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신경 주해(7 강) 주 예수 그리스도(3)

성경: 마태복음 1:18-25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토록 출생하신, 하나님에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입니다. 그를 통해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으심 그리고 장례되었습니다. 성경대로 사흘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는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사도신조>의 2조 내용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입니다.

니케야 신경의 2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일하신 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아버지, 성부의 본체에서 태어나신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시고, 출생하셨으나, 창조되지는 않으셨으며, 성부와 동일실체이십니다. 그를 통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지은 바 되었으니, 이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 오사, 육신을 입어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당하셨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 참 하나님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아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참 하나님과 창조주 고백, 둘째, 성육신, 죽으심, 부활, 승천, 심판을 위한 재림, 셋째, 영원한 주의 나라입니다. 영원한 주의 나라(cujus regni non erit finis) 고백은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포함된 고백입니다. 앞부분은 하나님의 독생자, 참 하나님, 만물의 창조주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자 하나님의 인격이며, 둘째 부분은 사역이며, 셋째 부분은 권능과 영광입니다. 우리는 신조 작성원리가 이해가 아닌 예수를 주와 구주로 고백하며, 영광, 지극한 영광을 위한 방향으로 작성되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동료들과 양심이 흔들릴 정도로 경쟁되며 견제되었지만, 주 예수의 복음이 증거됨으로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주 예수의 이름이 높여지도록 지향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높이면서 자기 이익을 취하는 자는 삯꾼이라고 하는데, 예수 이름을 비하하면서 자기 이익도 부정하는 자와 견주어서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이름을 높이며, 교회를 세우며, 동료들과 화합하는 것까지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둘째 부분은 성육신에서 심판을 위한 재림까지 진행하겠습니다. 고대신조를 보면 특이한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제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의 생애나 어록에 대해서 긴 서술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33세로 추정하는데(눅 3:23), 나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진술은 없습니다. 신조는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 승천, 심판을 위한 재림을 순서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은 현재 승천하신 주 예수께서 교회를 다스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만유를 다스리시는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하면서 교회를 통한 만유 통치가 실재가 된 것처럼 착각하였습니다. 주 예수께서 통치하는 것을 교회가 탈취하여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며, 그리스도의 지상 자리를 탈취하였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복음 전함에 충실하며 정진해야 할 주의 기관입니다. 주의 기관인 교회에서 주의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은 주의 사역자가 전하는 복음, 성경을 주해하여 전하는 말씀입니다. 중세 로마 교회에서 해석되어 선포된 말씀을 중지하고, 교황의 교설 전달로 체계화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말씀사역자로 교회사역자를 세워 생명의 양식을 전달하는 체계로 회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아닌 성경으로만 스스로 해석하여 양식을 취하는 개념이 등장하였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황, 비상한 시기에 교회를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일반화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 hasty generalization)에 해당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시대는 계시 시대로 과도기 시대(extraordinary era)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 모습을 일반화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원리로서는 적합하고 진리이지만 형태로서 일반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에서 성경으로 개혁(turning)은 좋았지만, 부정적인 작용은 교회를 떠나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여 "이해를 위한 해석" 산물이 등장한 것이며, 교회를 떠나 자의적으로 예배를 구성하려는 것입니다. 재세례파, 경건주의들이 그랬으며, 잉글랜드의 청교도들도 그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재세례파들이 네덜란드로 많이 이주하였는데, 잉글랜드 피난민들이 네덜란드에서 접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침례교의 근원은 재세례파로 규정하는데, 그 접촉점은 네덜란드입니다. 1607년 잉글랜드 사람 존 스마이스(John Smyth, 1554-1612)는 네덜란드로 피신하여 온건한 성향의 메노나이트 교회와 접촉하였습니다.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대 교리가 견지하였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과 재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집중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자유주의에 대항한 미국의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에서 5대 교리 "성경무오,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재림"을 주장합니다. 근본주의 5대 교리는 성육신에서 동정녀 탄생으로, 그리고 성경무오를 추가시킨 것입니다. 고대 신조는 "성육신에 대해서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에 대한 내용입니다. 신조의 고백에서 "성육신(동정녀 탄생), 승천 교리"가 근대에 오면서 복음 제시에서 많이 생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11장 승천)나 네덜란드 개혁파(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9문)에서 승천 교리는 명확하게 고백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부활절, 성탄절과 함께 승천일(Ascension Day, 부활절 후 40일, 목요일)을 국경일로 준수합니다.

승천일에 대해서 크리소스톰(Chrysostom, 347-407)은 “모든 기독교 축제일들은 마귀를 정죄한다. 그러나 이 날(승천일)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레네우스(Ireneaus, 130-200)는 “비록 세상 끝자락까지 전 세계에 흩어졌다 하더라도 교회는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전수받았고, … 그분께서 육체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전해 받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도 승천에 대해서 “모든 기독교 절기들이 주는 은혜를 최종적으로 확증하는 절기가 승천일이다. 이 절기가 없다면 모든 절기들의 유익함은 사라질 것이다. 구세주께서 하늘로 올라가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출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며, … 그분의 수난도 우리에게 아무런 열매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분의 가장 거룩한 부활 역시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전반부를 "인격, 성자 하나님"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은 화육(化肉), 수육(受肉)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예수의 인격과 사역”으로 정의하는데, 주와 구주입니다. 주는 참 하나님으로서 인격이고, 구주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사역입니다. 우리는 앞서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성경계시를 하나님의 독생자, 참 하나님, 빛에 나온 빛, 만물의 창조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이 땅에 내려오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내려온다는 주장은 신화(神話)에나 등장하는 상상입니다. 신화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여러 가지 사건들을 벌리는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의 시작은 하늘의 아들이 내려와 아들을 낳은 것, 즉 신의 아들이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점지하는 일을 삼신할매(여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남신)가 난봉질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고대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은 주장이 많았습니다. 유대교적인 에비온파(Ebionism)와 가현설(假現說, Docetism), 영지주의(Gnosticism)가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에 대해서 주의를 명령하였습니다(요일 4:2-3). 가현설(도케티즘)과 영지주의(그노시즘)은 한 쌍인데, 가현설은 육신으로 오심과 십자가의 죽음을 부인하는 것(보였지만 사실이 아닌)이며, 영지주의는 구원하는 지식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에비온주의는 유대교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 예수만으로 메시아됨까지는 주장하지만,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합니다. 이레네우스에 의해서 정죄된 이집트의 케린터스(Cerinthus, ?-AD 100)는 사람인데 세례를 받을 때에 영이 강림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하였고, 할례, 안식을과 천년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명확하게 예수께서 주와 구주이심,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해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고백합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창조되지 않은 주께서 피조물이 되신 것(the Uncreated is created)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에 종말의 시작을 선언한 것입니다. 자유주의에서 메시아의 도래를 종말의 시작으로 규정하였는데, 그들은 역사의 대전환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심으로 구원과 심판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한다면 끝을 낼 수 없는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서철원 박사는 성육신의 목적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성육신의 필요성을 “언약의 성취, 원상회복의 법, 속죄제사, 새 인류의 조성”로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임을 믿고 고백합니다(마 1:21).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는 방식도 직접 오시는 방식이 아니며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닌 여인의 몸에서 독특한 출생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그것은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중보자는 사람과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딤전 2:4-5).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죄를 사하시는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불법과 불의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자가당착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반역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일방적인 선포로 진행하는 것은 부당한 독재입니다. 서철원 박사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원상회복(原狀回復, restitution)의 법으로 제시하였습니다(민 5:5-10).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죄를 대속할 속죄제물이 되시는데, 인류 제국에 의해서 처형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인류에서 너무나 작은 나라에 불과해서 인류의 대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작은 고을 나사렛 사람이 인류의 제국인 로마의 반역자로 처형됨으로 인류에서 택자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였듯이, 세계 국가가 하나님께 반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함을 가장 선함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야 하였습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뒤에 전개될 이해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김석환 박사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 뒤편에서는 사색이 많다고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승천하신 주 예수의 존재방식을 규정하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너무나 확실한 진리입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성탄절을 알고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가장 비싼 성탄절 트리 가격은 132억원인데,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호텔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아랍 국가들도 성탄절을 법정 공휴일로 제정하였다고 합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뒤에 교회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잉태되지 않음으로 아담의 반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루심이 창조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한 성육신입니다. 서철원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성에 대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심과 함께 죄인인 마리아의 태(胎) 속에서 부패의 오염에서 보호하신 것까지 제시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됨은 성적(性的)인 상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성(The Innocence of Jesus)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죄해야 하는 것은 속죄제물이 되시기에 합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칼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하면서, 범죄한 뒤의 아담의 성품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참고 권호덕의 “칼 바르트의 성육신 이해”). 정통신학은 그리스도의 무죄성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칼 바르트가 제시한 성육신 이해는 신학의 지계석(地界石, Boundary stone)을 옮긴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성육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동정녀 탄생에 대한 에베소 공회의(431년)와 칼게돈 공회의(451년)을 제시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공교회는 한 위격에 두 본성을 결정하였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 하나님을 나신 여인(Dei genetrix)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하는 것이 마리아 신격화로 전혀 이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어머니는 “마리아에게서 낳으신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마리아는 숭경할 대상이 될 수 없는데, 교황주의는 마리아를 숭경하면서 숭배로 중보 개념까지 확산시켰습니다. 마리아의 평생동정(Perpetual Virginity)을 649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결의하였고,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태, Immaculate Conception)’를 선포하였습니다. 1921년 교황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마리아의 중보론(Mediator Dei)을 확정하며, 5월을 “성모성월”로 규정하였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무류(敎皇無謬性, Papal infallibility)의 권위로 1950년 ‘마리아의 승천(Assumption)’을 교의로 발표하였습니다. 그것은 효과적인 마리아 중보 사상까지 전개하였고, 성모신심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기독교는 예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으심 그리고 장례되었습니다” 앞에서 제시하였듯이 신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고백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의 생애는 죄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애에서 죄가 없음은 속죄제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증명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장례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롬 1:2-4).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에게 십자가 형(刑)을 받으심을 고백하는 것은 특징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고백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예수를 증언해야 할 인격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AD. 26년부터 36년까지 10년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 관할의 총독(Praeses/Praefectus Iudaeae, 행정장관)이었습니다. 시리아의 구레뇨 총독(Proconsul, 전직 집정관)이었습니다(눅 3:1). 예수께서 BC 4년에 태어나셨다고 하면, AD 26년은 30세가 됩니다. 연대기적으로도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예수께서 십자가 형으로 죽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께서 지내신 고난의 삶은 우리의 고난을 체휼하신 위로이며 능력입니다(히 4:15).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애와 함께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난을 묵상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시험, 가장 힘든 조건에서 받으신 시험은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우리가 받은 어떤 고난보다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삶에서 받은 큰 고난과 충격 때문에 믿음을 떠난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장차 받을 영광으로 비교하여 격려하였습니다(롬 8:17-18).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장소는 골고다 위에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골고다(갈보리)는 성전산, 모리아 땅의 바위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심으로 구약에서 가장 큰 저주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신 21:22-23, 벧전 2:24, 갈 3:2, 5, 13-14). 십자가 형은 가장 큰 고통과 가장 부끄러운 형벌입니다. 인류에 무서운 형벌이 많지만 부끄러움을 주는 형벌은 거의 없습니다. 십자가 형은 부끄러움의 형벌이고, 주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극복하셨습니다(히 12:2).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빠른 시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확인을 위해서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요 19:34).

주 예수께서 “성경대로 사흘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고전 15:4, 롬 1:2-4, 행 1:10-11, 히브리서, 계 4-5장). “성경대로”(고전 15:4), 롬 1:2의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심과 부활을 세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성경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죽으신 뒤 사흘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500명이 넘습니다(고전 15:5-8). 교회가 준수하는 주일(일요일)은 부활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만, 인류 역사도 함께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특별계시로만 가능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제시된 부활의 증거는 누구도 예수를 믿지 않음을 핑계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확증하여 주신 것입니다.

앞부분에서 승천에 대해서 미리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승천에 대해서 많이 소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은 천상 통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로고스, 성자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구속을 자기 백성에게 은혜로 주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며(Extra Calvinisticum),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교회와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주 예수께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재림의 목적은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초림의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마 1:21). 산자와 죽은자는 신자와 불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죽은자를 그리고 산자를 심판하여 공간과 시간을 종결시키실 것입니다. 현재 공간과 시간이 종결되어도 다른 공간과 시간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몸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림의 때를 질문하지 않으며, 재림을 사모하며 재림을 추구합니다. 이단 중에서 재림의 날을 규정하며 미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단은 초림처럼 재림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재림의 날은 알 수 없으며, 단순하게 기다리는 자는 재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재림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초림처럼 재림했다고 믿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며 성경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재림에는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재림했다는데 자신이 심판받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심판받지 않았다면 거짓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인이 재림을 사모하며 신원(伸寃)합니다. 인내, 신원에서 재림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고전 16:22) 고백하는 것이 재림 신앙이 아닙니다. 주 예수께서 “속히 오리라”(계 22:20)고 말씀하셨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이라고 하지만, 재림은 주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주의 재림을 믿는 자는 반드시 생명을 얻을 복음을 힘써 전파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은 사람은 재림 신앙이 없이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재림 신앙은 속히 오리라는 주의 말씀을 믿어, 힘써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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