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교회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성장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14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는 조 목사가 이날 오전 713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밝혔다. 현재 빈소 마련 등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5일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 베다니홀에 마련될 예정이며, 서울대병원에는 마련되지 않는다. 조문은 15일 아침 7시부터 가능하다. 장례예식은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진행된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설교한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맡는다. 하관 예배는 같은 날 오전 10시 장지인 경기도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조 목사는 지난해 716일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유족으로는 고 김성혜 여사와의 사이에 장남 희준, 차남 민제(국민일보 회장), 3남 승제(한세대 이사) 등이 있다.

 

◎조용기 목사의 생애

조용기 목사는 1936년 2월 14일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한학과 전통적인 종교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이 이어지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부친이 낙선한 뒤로는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곧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부산공고에 입학했으며,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에서 학교장과 미군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맡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소속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폐결핵이 치유되는 신유의 경험을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1956년 9월,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여 후에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1958년 5월 18일 고 최자실 목사(1989년 11월 9일 소천)와 함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한 조용기 목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바탕으로 ‘희망의 신학’을 펼쳤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폭발적인 교회 성장을 구가하며 1993년 교인수 70만 명을 넘어 세계 최대의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조용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 대규모 성회를 인도하고 강력한 성령운동이 전개됐다. 구소련의 붕괴 후인 1992년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성회를 가졌고, 199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진 성회에서는 150만 명이 운집, 두 나라에서 모두 개신교 사상 최대의 집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하여 조 목사는 1975년부터 2019년까지 지구를 120바퀴 돌며 71개국에서 영어 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최소 370차례 이상 부흥회를 인도했다.

 

※지구 120 바퀴 돌며 71개국에서 영어 일어 프랑스어로 부흥성회 인도,

※나눔운동을 인정 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 수상

 

조 목사는 국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에도 헌신하며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다니며 성회를 인도했다. 특히 사회 구원을 위해 198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해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재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로 1982년 ‘대통령 표창’(홀트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을 수상했다. 또 1994년에는 대한적십자사부터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 1996년에는 심장병어린이 무료시술 지원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헌신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보건복지부)’을 받았다. 2005년에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을 수상하고, 2007년 미연방의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도 받았다. 또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가 주는 훈장을 수상했다.

 <아래는 산샘 박재천 시인의 고 조용기 목사님 조시(弔詩)다>

조용히 가신 님 ㅡ 조용기 목사님
                   산샘  박재천

1991년4월 부활시즌 천국환승하신 영파 박용묵목사님 작은 사택으로 조용기목사님이 신현균목사님 함께 오시어 위로와 용기 메시지

조용하며 확신에찬 모습 기억나고 서소문시절 영파초청집회 낮 사경회교안 전하며 기쁜 믿음의 모습 인상 깊어라

미국에는 빌리그레함 한국에는 조용기목사님 세기적인 전도자 목회자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초대회장으로 부친 영파 박용묵목사님 추대 2,3대 신현균 4대 조용기목사님 부흥운동 주도하신 영산

만나면 특유의 반가운 얼굴로 활짝 핀 모습 그리웁도다

아 조용히 아버지 품으로 가신 조용기목사님

금세기의 성령운동과 구령사역의 리더 여의도성전의 건축 수십만 성도 세계적 한국교회 놀라워라 

다시 만나리 천국에서 
영원히 살으리 살으리라
영생의 본향에서 

 

​​

[기사: 국민일보&순복음뉴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