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 2:1-13]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함. 부활하신 주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오순절까지 한 곳에 모여 있었다(1절). 그 곳에 모여 있던 120명(1:15)에게 홀연히 성령이 임하셨다(2절). 성령이 임하는 것이 오감으로 인지되는 방식이었다.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온 집에 가득했다(2절). 그리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을 그들이 보았고,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rested on each one of them, 3절). 그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으로 다른 언어들(other tongues)로 말하기를 시작했다(4절).

가시적인 성령임함, 성령임함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방법, 120명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현상을 목격했다(2-4절). 그리고 다른 언어들로 전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기 방언으로 하는 “하나님의 큰 일”들었다(11절).

2. 오순절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순례한다(5절). 유월절에 왔었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만약 먼 곳까지 갔다가 다시 오지 못한다면 예루살렘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유월절 전날에 죽으신 예수에 대한 소식을 모두 알고 있었고, 그 때에 십자가에 죽이라고 함께 외쳤을 수도 있다.

천하 각국으로 표현하며 기록된 지역은 15개 지역이다(9-11절).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자기 방언이 들리자 소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갈릴리 사람이는 것도 알았다(7절). 갈릴리 사람이 아라비아, 본도, 갑바도기아 언어를 구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일(the mighty works of God)”이었다(12절).

예루살렘에서 자기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기 때문에 놀랐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들이 새술에 취했다고 의심했다(13절). 성령훼방죄는 성령의 사역, 예수를 증언하는 복음을 거부하거나 믿으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3. [행 2:14-47] 베드로의 설교(설교본문 요엘 2:28). 교회의 선포된 복음 위에 세워진다. 교회의 시작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인데, 사도의 복음 선포이다. 복음은 교회 이전에 있었다. 1세기 복음이 정통신학으로 확정된 것은 4세기이다. 성경과 교리는 하나이다. 운동을 시작하게 하신 이가 있고, 시작된 운동은 순환 혹은 파동으로 진행한다. 교회를 시작하신 이(창시자)를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칼 바르트의 오류는 현재 교회에서 사유를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은 계시에 근거하여 사유를 진행한다.

사도 베드로는 각기 지방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이 선포되는 기이한 소리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했다(14절). 사도는 현재 시간이 3시(오전 9시)이기 때문에 술취함이 아니라고 확정하면서(15절), 요엘 선지자의 계시 말씀을 근거로 복음 선포를 시작했다(16-21절).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들으라(Men of Israel, hear)”고 설교를 시작했다(22절). 먼저 예수의 무죄성을 그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제시했다(22절). 죄없으신 예수를 유대인들이 법 없는 자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고, 하나님께서 살리셨다(23-24절). 그들의 죄가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가장 극악무도한 죄를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예언을 제시했다(구약에서 예언함, 25절). 성경에서 예언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메시아를 제시 혹은 증거하는 것이다. 다윗은 메시아께서 무덤에서 장사되지만, 주의 영원한 통치를 선언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했다(25-26절). 다윗은 자기 영혼이 주로 말미암아 음부에 버려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27절). 그 다윗의 무덤은 1세기에도, 지금도 예루살렘에 있다. 다윗의 무덤은 예수 부활의 증거이다. 다윗은 메시아의 영원한 통치와 부활을 예언했다(30-31절).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다(32절). 이 일,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인 120명, 그들을 대표한 사도 베드로가 증언을 선언했다. 사도 베드로가 부활을 증언한 것은 승천과 보좌 우편에 앉으심까지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120문도에게 부어주셨다(33절).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지만(34절), 이스라엘은 다윗 왕국이 자기 땅에서 회복되는 것을 꿈꾸기 때문이다. 다윗의 왕국 회복의 꿈은 메시아께서 오시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준 방편이다(35절). 예수께서 오셔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믿음의 순례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아 예수를 유월절에 모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36절). 이제 지상에 형성될 다윗의 왕국이 아닌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울 것이다.

4.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유대인들이 베드로에게 방법을 물었다(37절).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2:38).

사도 베드로는 복음을 제시하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들은 복음에 순종할 것을 선언했다(39절). 그리고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확정했다(40절). 이 말을 받은 사람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41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42절).

※(참고) 개역에서는 “성령을 선물”로 인데, 개역개정에서 “성령의 선물”로 번역해서 혼돈을 줄 여지가 매우 많아졌다. 회개, 죄사함, 성령의 순서는 정형화된 순서가 아니다. 시간적으로 분류할 수 없으며 논리적으로 구분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회개가 선행해야 된다는 주장은 고집스러운 주장이 될 것이다.

구원의 서정 이해에 문제가 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에서 구원의 서정을 보면 회개, 세례, 성령을 선물로 받음의 도식이다. 이것은 1세기 유대인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서정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사울의 회심 이후, AD 70년 이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의 서정이 동일하게 진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죽임에 동참한 유대인들에게 먼저 회개를 촉구한 것이다.

4. [행 2:42-47] 사도의 가르침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유지되었다. 사도의 가르침은 기사와 표적을 동반했다. 초기 교회 세움을 위한 기사와 표적으로 보아야 한다(extraordinary era). 교회가 세워지면 교회는 합리적으로 세워지고 운영되는 것이 합당하다(ordinary era).

교회에서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소유를 포기했다. 이것은 공산주의의 원형이 아니다. 성경은 공산주의의 원형을 갖고 있지 않다. 공산주의는 평등하게 공동분배(계급투쟁)을 근거한 거짓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헌신과 희생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독재적이고 폭압적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도들에게 재산과 소유를 헌신했다. 사회는 헌신에 대해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공짜는 없다), 교회는 헌신에 대한 대가를 주 하나님께 요구한다(오직 은혜). 간혹 성도라면서 사역자의 헌신을 정당하게 주장하며 천국에서 상급으로 연결시켜 주장하는 것은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자기가 할 말과 자기가 할 행동은 구별해야 한다.

그들은 날마다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말씀과 성찬과 찬송과 기도의 삶을 살았다(46-47절). 순전한 마음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게 하셨다.

사도들은 순전한 마음으로 사역했지만, 결국 재산에 관한 운영(구제)은 집사를 세워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다(행 6장). 교회가 취할 우선순위를 알 수 있다. 예수를 경험하고 함께 했던 사도들이 어떤 말씀 준비를 하고 기도를 했을까? 순전한 마음과 함께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명령하셨다.

5.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성령의 오심을 믿습니다. 십자가 구속의 은혜의 공로로 오신 성령은 십자가 구속 은혜를 능가할 다른 힘이 아니고서는 성도에게 임한 내주를 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성령을 받아 교회를 세우고, 함께 성령의 교통을 이루는 교회를 이루게 하옵소서. 말씀과 교제가 충만한 교회를 이루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박사, 논설위원
고경태 박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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