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문화사역단체, 선교단체의 문제는 바른 신학의 부재에 있어

장대선 목사 (가마산장로교회 담임, 교회를 위한 개혁주의 연구회 회원)

한국에서 ‘기독교문화사역’이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에는 ‘낮은 울타리’라는 단체의 역할이 상당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팝음악(a popular song)에 깔려 있는 사탄(שטן)의 메시지를 ‘백워드 매스킹(Backword Masking)’이라는 방법으로 탐색해 내는 사역자들이 상당히 활동했었는데, 필자도 교회학교의 고등부 시절에 비틀즈의 노래들을 비롯한 유명한 팝음악들을 거꾸로 틀어보니 온갖 저주스런 사탄의 메시지가 들리더라는 문화사역자들의 강연을 듣고 경악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대중문화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새로운 계몽(啓蒙)을 시도한 것이 <낮은 울타리>라는 단체였기에, 한국에서는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사역의 지평을 연 것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데 <낮은 울타리>를 비롯한 기독교 문화사역단체들의 사역에는 한 가지 중요한 오류가 담겨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신학적인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역들은 대부분 대중문화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사탄적인 바탕을 들춰내어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사탄이 정말로 기독교 신앙인들에게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선명하게 남기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기독교 문화사역에 있어서 취약점이 바로 신학적 기반의 취약성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단체들이 여건상 초교파적으로 성립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교파의 신학에 근거하지 못한 채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아주 넓은 상식적 기준에 근거해서 자극적인 비판의식만 조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규모(‘scale’ or ‘size’)’를 중시하는 우리네 정서적 특성을 고려하면, 교회가 아닌 단체가 어떤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초교파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규모와 조직을 갖지 않고서는 단체 자체의 지속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선교단체나 사역단체들이 활동 범위를 특정 교단이나 교파에 국한하지 않고 활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현실적인 배경 가운데서 그들의 활동영역은 주로 신앙에 있어서의 감정적 측면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문화사역 단체들이 소개한 사탄의 계략들에 대한 메시지들은 ‘사탄의 전술전략(Kurt E. Koch 저)’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내용들의 인용이나 확장판이 대부분이다. 그런 소개와 메시지들은 로마가톨릭의 ‘구마의식(Exorcism)’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 지나친 사탄에 대한 공포심과 감정적 대응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심지어 그러한 경계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에게 물러날 것을 선포하는(실제로 외치는) 것과 같이 온통 마음이 ‘미신(superstition)’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흔히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구마의식과 유사한 현대 개신교신앙의 양상들, 이를테면 과거 ‘백워드 매스킹(Backword Masking)’의 유행의 예처럼 감정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들은 공통적으로 신자들의 주의(注意)를 ‘감정(emotion)’에 기울임으로써, 성경의 참된 진리(곧 신학)에는 주의를 기우릴 여력이 없거나 무관심하게 만드는 심각한 패착(敗着)에 이르도록 하기가 십상이다. 그런 것에 감정이 사로잡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바른 신앙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마귀가 우리에게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목숨’이나 ‘감정’의 부패가 아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은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의 부패와 죄로 말미암아 죽을 몸(mortal Being)이요 본성의 부패 가운데서 생각과 마음에서 늘 죄를 잉태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렇기때문에 마귀는 오히려 참된 진리(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어떻게 해서든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정말 힘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은 사탄의 전술전략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지 않고서는 사탄의 전술전략에 대한 관심 자체가 자칫 ‘공포심’을 조장하기 십상인 것이다.

호세아 6:1절에서 선지자는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여, 범죄 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러한 회복에 관해 구체적으로 부연(敷衍)하고 있는 3절에서 이르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게 된 것은 지식을 버렸음(호 4:6), 곧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그들이 다시 회복하는 길은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에게만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백성(호 4:6)”이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택하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하고, 힘써 하나님을 알도록 명하셨다. 그들은 온갖 더러운 우상과 이방의 문화를 탐닉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렸던 것인데, 창세기 3장에서 첫 사람 아담을 유혹했었던 사탄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동일하게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율법) 가운데 선악을 아는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슬며시 빼앗아 간 것이다. 그로 인해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라지고 부끄러움과 죄악의 어두움이 순식간에 드리우고 말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진리)를 빼앗기는 순간, 부패한 인간의 눈에는 사탄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어두움만이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에게 있어서 ‘백워드 매스킹(Backword Masking)’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사탄적인 메시지들을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가르치는 지식(진리)에 대한 착념이 느슨해지지 않토록 더욱 각성해야 한다. 사탄은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그 지식(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탈취(奪取)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패하고 무능하며 무지한 개신교 신앙(Protestantism)이 가득한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들은 호세아 6:3절에 있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말씀에 착념하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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