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칼럼】변화하는 환경에서 협업함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 입력 2020.03.31 08:41
  • 수정 2020.03.3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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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53) 동역자(fellow worker)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서로의 다름과 조화를 이루어 협력하는 게 번거로운 일이니 차라리 혼자 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어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하여 협력이 필요하기에 협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동료 인류와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사는 데 있고 인류 문명 역시 오직 협력 위에서 가능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한다. 밀레니엄 세대와 어울리는 썰렁 개그다. 쥐 중에서 제일 잡기 힘든 쥐는 무슨 쥐일까. 생쥐, 톰 앤드 제리, 미키 마우스, 미꾸라지(?) 등의 답이 나올 수 있다. 정답은 물론 “시너지(쥐)”다.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입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협력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쥐 중에서 제일 잡기 쉬운 쥐는 무엇인가. 단연 ‘독 안에 든 쥐’다.

‘일수독박 수질무성(一手獨拍, 雖疾無聲)’은 ‘한 손으로만 박수를 치면 비록 빠르게 칠지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신관계의 원만한 조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으로 한비자 ‘공명(功名)’ 편에 나오는 말이다. 바울은 그의 선교활동에 있어서 그를 도와주었던 남자 동료들을 지칭할 때 ‘동역자’라는 명사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즉 우르바노(롬 16:9), 디모데(롬 16:21; 살전 3:2), 바울(고전 3:9; 고후 1:24), 디도(고후 8:23), 에바브로디도(빌 2:25), 유오디아와 순두게(빌 4:3), 빌레몬(몬 1절), 여러 다른 사람들(고전 16:16; 골 4:11; 몬 24절; 요삼 8절)이다. Amy Edmondson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책 ‘티밍’에서 빠르게 변하는 미래 사회에선 같이 일하는 사람이나 팀이 매일 바뀌어도 이를 민첩하게 배우고 적응하는 티밍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티밍(Teaming)’이란 변화하는 환경 아래서 여럿이서 협업하면서 대응하는 과정을 뜻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동역자들이다. 동역자에 해당하는 ‘συνεργος’(쉬네르고스)는 항상 복수로 13회 사용되어 있는데, 그 중 12회는 바울서신에, 1회는 요삼 8절에 사용되어 있다. ‘동역자’(fellow worker) 또는 ‘돕는 사람’(helper)를 의미한다. 바울은 남자 선교사들만 동역자라 하지 않고 여성인 브리스가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명명하고 있다(고전 16:19; 빌 4:2-3). 동역자란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대리자(agent)로서 선교사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고전 3:12-14; 빌 2:30). 남성과 여성이 언약의 동반자로서 지닌 지위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최종적으로 쇄신될 때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갈 3:28).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

한 사람의 역량이나 한 방면의 능력만으론 일을 이뤄내기 어려운 것이다. 세상사 협력과 조화가 강조되는 이유다. 물론 협력의 가치는 개인 간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에세이스트 Joshua Wolf Shenk가 쓴 ‘짝의 힘(Powers of two)’이란 책이 있다. 위대한 창조적 업적은 한 천재의 독단적 영감에서 나오는 것보다 ‘짝의 협업(協業)’에서 나오는 사례가 많다는 걸 보여준 책이다. 그는 짝을 창조의 가장 기초적 단위라고 규정한다. 얘기를 좋아하는 천재가 있다면 누군가는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내면 구체화하고 실용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바울에게 있어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훌륭한 짝이었고 동역자였다.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에게 인사말을 전하는 첫 문장이 이 문장 목록 가운데 가장 긴 문장을 할애한다(3-5절). 이것은 아마 이 부부가 바울의 사역을 로마교회에 중재하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고린도에 선교하러 갔을 때 처음 만났다(행 18:2). 이 동역자들이 바울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개인적인 헌신을 입증한 것은 바로 에베소에서 선교하는 동안이었다. 에베소에서 그들과 합류하여 오랫동안 동역했다(행 18:18; 고전 16:19).

바울은 자신의 모든 편지에서 가장 긴 문안 목록에서(롬 16:3-16), 26명의 개인과 적어도 5개 가정교회에 문안을 보낸다. 그가 가 본적이 없는 로마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은 선교지에서 만났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인사말은 바울이 이전 동역자와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 대해 가진 애정을 표현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주 안에서’를 통해 그들이 나누는 새로운 생활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로마의 많은 사람들에게 문안 인사하는 것은 바울이 로마교회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논지를 확증한다.

Mark Atteberry의 책 ‘삼손 신드롬’에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색있는 한 남자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삼손이다. 그에게는 친구나 멘토가 없다. 아론과 함께한 모세, 갈렙과 함께한 여호수아, 요나단과 함께한 다윗, 바나바나 실라와 함께한 바울과 같은 인물들과는 다르게 삼손은 그 옆에 아무도 없다. 그는 삶의 힘든 여정을 전적으로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며 떠돌아다녔으며, 그 결과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의 괴력도 그가 만난 도전들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amson Slaying the Lion (1628) by Peter Paul Rubens
Samson Slaying the Lion (1628) by Peter Paul Rubens

바울에게는 동역자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에게 있어 부부동역자이다. 자신들의 집을 신자들을 위한 가정교회로 제공했다. 또한 바울을 물질과 마음과 기도로 후원해 유럽 선교의 발판을 구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진 연리지였지만, 실은 복음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성령으로 맺어진 영적 연리지인 셈이다.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동역자임을 말한다. 바울은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라는 것을 밝힘으로 그들을 치하할 뿐만 아니라 동역자들의 권위를 강화시켜 주고 있다. 로마서 16장의 문안 인사는 주께 속한 자들 사이의 연대성과 애정을 나타낸다. 인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3절),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9절), ‘그리스도 안에서’(10절), ‘주 안에 있는 자들’(11절), ‘주 안에서’ 수고하는 자들(12, 13절), ‘주 안에서’(13절) 택하심을 입은 동역자들이라는 표현에 주목하게 된다.

2. 바울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아내인 브리스가를 남편보다 먼저 거론하는 것에 대해 학자마다 견해가 여러 가지다. 신약의 다른 세 군데에서도 남편보다 먼저 이름이 나온다(행 18:18, 26; 딤후 4:19).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내가 남편보다 더 유력하고 박식해서일까. 영적인가. 더 활동적이었을까. 그녀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가, 그녀가 남편보다 먼저 회심하였기에, 예의상 또는 단순히 문체적 변화를 주기 위해서라는 많은 의견이 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함께 초기 유럽 선교에 중요하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바울의 선교 동역자였다. 그들은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했다.

바울은 그의 선교활동에 있어서 그를 도와주었던 동료들과 성도들을 지칭할 때 ‘동역자’라는 말을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구절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즉 바울은 그의 동역자들을 지칭하는데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치하하고 있으며 동역자들의 권위를 강화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주 안에서 동역자요, 수고한 자로 거명된다. 남성들 중에서 우르바노만이 ‘동역자’로 불린다. 로마서 16장에 언급되는 10명의 여성 가운데 두 번째 이름이 브리스가이다. 남편 아굴라와 잘 알려진 여성이다. 글라우디오 황제의 축출 명령으로 로마에서 쫓겨나서 바울보다 먼저 고린도에 발을 디딘 로마교회 여성 지도자였다(행 18:2). 장막을 만드는 사업을 하였다(행 18:3).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사역하였고, 그 다음에 에베소로 먼저 가서 봉사했다(행 18:18). 그곳에서 아볼로에게 성령의 세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도 했다(행 18:26). 그리고 바울과 함께 에베소서에서 한동안 함께 일했다(고전 16:19).

여성들에 대한 메시지를 포함한 성경 전체의 메시지는 가부장이나 남성 우월주의를 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며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는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인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창 1:27). 이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지음 받았다는 뜻이다. 땅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위임받은 부왕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남자와 여자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한다. 유대교와 이교 세계를 막론하고 노예의 지위에 있던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한다. 수백만 년 남성우월주의자, 즉 ‘마초’(macho) 사회였다. 마초들이 볼 때 여자가 남자와 하나다, 동등하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노예와 자유인이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시대였다. 그런데 복음은 인종적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가 되게 한다. 신분을 볼 때 노예와 자유인을 하나가 되게 한다. 성별로 볼 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한다.

여성이 남성의 재산이었고 항상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던 고대 근동의 남성 우월적 로마 사회와 판이하게, 창세기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이며, 동역자의 위치에서 창조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복음은 여성들을 남성들과 동일한 구원의 상속자로 만들었다(갈 3:28; 벧전 3:7). 뿐만 아니라 고상하고 훌륭한 덕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 즉 ‘쉬네르고이’가 되려 함이라고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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