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히브리서 13장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quem,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consubstantialem Patri; per omni facta sunt; qui propter nos homines et [propter] salutem nostram descendit de coelis et incar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ine et humanatus [homo factus] est; et crucifixus est pro nobis sub Pontio Pilato [passus]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ascendit in coelum [co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interum venturus, cum gloria, judicare vivos et mortuos; cujus regni non erit finis.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토록 출생하신, 하나님에서 나온 하나님, 빛에서 나온 빛,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 출생하셨지만 창조되지 않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입니다. 그를 통해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으심 그리고 장례되었습니다. 성경대로 사흘에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는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 참 하나님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아멘.

2조 신앙, 주 예수 그리스도 믿음 고백에서 네 번째로 분류한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cujus regni non erit finis/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는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특징이며, 기독론과 신학 전체를 규정하는 문장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 참 하나님으로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는 교리 문장은 변호적인 성격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처한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방어를 해야 합니다(The Defense of the Faith).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은 외부와 내부에 있습니다. 교리는 내부에서 발생한 공격을 방어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문장으로 확정한 것입니다. 외부의 공격은 영적 능력으로 견디며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 있는 가라지의 공격은 확실한 교리를 확립하는 길 외에 없습니다. 교리(Dogma)는 없었던 것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공격받은 믿음의 내용을 문장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 교리가 아닌 것으로는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원수들의 지능은 결코 미련하지 않는데, 우리보다 더 미련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지식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의(義)를 구하셨습니다(마 5:20).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cujus regni non erit finis)”로 번역하였지만, 문자적인 번역은 “그의 왕국은 끝이 없습니다”입니다. 교리 문장은 능동적인 문장이 아니라, 수동적인 문장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교리를 세웠다고 보기보다는, 원수들이 복음과 교회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변증적인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심을 부정하는 것을 제시하였습니다(요일 4:2). 인간 예수뿐인 에비온주의와 ~처럼 보인 가현설(도케티즘)은 모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신다는 개념은 성경에서 명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가치”를 말하고 싶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로고스(LOGOS)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빛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서신에서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거짓 가르침(이단)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성자 하나님께서 영원히 영광받으시며, 통치하시며,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는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고백이며, 아버지와 아들께서 동일실체이시기 때문에 동일한 영광과 능력을 소유해야 하는 논리적인 귀결이기도 합니다.

첫째, 예수께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신 말씀(마 24:36, 막 13:32, 행 1:7-8), 때문에 아들을 낮게 평가하려고 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의 인격은 무인격적 인격(Anhypotatia)으로 신적 위격(persona divina)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속(從屬) 개념을 기독교는 거부합니다. 종속론은 양자론과 연결된 잘못된 개념입니다. 종속론(양자론)은 일신론을 강조하려는 경향을 가진 이단적 교설(heretical idea)입니다.

어거스틴은 “아들께서 재림의 시기를 알지 못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재림주께서 오심은 아버지의 때이지만, 지식이나 시간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성령 강림 때까지 제자들을 위해서 침묵하시는 것입니다(행 1:7). 성령을 받은 뒤로 사도들과 교회는 더 이상 “그 날과 그 때”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를 증언하기에 전력할 뿐입니다(빌 1장). 사도 바울은 오직 한 가지(십자가의 도) 외에 다른 것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 2:2, 고전 1:18-31).

(참고) 잘못된 질문에 충성되게 답변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으며,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은 우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우문하는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지막 날 그 나라를 아버님께 바친다”(고전 15:24, 28)고 하는 성경의 기록은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매튜 폴은 “그 때에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성부 하나님께 바쳐 드리시고, 그 이후로 함께 영원무궁토록 그 나라를 다스리시게 되실 것이고, 그 다스리심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자 중보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왕권은 그의 모든 원수들이 복속되어서 중보자로서의 자신의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그 왕권과 나라를 성부 하나님께 바쳐 드려서, 성부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게 하시지만,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서 그 나라를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시게 되시리라는 것이다”라고 제시하였습니다. 메튜 폴의 주석은 중도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중보자 없이 성부 하나님께 직접 경배하는 것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중보의 영원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8:6에서 중보는 영원하다고 고백합니다(being yesterday and today the same, and forever). 메튜 폴의 진술에는 성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함께 있다고 말하면서, 영원한 경배는 말하지만, 사역은 없는 성자 하나님을 말하는 맹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내용에서 합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재림 전까지 복음을 전도하고 구원하는 중보자의 절대 필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림 후에 성자 하나님께서 중보 사역을 중지하느냐?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메튜 폴은 영원히 영광 받으신 아버지 옆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저는 영원한 중보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며, 삼위일체 영광이 가득하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직접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서철원 박사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고전 15:24)는 아들이 옆으로 옮겨지는 형태가 아니라, 아들께서 구원하신 택자의 총수를 온전하게 중보하는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숫자가 전혀 없는 완전한 새하늘과 새땅이 열린 영원합니다(고전 15:28).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의 창시자(Author)께서 천사보다 못하게 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히 2장).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히 8:6). 히브리서 기자는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받은 사람들(히 10:39-11장)이 믿음의 창시자이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를 바라봅니다(히 12:2). 평강의 하나님께서 큰 목자의 영원한 언약의 피로 온전케하셨습니다.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영원 영원합니다(히 13:20-21).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그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Regnum Christi)”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천상의 주(caelestis Domini) 하나님께서 지상에 자기의 유일한 기관을 세우셨습니다. 교회에서 천상의 교리(cealestis doctrina, Inst 1.6.2)로 자기 백성을 가르치시며,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십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cujus regni non erit finis)”가 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어떤 혼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년기입니다. 천년기에 대한 제시는 영지주의 한 축인 케린투스(Cerinthus-100, AD)에서 나타났습니다. 요한일서에서 비판하는 영지주의자가 케린투스라고 합니다(요일 4:2). 케린투스는 재림(再臨)의 때와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는 때 사이의 기간 동안에 예수가 육체의 오관의 쾌락이 존재하는 천년왕국(千年王國)을 세울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천년기론은 조로아스터교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있습니다(위키백과). 필립 샤프는 케린투스를 제시하면서 각주(脚注)에서 이레니우스가 비판할 때에 천년왕국적 종말론 부분에서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레네우스도 천년왕국론자로 평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천년왕국적 종말론을 거부하였는데, 시작한 교부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가르침을 확정한 것입니다.

천년왕국론의 시작은 이레니우스가 아니라 케린투스라는 것을 인지하여아 합니다. 이레네우스가 케린투스의 천년왕국론을 비판하지 않았지만 케린투스와 유사한 천년왕국론이 아닙니다. 이레네우스 인류 역사를 6,000에서 7,0000년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레네우스는 천년왕국론을 반대한 알로고스파(the Alogi)파도 거부하였습니다. 알로고스파는 케린투스를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여길 정도입니다. 그것을 이레네우스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필립 샤프의 논리가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필립 샤프의 글에는 기독교 역사를 오해할 여러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레니우스가 천년왕국론(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창시자로 볼 수 없음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레네우스(Irenaeus, ?-AD 202)는 서머나 출신으로 사도 요한,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 ?-AD.108), 폴리갑(Policarp, AD. 80-165)을 잇는 교부이며, 프랑스 리용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천년왕국론을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 거부했다고 주장하지만, 천년기론은 콘스탄티노플 신경(381년)이 종결시켰습니다. 어거스틴은 386년에 암브로시우스에 의해서 회개하고 387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거스틴은 공교회 신학으로 천년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공교회 신학에서 거부한 천년기론을 다시 등장시킨 위인은 12세기 부정신학자 요아킴(Joachim de Floris, 1135-1201)입니다. 그는 “성령 시대(the third period od the Holy Spirit)”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계시록 주해(Expositio in Apocalipsim)”에서 성부 시대, 성자 시대, 성령 시대로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년기론(chiliasm)은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인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서 시작하였습니다(세대주의와 휴거이론). 졸 넬슨 다비는 재세례파의 영향에 있습니다. 그리고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는 각주에 논리가 빈약한 글로 이레니우스가 천년왕국을 주장했다고 말한 것에서, 고대교회의 교부들을 전천년주의로 전락시키는 원점이 되었습니다. 스코필드(Cyrus I. Scofield, 1843-1921)의 스코필드 주석(Scofield Reference Bible, 1909)에서 구체화되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부분 전천년기론을 신봉하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부흥 운동은 초교파적 운동이며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 부흥의 열정으로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와 선교하였습니다. 박형룡 박사(1897-1978)는 네덜란드 개혁파인 루이스 벌콥의 신학을 한국 장로교회 신학교에서 교육하였지만, 천년기론에서는 벌콥의 내용이 아닌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계속하였습니다.

우리는 천년왕국론의 시발자(始發者)가 케린투스라고 밝혔고, 사도 요한께서 거부하였고(요한일서),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명시적으로 거부하였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케린투스 사상이 유대교로 회귀하는 사상으로 평가하며 엄격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천년왕국론의 기본은 친 유대주의에 있습니다. 세대주의적 천년기론(Dispensation Millennialism)은 시오니즘(Zionism)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천년기론이 아니어도 친 유대주의 사상인 새관점학파(new perspective on Paul, NPP)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천년왕국론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이후에 다양하게 변화하였습니다. 전쳔년기론(Premillennialism)과 후천년기론(Postmillennialism)이 형성되었습니다. 전천년기론에는 세대주의 전천년기론(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과 역사적 전천년기론(historic premillennialism)이 있습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견지하는 종말 이해(eschatology)을 무천년기론(amillennialism)으로 한 섹션으로 만들어 유사하거나 동등한 위치로 전락시켰습니다. 공교회의 종말 도식은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cujus regni non erit finis)”입니다. 개혁교회는 천년기론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천년기론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고백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천년이 있고, 없고를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천년기론이 무천년기론과 유사하다고 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후천년기론에는 예루살렘 의식이 없으며, 교회가 그 일을 수행하여 이상적인 지역 사회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잉글랜드 청교도주의자들이(분리파와 비분리파 청교도) 발상한 체계입니다. 전천년기론과 다른 것은 재림한 주님의 왕좌가 아니라, 교회가 왕좌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아닌 자기 지역에서 이상적인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의지입니다(언덕 위의 하얀집). 전천년기론은 둘로 구분하는데, 역사적 전천년기론은 세대주의 전천년기론을(Dispensationalism)을 거부한다고 하지만, 재림하신 주께서 지상에서 천년 동안 통치하는 형태가 같습니다. 세대주의 전천년기론에서는 그 장소를 예루살렘으로 명시하는 것이고, 역사적 전천년기론에서 그 장소를 명시하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기론은 조지 래드(George Eldon Ladd, 1911-1982)에서 구체적인 주해 작업이 완수되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기론은 고대 교회에서부터 천년기론이 유지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명확하게 천년기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전천년론자들이 주장처럼 고대교회부터 유지된 천년기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명확하게 거부하며, 어거스틴, 칼빈, 루터 등 개혁파들 웨스트민스터신학교까지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전천년기론은 세대주의 전천년기론의 비합리적 구조를 타파하는 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대 교회 교부들은 6,000년 등을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통치 기간이 천년이 아니라, 인류 전체 역사 시간을 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 시간의 종결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100년에 뒤에 있을 2,00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교회는 유대교에 대한 명백한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갈 5:1). 교부들은 기독교의 유대화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 유행하는 히브리식 사고(쉐마 교육, 하부르타 교육, 테필린(Tefillin) 등등)는 유대화 혹은 유대인 동경이 많습니다. 유대에 친화적인 성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기독교 교육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군사부(君師父)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거부하는 것은 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 정성욱은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나서 대환난이 시작되고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및 휴거가 일어난 후 교회 중심의 지상천년왕국이 시작되고 그 이후 백보좌 심판이 있고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 한다고 믿는다”고 강연하였습니다. 재림 후 천년이 지나서 다시 심판이 있는 구도는 매우 부당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천년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천년기론이 합당하다는 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주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계시록의 7교회(2-3장)도 문자적이 아닌 상징으로 해석할 것을 제언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이 아닌 교회에 보내는 “복음과 생활 그리고 전도 독려 서신”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바른 종말론은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복음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 2조 신조 마지막은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입니다(cujus regni non erit finis)”입니다. 기독론이 종말론과 긴밀한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말은 주님이 오심이고(재림 신앙)이고, 재림 후에도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기 때문에 재림 신앙이 아닙니다. 주님의 오심을 항상 고백하기 때문에 재림 신앙이 아닙니다. 앞에서 주께서 다시 오심을 고백하였으며, 재림 후에도 그리스도의 나라는 끝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공교회의 고백입니다.

재림 후, 신자의 죽음 후에 성령에 대한 논의는 공교회에서는 있지 않습니다. 구원이 완료된 뒤 성령은 영광 속의 영광으로, 중보자를 통해서 중보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은 자기 백성에게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중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니, 그의 나라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중보도 영원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찬양할 내용은 구원하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우리는 재림 때까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동안 찬양을 받고 아버지께 나라를 이양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천년은 제한임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동일실체(homoousion) 신앙은 영원하시고 참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이시고 구속주 신앙이 알파이고, 재림과 영원한 그의 왕국은 오메가입니다. 아리우스의 영원에서 피조되어 유사한 하나님(homoiousion)이 배격되었습니다. 그런데 영광에서 아버지보다 낮은 단계로 내리는 개념을 수용한다면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는 교리 위에 세워졌고, 교리로 세워집니다. 교리의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계시하셨고, 영원한 삼위 한 실체로 계시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영광에서 전혀 차이가 없는 참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 삼위일체 이룸이 중보자 신앙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영원함을 고백하는 것은 삼위일체 영광을 높이는 고백입니다. 삼위일체께 영원토록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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