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훈 교수(총신대, 동양철학 전공)

<애愛>ㅡ사랑의 생존법

 사랑은 그리움의 고개를 넘어 온다. 
건강한 다리를 가졌어도 숱한 멈춤과 좌절이 동반된다.
우람한 어깨를 가졌어도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당최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자꾸    자문하고 반문한다.
고개마루에는 늘  안개와 는개가 자욱하다.
눈에 닿아 눈물이 되고
피부에 침투해 핏물이 된다.
심장에 도달한 사랑은 자체 부피와 질량으로 폭발을 거듭하다가 사선(死線)에 멈추어  분신한다.
사랑이 넘는 고개는 생사가 아득하다. 
불 사르고 다시 살아 나는 
사라지고 또 살아 지는ᆢ

 

   <식食>    ........먹는 일에 대한 인사

 

닭이 물을 먹고 하늘을 쳐다본다.
개가 먹이를 먹으며 으르렁댄다.
고양이는 무언가 물고 어딘가로 간다.
닭의 감사와 개의 경계와 고양이의 속내는 식사에 대한 의식(儀式)이다.

나도 식사하며 굶는 이를 의식(意識)한다. 
그것도 포만 이후 짧은 의식이다.
농부와 밥 차려 주는 분들이 고맙고,
먹을 수 있는 나도 대견하다.

식구가 둘러 앉아 밥 한끼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분을 만났다.
식사가 수월한 일상인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
입만 나불거려 더 미안하다.

<스승>

그대 스승을 가졌는가?
두팔로 짚고기어 하늘 오를때
샛별같이 반짝이는 환한 눈빛
두발로 걷고뛰어 바다 향할때
등대처럼 일으키는 바른 손짖
지쳐쓰러진 벌판에서 살포시 안아주던 따스한 대지

그대 스승이 되었는가?
눈물되어  밝히는 눈부신 미소
강물되어  맑히는 옳곧은 채찍
빗물되어  승천하는 인내의 보람

그대  스승인가?
스스로 빛나는 태양
아낌없이 내어주는 촛불
참된 나로 살게 하는  양심

나를 나되게 하는 깊이
나를 남되게 하는 높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넓이
무한한 확장력 사랑이어라.

사진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사진 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길>    

   
앞서 간 사람이 있다.
그리로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결에 발자국냄새가 들려온다.
아버지의 고깃배도 그리 드나들고
첫사랑의 연서가 그리 배달된다.
밝은 날엔 별들이 평원에서 쉬어가고
풀벌레는 외딴 풀섶에서 사랑한다.
그 누구 ᆢ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지존으로
몇번이고 망치고 뭉치다
보석에 새긴 자존심이 벌써 한 길이다.
여로를 기어코 추억할 때마다
아버지가 끌고 온  물고기가 내 미각을 폭행한다. 

사진 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사진 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물>

 - 노자(老子)의 속삭임

물이 물에게 말한다.
앞서 가지도 조급해 하지도 말라.
튀거나 높아지지도 말라.
아픔도 미움도 버려라.
허공에서 왔음을 기억하고
빈 마음을 향해 도도히 가라.
가슴이 불타는 이와 짝하여
소풍(逍風)을 떠나라.
꽃구름에서 소요(逍遙)하고
삶이 손짓하면 그냥 웃자.
순수와 소박에 물들며 
무디게 쓰러지고
무리없이 일어나라.
생명은 여리고 물렁한 것
모진 풍파도 물안개처럼 무너지리니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고
살아 있음에 그대로 살라.

사진 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사진 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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