백해야만 가능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는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콘스탄티노플의 신조 중 특이한 문장은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입니다. “우리”와 “우리 구원”을 구별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속주와 창조주에 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본성과 둘째 아담의 본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철원 박사는 인간의 직임을 찬양자, 교제하는 자, 봉사자, 탐구자, 선지자, 제사장, 대리통치자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구속주의 사역이고, 그 구속에 근거하여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교제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창조 세계를 탐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은 믿음과 함께 창조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강인한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말세로 가면 갈수록 믿는 자를 보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주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백성을 이루시며 보존하시며 찬양을 받으시며 창조를 운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에 오셔야 하였습니다. 그것은 죄로 부패된 땅에서 구원할 수 있는 자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아담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시 51편). 이것을 부정한 펠라기우스는 배격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원죄가 되어 모든 인류에 영향을 비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함께하시며 찬양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완전한 찬양을 위해서는 죄를 온전하게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임시적인 방식이 아니라 완전한 찬양을 받으십니다. 완전한 찬양을 위해서 반역한 부패에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는 방식으로 예정하셨습니다. 개혁파 신학은 영원에서 삼위일체께서 구속중보자를 아들로 세워서 구원 이루심을 작정하심으로 구도화하였습니다(pactum salutis).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으로 이루시지 않는 것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독재자가 아닙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the righteousness of God).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땅에 오셔야 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의 신성과 신격, 아버지와 동일실체이며,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구주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기적중의 기적(Miracle in miracles)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Cur Deus Homo)은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믿음의 주이십니다. 창조주와 구속주 신앙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죄사함의 은혜와 창조의 복을 이루기 위해서 전력해야 합니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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