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어 체계에서는 “주어 그리고 대명사”에 관한 명확한 이해가 약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는 서양에서도 흔치 않게 발생합니다.

첫째, “열매로 알리라”는 인식이 주어 인식이 없이 이해한 한 사례입니다.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입니다. 주어(대명사)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순히 ”그들“을 빼고 ”열매로 알리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들“을 넣은 문장에서 이해해야 바른 성경 문장의 의미를 이해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 7:15에서 제시한 ”거짓 선지자들“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들의 열매로 거짓 선지자들을 알리라“가 될 것입니다. 참 선지자나 참 백성의 상태를 판별하기 위한 메시지로 전용하는 것은 성경 말씀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동역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성경, 바울서신에서 “하나님의 동역자”는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우리”를 포함시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를 뺀다면 객관적인 있는 문장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문화에서 “우리”가 익숙한 어휘이기 때문에 좀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고전 3:9에서 “하나님의 동역자”의 주어는 “우리”입니다. 그 때 우리가 누구일까요? 우리의 범주를 어디까지 해야할까요? 그것은 뒷 문장에 “너희”라는 주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너희”와 구분된 “우리”이며, “너희”는 “우리”가 말하는 대상일 것입니다. 우리에 사도 바울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편지이기 때문에, 너희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사도 바울을 포괄한 전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뒤에 “너희”가 있기 때문에 명확합니다.

셋째, 블레셋 여인과 혼인은 삼손의 작전인가?

김경열 박사께서 삼손 이해에 대한 난점을 인터넷 포스팅한 것을 요약할 것입니다. 앞의 글은 이전부터 염려한 것을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Th.M 과정에서 파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문장은 사사기 14:4입니다.

(삿 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문장에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인데, 김 박사는 대명사를 he인데, 우리 번역에서 “삼손”으로 대체하면서 이해에 혼선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김 박사는 대명사 He은 “삼손”이 아닌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오역(誤譯)에 의한 오해가 양산된 것인데, 대명사(주어)에 대한 이해 훈련입니다. 김 박사는 블레셋 심판에 대해서 삼손의 공로는 없으며, 탐욕에 따른 죄와 회개 후에 돌이킨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박사는 “삼손은 자신의 죄값을 치루어야 할 뿐이고, 그저 블레셋 심판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에 이용되는 겁니다. 마치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나,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성취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제시했습니다.

성경해석에서 “주어(대명사) 이해”는 의미 파악에서 첫째로 중요한 요건입니다. 김경열 박사의 제시를 보면 번역에서도 대명사를 바르게 번역하지 못해서 오해할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해석에서 주어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리고 우리 문장에서 대명사 활용이 약하기 때문에, 대명사를 잘 활용하는 영어(헬라어, 히브리어 등)를 이해할 때는 좀 더 면밀한 사고로 대명사를 추적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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