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산 목사 프로필

 

최충산(崔忠山) 1953년 6월 18일 생

서울 청파 초등학교, 경서 중학교, 서울공고 졸업

총신대학 신학과 졸업,

합동신학대학대학원 졸업.

1985년 목사 안수. 한주교회, 개금교회(은퇴)

2007년 월간 창조문예 등단.

고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웃어주니

먼저 나가 식탁을 준비하니

마른 입에 입술 대주니

먼저 간다고 말해주니

나가서 문자로 밥 먹었느냐 안부하니

좋은 것 보았느냐 물어주니

뭘 살까 골목 시장에서 서성이니

몰래 와서 건드려주니

약 먹었느냐 물어주니

무슨 일로 한숨짓느냐 물어주니

걸음 왜 흐느적대느냐며

말끝 왜 또렷하지 않으냐며

눈에 왜 힘이 없느냐며

옆에 앉아 손잡아 주니

저기가 끝이라고 가리키며

같이 꼭 가겠다고 말해주니

일어날 새벽 기약하며 같이 누우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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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밭에서

 

가을 햇볕 따끈하다. 가평 어느 곳

아기 머리만 한 사과덩어리들

떨어지면 사과우박이겠지

옅게 화장한 새색시들 너무 많아서

누가 예쁜지 모르겠네

한 입 깨물면 속살 입에 담은 것처럼

싱그럽고, 단물 올라 발그레한 뺨

입술 대면 잠이 스르르 온다

 

옆에는 오랜 벗 있어

주름살 깊어지는 시름 나누고

지나간 날 우리네 타고 누르던 게 뭔지

그걸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 맑은 날, 가평 어느 사과밭에서

따끈한 가을 볕 내 볼도 익고

사과 볼도 익고

벗 얼굴도 세월 맞게 익는구나

 

그래 그러려무나

내 시름 네 시름 사과알에 올라

맛있게 익어라

예쁘게 익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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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조카가 보내 준 건빵을 먹으며

창고에 있는 딸 짐을 정리한다

시집간 딸이 나중에 가져간다는 것들

열어보니 색연필 그림 도구 재즈 CD들

가위와 헝겊 그리고 작은 노트들

아내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다 버리라 한단다

다 버리라 한단다

손때가 묻어 있는

어린 꿈 어린 장신구들과 만화책들

예쁜 물건이 많은데

아내는 버릴 것 다시 모아 둘 것을

하나하나 가리면서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한다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오늘 딸의 어릴 적 꿈을

쓰레기 봉지에 넣어 폐기했다

딸은 머리가 길고 수염을 잘 깎지 않는

사십이 넘은 사내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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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여름내 꽃으로 속내를 풀어

다 보이지 않음으로

이렇게 열 수 있어

부끄럽지 않습니다

 

있어도 없는 듯

길 가 돌멩이처럼

그렇게 생긴 얼굴이어서

그냥 한쪽 구석

해님만 바라봄으로

비바람에도 제 자리 지킴으로

때맞춰 보여드릴 수 있는

조금은 기쁜 생명입니다

 

이제는 떨어져 다시 흙으로

낙엽 위 구르다가

다시 몸을 부숴 뜨려

살아있는 씨가 되므로

다시 제 가슴을 썩여

무수한 떡잎으로 나올

진정 거룩한 목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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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이 가을이 행복하겠다

지난밤 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방향도 모르 채 헤매다

준비 없는 아침을 맞은 날

누군가

같이 가겠다고 손을 잡아 준다면

이 빈 가을이 가득 차겠다

 

영혼은 뒷 산 대나무 밭에

바람처럼 돌고

육신은 넘어온 고개가 많아

돌처럼 무거운데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면

산들바람처럼 날아갈 텐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상처

먹돌을 안은 가슴은 차가운데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면

다시 책상에 앉아

긴 편지를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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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동에서

 

둔산지구 택지개발 현장 옆으로

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사 왔다

택시 회사가 집 뒤에 있어 밤새 시끄럽고

가끔 공사장 다이너마이트다 터뜨리는 소리가

집 기둥을 들었다 놓는다

 

길이 엄마는 아이들 도시락 반찬이 없다고 걱정하고

나는 안집에서 준 침대에 누워 공상에 빠져있다

극동방송에선 목사님 설교가 나오는데

다시 또 전화벨 소리

하루가 이렇게 시작되는 용문동 212-2번지

아내와 나는 겨우살이 걱정을 한다

 

주인집 민 집사님 높은 소프라노가 현관문을 나서면

뜰 안엔 한결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이 층에 이사 온 한길이 녀석 재롱떠는 소리로

식구들 피로를 씻는다

 

동네 우체국에 월급을 맡겨놓은 길이 엄마

농협 매장에서 현미를 사고

자전거 바구니에 채소를 싣고

우체국에서 엽서 몇 장 부치고

호떡 몇 장을 사서 돌아오는 길이 엄마

그녀의 입에는 찬송 470장이 붙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은지”

 

동네 배불뙈기 아저씨네 고물상 무슨 좋은 물건 들어오지 않았나

궁금하고, 어허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구나

친구 녀석들 전화 하나 없네

오늘 할 일은 별로 없지만

마음은 바쁘고 그만큼 편치 않구나

 

그래도 이 용문동에서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서울 갔다 오면 반갑게 맞는 길이 엄마는

늘 따뜻한 유성 온천탕 물 같구나

길이와 신실이는 튼실하게 크고

오늘도 저녁 상엔 된장국이 구수하다

오늘도 우리 내외는 아이들을 일찍 재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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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하나 고개를 드는 것은

 

들꽃 하나 고개를 드는 것은

여러 친구 둘러서고

고운 흙 앉아있고

산바람 허리 감아 돌고

이슬 하나 잎술 적셔주고

골마다 물소리 깔아주고

 

하늘 넓은 가슴 스쳐가는 빛조각

순간 목숨 조각 바치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간 목숨들

한 구석 소리없는 절규

산골짜기 썩어가는 잎사귀들

피 되어 꽃잎 속에 흐르고

 

이름 모를 들꽃 하나 피어 난 것 어찌 우연이더냐

바위 모래알 되고 들 엎어져 다시 산 되도록

바위 모래알 되고 들 엎어져 다시 산 되도록

저 혼자 고개 드는 꽃잎 하나도 없다

저 혼자 가슴 여는 꽃잎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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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한가운데

 

산속에 파묻히면

누가 알리

수풀 헤치며

마구 다니다

누구의 은혜인가

쉴 만한 곳

풀밭에 누워

나무숲 바라보고

풀숲 바라보면

아 좋다. 산이여

꿩이 푸드덕 나는데

잠이 스르르 온다

 

싸리를 한 아름 안고

내려오는 길

누가 반기지 않아도 좋고

누가 부르지 않아도 좋다

산이다. 산 한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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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하나

 

울음 가지고는 아직 멀어

벗겨진 손바닥으로는

아직 일러

 

더운 숨결 있을 때 까지

덤불 속을 헤쳐야할

목숨 하나

 

이름 고운 새 울음

흉내 내다 지친 새벽잠

 

기억의 뒷골목에서

다시 줍어 다독거리는

말씀 부스러기

 

목청은

바람 새는 소리

 

부끄러운 몸뚱어리로

나돌기 싫은

목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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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돌다가

 

슬픔이 돌다가 예까지 왔나

꽃잎 날리는 매운 바람부는데

왜 왔나 슬픔이 돌고 돌다가

발담글 물 만큼 고여 있다가

흐르지 못 할 걸 알고 있다가

꽃잎 떨어져 즈려 밟히는 날에

고여서 뿌리까지 씻어 주려고 왔나

가슴 골 먼저 앉은 그리움도 마르지 않아

저녁이면 놓을 곳 모르는 눈길인데

슬픔이 왜 왔나 나에게 여기

 

먼데서 누군가 가슴을 끓이다가

소리없이 가는 바람 끝에 매달았나

누군가 오는 슬픔을 돌려 보냈나

누군가 큰 슬픔이 도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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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에 가서

 

늙으신 장인어른 사시는

통영군 광도면 노산리 544번지

손덕 바다 오늘도 잔잔하구나

뒷산 떨어진 밤알 줍으며

언덕너머 묘봉을 바라본다

어르신 마음 끝 매달린 외로움들

막을 수 없는 깊은 가을이구나

마지막 하나 밤톨을 깐다

멀리 떠있는 소나무 무성한 섬

엎어진 거인 뒤통수 같은데

늙으면 예서 눈 감을까

한 평생 부끄럽지 않게

어른들처럼 하늘 두려워하며

옳은 말씀 받들며 살다

예서 무거운 육신 쓰러뜨려서

동백나무 거름 될까부다

밤나무 거름 될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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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 있을까

먼 계절을 돌아

언젠가 온 것 같은

이 자리에

왜 여기 있을까

 

다시 가라고 하면

갈 수 없어

긴 다리를 건너

여기 왔는데

다시 가라고 하면

갈 수 없어

 

왜 여기 있을까

너는 아니?

 

오래 참음도 있고

모든 바람도 있고

맑은 새벽도 있고

주시는 눈길도 있고

 

왜 여기 있을까

너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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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는 바보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까

 

오늘 어디로 가는지

오늘 왜 가는지

가면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까

 

나는 그래도

진짜 바보는 아니다

내가 바보라는 걸 아니까

너도 그렇다는 걸 아니까

 

그래도 편한 게 있다

내 주인이 나를 알고 있다는 것

알고 있으니까

 

주인의 손안에 있다는 것

그게 좋은 거라는 것

알고 있으니까

 

나는 이런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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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앞에서

 

걸어온 길 찬 살덩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는 인생 그림책

다시 보지 못할 길 가신님

남기고 간 영혼 없는 몸 앞에서

찾아 올 새벽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죽은 듯 살아있는 늦은 가을 한기

얼마나 떨어야 했는지

어떻게 지루한 광야 길 건너왔는지

더 이상 입 벌려 말하지 않으련다

더 몸부림하지 않고 세상에 무거운 몸 남겨

알게 하리라. 하늘 바라 걸어가는 것

얼마나 고독한가를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잡았던 욕망

뜨지 못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던 천연색 꿈

이슬 얹은 비석처럼 차디 찬 가슴살로만 남아

더워질 수 없는 육체로 남아 여기 있나니

 

뜨거운 해알 다시 뜬다고 잠 청한 것도

고통이 지나 간 다음 눈 뜨려고 감은 것도 아닌

넘을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주검 앞에서

다시 같이 할 수 없는 흩어짐 속에서

온몸 휘저어 예쁜 꽃잎 하나 그리려 했던 주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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