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 22:1-6] 유다의 배반(마 26:1-5, 14-16; 막 14:1-2, 10-11; 요 11:45-53). 유월절, 무교절이 다가왔다(1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일 방법을 모의했는데, 예수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2절). 인기만 사라지면 바로 예수를 죽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함으로 민심을 이반시킬 수 있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3절). 사도 베드로는 사탄을 대적하라고 권면했고(벧전 5:8)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면 피할 것이라고 했다(약 4:7).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지만, 가룟 유다가 행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유다 자신에게 있다. 그것은 아담에게도 동일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도,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유다는 돈을 받기로 약속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았다(5-6절). 배신한 유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그의 양심이 자기 악행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눅 22:7-13] 유월절 만찬(마 26:17-25; 막 14:12-21; 요 13:21-30).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다(7절, 출 12:18, 레 23:6). 무교절은 1월 14일 저녁(출 12장)이나 15일(레 23장)에 시작하여 7일 동안 진행했다. 유월절 양고기를 먹은 뒤에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을 지낸다. 당장 유월절을 지낼 집이 없었지만 예비된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을 만찬을 했다(13절). 큰 다락방의 주인을 마가의 어머니의 집으로 추측한다.

3. [눅 22:14-23] 유월절 만찬(마 26:26-30; 막 14:22-26; 고전 11:23-25). 예수와 사도들이 함께 앉아(reclined, 14절, 기대어 누어 앉음),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는 유월절 먹기(to eat this Passover)를 원하셨다(15절). 그런데 예수께서 다시는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16절). 잔을 취하여 감사기도하시고(17절), 떡을 가져 감사기도하셨다(19절). 떡과 잔을 취하며 몸과 피로 새언약을 체결했다(20절). 그리고 피 흘리는 손을 갖고 있는 제자 유다에게 화를 선언하셨다(22절). 제자들은 그 때까지 유다를 알지 못했다(23절). 제자들은 배반할 한 제자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배반할 자를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자들이 자기 믿음을 굳게 하도록 유도하셨다. 자기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가룟 유다가 예수께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는데, 칼 바르트는 가룟 유다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4. [눅 22:24-34] 베드로 부인(否認)을 예언하심(마 26:31-35; 막 14:27-31; 요 13:36-38). 그러던 중에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큰가?”에 대해서 다툼이 일어났다(24절). 제자들이 다툰 것은 예수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 것인데,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배신해서 선생을 몰락시키려고 했고, 충분한 계획이었다. 제자들은 그 중에서도 누가 클까에 대해서 논쟁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제자들을 향해서 12지파로 다스리게 할 것임을 말씀하셨다(30절). ※ 이스라엘 12지파를 12사도가 대체하는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Supersessionism)으로 이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대체신학은 극단적 세대주의 경향을 갖고 있다. 세대주의의 결과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회복이다. 대체신학을 과격하게 실현한 부류는 ‘다미선교회’와 ‘신천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신천지 12지파에는 바울 지파가 없다. 대체신학은 유대인의 무용을 주장하면서, 예루살렘 회복과 유대인 회복을 꿈꾼다. 유대인의 기능의 폐지되었는데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대체신학이 대체하는 개념은 언약신학으로 성취된 언약을 기반으로 진행해야 한다. 대체보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성취를 말해야 한다. 기독교는 교회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방편이고, 새관점학파는 아브라함의 가족으로 모든 인류를 복속하여 회복시키려고 한다. 교회가 권력화되었을 때에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그리스도께 자유를 받은 백성은 누구에게도 악의를 갖지 않는다.

예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제자들을 당부했다. 그런데 베드로는 절대 부인하지 않음을 장담했다. 예수께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경고했다(34절). 베드로 사도의 강력하게 예수와 함께한다고 장담했다(33절).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부인의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서,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하라고 하셨다(32절).

5. [눅 22:35-38] 제자들이 소유한 것은 검 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가를 점검했다(35절). 이제부터는 전대, 배낭, 검을 소유하도록 지시하셨다(36절). 그리고 가룟 유다가 불법자로 낙인됨을 선언하셨다. 주님의 무거운 말씀에 그들은 검 두 자루가 이미 준비했다고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했다(38절). 제자들은 예수께서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라는 말을 그대로 대답한 것이다(36절, 38절).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서 말을 그만 두셨다.

6. [눅 22:39-46]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으로(마 26:36-46; 막 14:32-42). 예수께서 밤에 감람원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따라서 제자들과 나가셨다(39절). 주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를 명령하셨다(40절). 그리고 그들과 약간 떨어져서 기도하셨다. 누가복음에서 감람원 마지막 기도에서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보고했다(44절). 간절한 기도의 표현의 극치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주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진술했다. 감람원의 피로 세우신 교회이고, 십자가의 피로 세운 교회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피곤해서) 잠을 잤고, 그 잠자는 제자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겸손하게 교회의 설립자인 예수를 고백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교회 세움에 공로가 제자들에게 없다. 그럼에도 사도의 터 위에 세우신 주의 은혜와 경륜을 측량할 수 없다.

7. [눅 22:47-53] 감람원에서 붙잡히심(마 26:47-56; 막 14:43-50; 요 18:3-11). 예수께서 감람원에서 기도하는 것은 가룟 유다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 예수께서 기도하는 장소로 다가갔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께 입을 맞췄다(배신의 키스). 제자들은 무리를 보고 칼을 들었고, 한 제자가 대세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렸다(50절). 예수께서 그 귀를 낫게 하셨다(51절). 그리고 그들이 밤에 온 것을 어둠의 권세라고 규정했다(52-53절).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 감히 접근하지 못하면서도 예수 잡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베드로 사도가 말고의 귀를 떨어뜨렸다(요 18장). 어둠의 권세도 빛에 대항하여 굽히지 않고, 빛의 권세도 어둠의 권세에 의해서 굽혀지지 않는다. 두 권세가 충돌할 때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어둠의 권세에게 참신은 사탄이다.

8. [눅 22:54-71] 대제사장의 뜰에서 공회까지(마 26:57-58; 막 14:53-54, 66-72; 요 18:12-18, 25-27). 예수를 결박해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갈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다(54절). 베드로에게 여종이 지나는 말로 심문할 때에, 강력하게 모른다고 부인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방언을 숨길 수 없었지만, 그것까지 부정하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했다. 세 번 부인하자 닭이 울었다(60절).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가슴깊이 통곡했다(61-62절). 베드로가 부인함으로 예수님은 홀로 계시게 되었다. 이제 예수님 옆에는 배신할 제자도 없게 되었다.

대제사장의 집에 잡힌 예수를 놓고 사람들이 희롱하고 때리며 욕했다(63-65절). 이는 군중들에게 실망을 주는 방편이다. 군중들은 병자와 놀라운 언변의 모습에 환호했는데, 굴욕을 당하는 인간에게 극도로 실망할 것이 뻔하다. 베드로 사도도 그랬다. 사람은 탐욕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기 욕심과 존재에 반하는 사안을 극도로 혐오한다. 가장 슬픈 것은 자기를 살릴 존재를 거부하고 의심하며, 자기를 죽일 것을 사랑하고 탐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날이 새자 비참해진 예수를 공회와 백성에게 공개했다(66절). 사람들은 실망했고, 예수는 담담하게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앉을 것을 진술했다(69절). 따라다녔던 군중들도 떠났다. 예수께서는 담담하게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셨다(69절). 다시 다그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고, 예수께서는 “내가 그(Ye say that I am)”라고 말씀하셨다(70절). 대제사장은 예수를 신성모독한 죄인으로 판정을 아니 할 수 없었다(71절). 종교법으로 처단할 방도가 충분히 있었는데, 그들은 빌라도에게 정치범으로 고발했다.

9.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한 길을 가는 구주 하나님 어린양을 보나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배반과 고독과 치욕을 감당하신 우리 주 하나님 어린양, 우리에게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영원히 찬양받으실 주 예수를 증거하며 정진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를 굳건하게 믿으오니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모든 악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te. 2nd. 2020.04.22. 형람서원 고경태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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