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를 좋아한다. 일재의 잔재라고 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 왜 중국 소설을 마치 우리나라 소설처럼 좋아할까? 중국인보다 더 초한지를 더 잘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를 우리나라 소설이라고 주장해도 될 것이다. 소설가 김진명이 소설 <고구려>을 펼쳤는데, 세 권의 위력에 필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초한지는 간략한 대립 구도로 이해하기가 쉽다. 역발산 기개세인 항우가 패배했고, 시대의 한량 유방이 왕이 되었다. 유방이 왕이 된 이유는 장량과 한신이다. 그러나 유방이 진정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소하 때문이다. 왕으로 되어 가는 과정과 왕으로 진행하는 과정은 전혀 다른 힘이 필요하다. 왕으로 만들 수 있는 기개와 지혜, 왕을 유지할 수 있는 통합과 지혜는 같지 않다. 유방은 왕이 된 뒤에 백만장군 한신을 쳐,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남겼다. 장량은 한신의 죽음을 보고 조용히 정계를 은퇴해서 은거했다. 소하는 보이지 않은 3인자였지만, 왕이 된 유방의 보좌로 유방과 함께 권세를 유지하며 누렸다. 그리고 한(漢) 나라가 세워질 수 있게 했다.

이번 서울시와 부산시,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이뤄진 보궐선거를 보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촛불혁명의 국민이 왜 그렇게 돌아섰을까? 그것은 민주당이 40%의 매직을 너무나 굳건하게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선거에 40%로 패배했다면 결코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40%에 미치지 못한 투표 결과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 정권 창출에 실패 경고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는 한신은 있었지만, 소하가 없었던 것이다. 한신과 장량을 토사구팽은 아니더라도 외면해야 하는데, 여전히 선두에 놓았기 때문에, 그 칼날이 왕에게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혁명가에게는 권력(勸力)이 만사이지만, 왕에게는 인사(人事)가 만사이다. 왕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등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이 일하는 모습이 보여질 때 답답함을 느꼈다. 왕의 명령을 받아 멋지게 일하는 장관들이 보여야 하고, 왕이 명령하도록 입법을 만드는 멋진 국회의원이 보여야 조화로운 공화국일 것이다.

대통령인가? 왕인가? 대통령과 왕은 차이가 없다. 왕은 백성을 자녀로 소유한 유일자이고, 대통령은 주인인 국민을 수종하는 유일자이다. 그 유일자 인격에는 매우 독특한 성격이 부여된다. 그 인격을 감당하지 못하면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임기제로 그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다. 인류는 유일자의 존재를 포기하지 못한다. 유일자가 없으면 행복하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 과격한 진보주의자들은 유일자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유일자가 없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 이룰 없는 유토피아의 상상은 접고, 합당한 유일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 비용(19대 대선비용, 509억 9400만원), 선거비용 500억여원, 420억, 470억이었다고 한다. 100억원의 차이는 당선 가능성의 차이가 아닐까? 낙선을 예측한 선거에서도 400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게임이다. 55억, 45억원을 사용했다. 후보자 비용을 합하면 2,000억원에 상당하다. 대통령이 될 확신만 있다면 더 이상도 쏟아 부을 수 있을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재원을 들여야만 올라갈 자리인데 일반적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자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은 평안하면 그 자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 자리가 보이지 않게 통치하는 것이 가장 멋진 통치이다. 국민이 그 자리도 이웃도 아닌 오직 자기 일에 몰두하며 자기 삶을 책임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좋은 통치이다. 그러한 통치자에게 평생 독재권을 주고 싶다. 플라톤이 상상했던 철인정치일 것이다. 철학자가 통치하는 정치가 아니라, 모두가 조화롭게 운용될 수 있도록 통치하는 형태이다. 사회에 모두가 상위에 올라갈 수 없고, 모두가 평등할 수 없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치료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통치를 해야 한다. 사회 모든 요소에 있는 사람들이 그 요소에서 즐겁게 자기 일을 하면서, 자기 일만 바라보며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철인정치의 성취이다.

2021년은 보궐선거가 끝나면서 끝난 것 같다. 우리 마음은 벌써 2022년 지방선거도 아닌 대통령 선거에 가 있다. 우리 사회의 피로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것일까? 모든 국민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대한민국은 강국이 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한 사람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대통령 선거는 잔치이지 결판의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이 이번 보궐선거에 나타났고, 내년까지 계속될 기미가 보인다. 대통령은 한 국민일 뿐이다. 한 국민이 자기에게 부여된 일을 충실하게 한다면 동등 가치를 갖는다. 농민인 한 국민이 자기 농업에 충실하고, 대통령인 한 국민이 자기 직무에 충실하다면, 가치가 동일하다. 대통령이기 때문에 더 훌륭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공화정이 준 가치평가이다. 대통령은 그 가치를 국민에게 실현시켜 주어야 하고, 국민은 그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

“000 보유국”이 자부심인가? 대한민국의 자부심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한 국민이다. 그것이 공화국이다. 그 국민을 수종하는 한 국민,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좋은 한신과 장량 그리고 그 대통령을 유지시킬 좋은 소하가 있다면 좋겠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