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브로와 비시디아 안디옥

1. [행 13:1-3] 안디옥 교회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다.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 니게르,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사울 등 선지자들과 교사가 있었다(1절). 안디옥 교회는 이방 지역에 설립 보고된 공식적인 첫 교회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한 놀라운 역사는 바나바와 사울 그리고 선지자와 교사들의 동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함께 주님을 섬겼다(2절). “Now as they ministered to the Lord”, Λειτουργούντων는 minister, preaching, worshiping, serving 등으로 번역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라는 문장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금식이 일상적인지를 분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역이 정상 궤도에 올라왔다고 평가했을 때에, 그들이 새로운 사역을 위해 금식했다고 볼 수 있다. 금식은 특별한 주의 뜻을 구할 때 한다. 자기 소원을 위해서 금식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구별할 것을 말씀하셨다. 성령의 음성은 모두 들었을 수 있겠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2차 금식을 준행했다. 그것은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의 가장 유력한 지도자를 착출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기 위해 금식했다(3절).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고 파송했다. 이 때 두 사람을 보내는 것은 안디옥 교회인데, 교회가 파송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성령께서 보내신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한다. 선교는 성령께서 보내심에 교회가 순종한 것이다.

2. [행 13:4-12] 구브로로 건너가다. 안디옥 교회에 파송을 받은 두 사람,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Seleucia)에서 구브로(섬, Cyprus)으로 갔다. 실루기아는 안디옥에서 서쪽으로 약 26Km에 위치한 항구도시이고, 현재 터키 하타이(Hatay) 지역이다. 셀류커스 I 니카톨에 의하여 BC 30년에 건설되었다. 최정호 목사는 바나바와 사울이 실루기아 항구를 이용한 시기를 AD 45년으로 제시했다(행 13:4). 실루기아는 안디옥 방문을 위한 관문 항구였다. 526년 지진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항구 기능이 아닌 군사 요지로 사용되었다. 최정호는 1차 선교 여행 기간을 3년으로 추정했다(행 13-14장).

구브로의 살라미에서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증인 사역을 시작했고, 두 사람의 수행(隨行, ὑπηρέτην)으로 요한(마가)이 동행했다(5절). Geneva 성경에서는 minister라고 같이 번역했는데, help, assist의 의미이다.

현재 구브로는 그리스와 터키의 영토 분쟁으로 분할되어 있다. 구브로는 실루기아에서 약 210Km 거리를 항해해야 한 섬이었고, 배로 하루길이다. 구브로는 동서 길이가 225Km, 남북 폭이 96Km이다. 참고 제주도의 동서길이와 남북길이가 각각 75㎞와 32㎞이다. 실루기아에서 구브로의 살라미 항구에 진입한다(5절).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고, 박해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존재한 것으로 추측한다. 사도의 전도 여행은 성경의 불모지(不毛地)가 아닌 준비된 지역에서 증언하는 사역이다.

살라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5절). 구브로 바보(Paphos)로 이동했는데, 살라미에서 145Km에 위치한 수도이다. 그곳에서 바예수(Bar-Jesus, 예수의 아들, 엘루마)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가 마술로 활동하고 있었다(6절).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Deputy Sergius Paulus)은 바예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총독 서기오 바울이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다. 엘루마(Elymas, 마술사)는 두 사람을 대적하며 훼방했는데, 바울(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통제하며 맹인으로 얼마동안 앞을 보지 못하게 했다(9-11절). 그 현상을 본 총독이 믿으며 주의 가르침에 놀랍게 여겼다(was astonied at the doctrine of the Lord, 12절).

최정호 목사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세례를 받은 모습이 제시되지 않음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됨의 신비를 제시했다. 아무리 악한 영향력을 막은 능력과 기사라 할지라도 죄사함의 은혜는 복음을 들음으로만 이루어진다. ‘사울’은 로마와 이방 세계의 선교 사역의 효율성을 위해서 로마식 이름인 ‘바울’을 사용했다.

3. [행 13:13-52] 바보에서 버가로 건너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바보에서 사역의 주도권이 바울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13절). 바보에서 배로 밤빌리아 버가(Pamphylia Perga)에 도착해서 사역을 하려고 할 때, 요한이 사역팀에서 이탈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13절). 누가는 마가 요한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 않지만, 사역의 역경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 동역자에 대한 이해는 큰 갈등과 분쟁의 요인이 될 수 있다(행 15:2). 그러나 주의 사역자는 갈등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화합을 이룬다(딤후 4:11, 벧전 5:13).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동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는 200Km 정도이고, 토로스 산맥(해발 1,000m)을 넘어가야 했다. 터키의 토로스 산맥(Taurus Mauntains)은 길이는 800km이며 최고봉인 예르지예스 산(3916m)와 해안 근처에 알라 산(2305m)의 고봉(高峰)이 있다. 토로스 산맥에 “세바스테 길(Via Sebaste)”이 있는데, 로마 군대가 비시디아를 정복하기 위해서 만든 군사용 도로가 있다. 이 로마의 군사 도로에 그리스도의 군사가 진군하는 군사 도로가 되었다. 누가는 험난한 전도 여정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다. 바울도 서신에서 험난한 일정을 간략하게 변호용으로 사용했다. 사도 바울이 사역을 하는 중에 강도를 만난 적이 많은데, 토로스 산맥의 험난한 길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해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강론할 기회를 얻었다(14절). 회당에서 강연자(speaker)를 세우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15절). 고린도교회도 이러한 방식을 사용했고, 무질서하게 강연자들이 난립하면서 무질서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유형은 여호와의증인들이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계시 시대(extraordinary)에 가능한 구조이고, 교회가 체계화된(ordinary) 이후에는 규범된 사역자로 설교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뒤에 일원들에게 발언을 기회를 줄 때, 바울이 서서 전파했다. 바울은 유대인이고 히브리어 등을 잘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고, 구약성경에 근거해서 구약성경이 지시하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바울은 회당에 모인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전파했다(16절). 구약 역사를 통해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여 40년간 불순종을 참으셨고(18절), 가나안으로 인도한 뒤 450년 후에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19절). 바울은 광야 40년 기간을 하나님께서 인내하신 기간으로 해석하면서, 순종을 촉구했다.

선지자 사무엘까지 사사 시대였고(20절), 사무엘로 사울을 세워 40년을(21절), 다윗을 기쁘게 여겨 그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구주를 세우셨는데, 그가 예수이시다(22-23절).

그가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세례로 예수를 준비하며, 지시한 그 분 예수께서 오셨다. 그런데 그 예수를 선지자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 정죄하였고, 죽일 죄를 찾지 못한 빌라도가 죽였다(27-28절). 그것은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한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다(27-29절). 예루살렘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 정죄하여 나무에 달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다(30절).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서 여러 사람에게 보였으니, 그들이 그의 증인이다(31절). 사도 바울은 조상들의 약속을 따라서 전파하는데, 시편에서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시 55:3, 시 16:10).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썩음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예수)는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다(36-37절).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전했다(39절). 바울은 죄사함과 모세의 율법을 따라서는 의롭다함을 얻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의 체계를 제시했다(39-40절).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절, 개역/개역개정)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었던 모든 일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새번역)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죄에서 풀려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공동번역)

개역/개역개정은 “이 사람을 힘입어”이라고 번역했는데, 좋은 번역이 아니다. 현대인의 성경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번역해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자유(free) 혹은 의(to be justified)를 얻는다. 율법으로 자유를 얻지 못했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자유를 얻는다(갈 5장, 요 8:32).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의 회당의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모세의 율법에서도 의롭지 못한 자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내용은 너무나 생소해서, 다음 안식일에도 전파하도록 했다(42절). 그런데 회당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43절).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했다(43절).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다. 메이천은 사도 바울은 신학자로 평가한 이유이다. 신학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히 드러내는 사역자이다.

다음 안식일에 온 시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당에 모였다(44절). 많은 이방인들이 회당에 모이는 것을 본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해서, 바울이 말하는 것을 반박하며 비방했다(45절). 바울과 바나바는 방해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한다고 평가하면서, 이방인으로 향하는 것의 정당성을 외쳤다(46절). 주께서 바울에게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도록 했다고 증언했다(47절). 바울의 증언을 들은 이방인들을 기뻐하였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48절). 그래서 주의 말씀이 비시디아 지역에 두러 퍼졌다(49절).

유대인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박해하고 쫓아냈다(50절). 두 사람은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갔다(51절). 두 사람이 떠났지만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52절).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도, 쫓겨나는 선생을 보호하지 못한 안디옥의 제자들도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된 것이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주의 능력과 인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을 당하지만 그 환난을 기쁘게 수용한다. 그것은 성령충만으로만 가능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은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모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모임과 모임이 연결되기를 바라며, 복음의 근원처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동역한다.

3.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인도하심의 신비에 있나이다. 전능하신 주님의 사역을 하는 사역팀에게 왜 고난이 찾아오며, 왜 우리는 고난 중에 기뻐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사자의 아가리 앞에서 잠잠할 수 있었던 그 놀라운 신비를 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종들처럼 이 부족한 종도 담대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의 복음을 힘껏 전하게 하옵시며, 그 복음으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믿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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