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칼럼】 재앙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사는 자는 아름답다

  • 입력 2020.05.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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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58) 재앙(disaster)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감염병 위험 최고 단계인 pandemic인 코로나19 사태, 동아프리카에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인도를 건너 중국에 닥칠 사막 메뚜기떼, 이란에 일주일 내린 봄 홍수로 인한 범람, 5개월 넘게 불탄 호주 산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재앙이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대개 전쟁·기근·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한다. 기근을 낳는다.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최근 사태에 대해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재앙으로 본다. 특히 호주 산불과 슈퍼메뚜기 떼의 출현은 인도양의 이상기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의 메뚜기 떼는 ‘사막 메뚜기(desert locust)’다. 1㎢ 넓이에 최대 8000만 마리가 뭉쳐서 날아다닌다. 하루에 3만5000명분의 식량을 먹어치운다. 몸무게는 2g에 불과하다. 매일 자기 몸무게만큼의 곡식을 먹는다.

어린 양이 인을 떼 때마다 땅에 재앙이 일어난다. 인에 의해 전달되는 징조들은 현재 세상이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사상에 도전한다. 수사학적으로, 이 환상은 환난당하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폭력을 당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현재의 삶이었다.

네 말을 탄 자들이 나타나 차례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다. 전쟁과 내전, 기근, 전염병, 지진 그리고 박해가 일어난다. 네 기사가 땅의 거민들에게 끼친 영향들이다. 검과 기근과 사망과 전염병이다. 사망과 음부가 동반된다.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와 맥을 같이 한다. 누가복음의 일곱 재앙이 요한계시록의 여섯 인 가운데 포함된다. 이런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인가. 마귀의 짓인가. 단순한 자연 재앙인가. 전쟁, 전염병, 기근, 사회적 갈등, 사망은 마귀의 짓인가. 인간의 죄의 산물인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인가. 어린 양은 인을 뗀다. 그가 현재 세상에 전쟁과 폭력과 전염병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복종해야 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감람유와 포도주를 보호하신다. 셋째 말 탄 자의 행동을 제한한다. 사망의 범위를 제한한다. 땅의 사분의 일이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에 있어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 편안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스크를 써야 하고 사회적 거리를 두는 불편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천지 이만희는 코로나 19에 휩싸인 신도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짓”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19 배후는 마귀인가. 첫 네 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이다.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이다. 거짓 믿음에서 참 믿음을 가려낸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 예다(눅 21:20 이하). 알곡에서 쭉정이를 분리시킨다. 처음 네 인을 뗄 때 네 명의 기사가 등장한다. 하나의 단위를 형성한다. 네 생물 중 하나에 의해 호출된다. 각각 땅의 백성에게 재앙을 일으키거나 일으키라는 위임을 받는다. 전쟁, 기근, 전염병, 짐승에 의한 죽음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 사망자가 12만 명에 육박하면서 인터넷과 SNS에는 ‘코로나19에서 배운 교훈들’이라는 글들이다. “중국은 미사일 한 발 안 쏘고 제3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 “제3차 세계대전은 전 인류와 코로나19의 전쟁이다.” 코로나19를 전쟁에 빗대면 첫 번째 인에 나오는 재앙이요, 흰 말을 탄 자는 코로나 19일 것이다. 두 번째 인을 뗄 나타난 붉은 말을 탄 기사로 말미암아 평화가 사라지고 서로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평화가 깨어졌다. 타인이 지옥이 된 세상이 되었다. 셋째 인을 뗄 때 기근이 엄습하고 넷째 인을 뗄 때 사망과 흉년이 밀려온다.

누가 인을 뗐는가. 어린 양이 주어다. 일곱 인을 떼신 분이 어린 양이다. 재앙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인을 뗀 어린 양인가. 기수를 불러낸 생물인가. 말을 탄 기사들인가. 세상에 재앙을 가져온 장본인은 기사들이다. 윗선까지 책임소재를 논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이 있다. 처음 네 심판은 땅에 임한다. 네 기수를 통해 시행된다. 어린 양이 인을 뗀다. 네 생물이 오라고 명령하면 기수가 나온다. 핵심의 주제는 무엇인가. 어린 양, 네 생물, 말 탄 자, 재앙인가. 하나님의 주권이다.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이 세상의 죄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박해자들에 대해 경고하신다. 우리가 너무 편안하게 되지 않도록 그의 자비로우심으로 우리를 막으신다(요일 2:15-17).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시다. 고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난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진실하다는 것에 대한 신적인 증거의 인이며 표지다.

말 탄 자의 활동은 하나님의 허락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어린 양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전체 과정을 통제한다. 네 생물 중 하나가 상황을 지휘한다. 허락을 받은 말 탄 자들이 행동으로 옮긴다.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다. 네 기수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의 대리인들로 행동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세 사건 모두 ‘받아’ 이루어진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통해 행동이 조준된다.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완곡어법이다. 비인칭 수동태다.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주권자의 허가를 나타내는 상투어다.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poster by Victor Mikhailovich Vasnetsov
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 poster by Victor Mikhailovich Vasnetsov

 

2. 전쟁과 정복의 위협

일곱 인 심판은 나팔과 대접 심판을 준비하는 땅에 대한 예비적 심판이다. 두 부분으로 나눈다. 처음 네 심판은 땅에 대한 심판이다. 세 심판은 우주적 심판이다. 종말과 함께 끝난다. 첫 번째 인을 뗌으로 말을 탄 자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고난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것이다. 비록 적에게 패배를 당할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승리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시는 것을 거억해야 한다. 역사 가운데 그의 목적들을 성취하신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구속적 목적뿐만 아니라 신실한 인내에 대한 상급까지 기억해야 한다(21:4).

B.C. 27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국의 첫 황제가 된다.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 즉 존엄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얹어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단지 로마의 제1 시민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princeps라고 자처했다. 하지만 그는 황제 숭배를 강요했다. 스스로 메시아를 자처했다. 역사가들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통치하게 된 시기부터 A.D. 180년까지의 200여 년을 로마의 평화 시대, Pax Romana라고 부른다. 로마의 평화는 로마의 군사력에 의한, 피로 물든 평화였다. 흰 말 탄자의 전쟁과 정복의 위협은 Pax Romana에 도전한다. 로마는 제국의 경계 안에서는 평화를 유지했다. 보다 강력한 침략자들은 로마의 평화의 허구성을 이제 드러낼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마제국은 결국 몰락하고 만다. 왜 몰락한 것일까? 끝없는 전쟁, 정치인들 간의 권력투쟁, 극심한 불평등, 자연재해, 전염병 등 수많은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로마제국의 동쪽 국경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던 파르티아(Parthians) 기병대 궁사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언제나 파르티아인들이 로마의 방어선을 뚫고 제국 서쪽으로 침입해 올 잠재적 위험이 있었다. B.C. 3세기 중반 파르티아 제국이 수립되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명맥을 이어간다. B.C. 53년, 다시 B.C. 36년 그리고 A.D. 62년에 Vologesses가 이끄는 기마 궁병들이 로마 군대를 상대로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두었다. 요한이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사적 정복이다. 1935년 나라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이란의 국명은 Persia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늘날 이란 남서부 해안 지역에 사는 민족을 Fars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바뀌면서 ‘페르시아’로 변한 것이다.

네 말을 탄 자는 역사 전체에 걸친 심판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힘을 나타낸다. 일부러 ‘보좌에 앉은 이’와 ‘말 탄 자’를 연결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흰색은 순수함과 기쁨의 상징이다. 이 구절에는 수식하는 형용사가 없다. 회색인지 흰색인지 알 수 없다. 흰 말을 탄 첫 번째 말 탄 자는 제국의 상징이다. 19:11의 백마를 탄 자와 대조된다. 그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다.

‘이기다’에 해당하는 ‘νικάω’(니카오)가 같은 문장에서 두 번 강조된다. 흰 말을 탄 자는 거짓 정복을 사탄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네 번의 인 심판은 진행은 정욕에서 시작한다. 이기는 것으로, 내전으로, 기근으로, 재앙과 사망으로 이어진다. 비인간화 과정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의 죄가 돌고 돌도록 허락하실 뿐이다. 자기 파멸에 이르도록 허락하신다. 탕자가 집을 떠나는 것과 고생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은 악에게 그의 뜻을 행하라고 명하시지 않으신다. 악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실 뿐이다. 정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내전이 일어난다(6:1-8). 인류의 사분의 1이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인간의 부패성이 돌고 돌도록 허락하신다. 첫 번째 말 탄 자의 환상이다. 민족의 안전을 위해 로마 또는 다른 어떤 도시에 자신들의 소망을 두는 사람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제국들은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유일하게 영속하는 나라는 죽임당한 어린 양이 다스리는 나라뿐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된다. 마귀의 세력도 신적 인허가 있어야 한다. ‘받아’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신적 수동태다(passivum divinum).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수동태는 요한계시록에서 22회 사용된다. 세 번째 기사는 제외된다. 모든 기사들에게 부여되는 하나님의 위임 또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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