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화천 간동교회 담임목사)
전광병 목사(화천 간동교회 담임목사)

인도에서의 오랜 기간에 걸친 많은 고난과 섬김의 삶을 산 헨리 마틴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로 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신약성경과 시편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이로는 삼십대 초반이었지만 그는 이미 노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인도에 머물러 있으면 더위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페르시아는 인도보다 더 덥다고 말했습니다. 고향 영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여생을 마무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페르시아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페르시아어를 배운 다음 9개월 만에 신양성경 전체와 시편을 번역했습니다. 그 후 그는 페르시아 국왕의 재가를 받기 전에는 성경을 인쇄하거나 배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테헤란까지 960km를 여행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왕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발길을 돌려 영국 대사를 찾기 위해 다시 640km를 여행했습니다. 대사는 그에게 소개장을 주며 다시 그를 640km 떨어진 테헤란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때가 1812년이었습니다. 마틴은 이 긴 여정 내내 노새를 타고 다녔습니다. 밤에는 길을 떠나고 낮에는 겨우 삼베 한 조각으로 찌는 듯 한 사막의 태양 빛을 피하며 휴식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테헤란으로 다시 돌아와 왕을 알현했고 페르시아에서 성경을 인쇄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왕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는 일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과수원에 앉아서 감미로운 위로와 평안을 누리며 나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 속에서 나의 벗, 나의 친구, 나의 위로자이신 그분을 생각했다.”

그는 분명히 평안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헨리 마틴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을까요? 헨리 마틴이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을까요? 고통 속에서 가장 가깝게 만난 벗, 친구, 위로의 하나님... 하나님을 가장 친밀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그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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