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 목사(빛교회, 조직신학 교수, Ph. D.)

서울대 영문과 졸, 장신대 신대원 졸 (M.Div.) Princeton Seminary (Th.M.) Drew University (조직신학 Ph.D.) 뉴저지 빛교회 담임목사 (현)뉴저지 신학대학(학장), 뉴욕장신 조직신학 교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의로운 몸을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바치셨다. 그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약속을 따라 동정녀의 몸을 통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과 함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속죄의 제물로 오셨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납할 수 없고, 죄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독생자 예수께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케 하시면서, 인간을 구하시기를 원했다. 독생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고집과 욕심으로 사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를 초월한 신비한 사랑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일견 유대인들의 불신과 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 그리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불의한 재판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러나 그런 불의한 재판과 억울한 죽음 뒤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들어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심에 사로 잡혀 의인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몰았고, 의로운 통치와 재판을 담당해야 할 총독 빌라도는 불의한 재판으로 의로운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 주었다. 십자가 죽음 뒤에는 세상 인간들과,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사악함이 드러나고 있다.

세상에서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비뚤어져 있고, 얼마나 기회주의적이며, 얼마나 불의 할 수 있는가를 드러내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의로운 분이시며, 인간은 모두 죄 아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로마 제국 당시에 십자가의 처형은 노예들이나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극도로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이었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대신해서 노예처럼 죽으셨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왕처럼 살고자 하는 반란의 당사자인 인간들의 죄를 인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십자가의 처형에 앞서 납이 달린 채찍으로 맞아야 했다. 채찍이 몸을 칠 때마다 살이 떨어져 나갔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우리 대신 채찍에 맞았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사53: 5). 십자가에 달린 죄인들은 극도로 목마름을 겪었다. 피가 몸에서 빠져 나간 결과다. 우리가 죄의 결과로 심령의 목마름을 겪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인이 되어 고통스러운 목마름을 체험하셨다(요19:28).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데 예수님은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들은 왕 노릇 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간섭조차 싫어 한다. 그런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 우리들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대신 가시 면류관을 쓰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들의 손과 발은 욕심의 도구로 쓰여질 때가 많다. 그런 우리들의 손과 발을 위해 예수님의 손과 발이 못에 찔리셨다. 로마 군인은 창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한 행위였다. 죽은 자의 몸을 창으로 찌르는 것은 가혹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 온갖 형벌과 고통은 우리들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의 표시요,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 편의 희생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통과 희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은 종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장차 심판의 날을 정해 놓으시고, 사람들의 은밀한 행위를 밝히 드러내시고,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실 것을 예고하셨다(계20:12-13). 십자가의 심판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미리 보여 주는 종말적 사건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날의 심판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심판에서 건짐을 받기 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심판에서 건짐을 받는다(요5:24). 우리가 의로운 삶을 힘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기를 힘쓰는 까닭은 그날의 심판을 알기 때문이다(고전 11:31-32).

십자가는 심판의 장소이면서 또한 새 생명이 흘러 나오는 곳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약함과 죄를 깨닫는 사람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기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을 발견해야 한다. 그가 나를 대신해서 달리신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육신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할 것이다. 성부 하나님 앞에 순종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자신도 하나님 앞에 순종해서 자기 자신의 주장과 고집을 내려 놓기를 원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공경하기를 원할 것이다.

십자가는 인류의 역사 속에 가장 저주 받은 사형 틀이면서도,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축복 된 장소이다. 거기서 우리는 용서를 알게 된다. 거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된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는 성령 충만을 체험하는 장소이다. 자기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바로 십자가 앞에서,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예수님은 오늘도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명령하신다(마16:24). 자기 주장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형벌의 장소이다.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주님의 임재를 가장 크게 체험할 수 있는 축복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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