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파랑새 증후군 [Bluebird syndrome]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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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 가지 절기를 정하시고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절기는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로,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부터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무교절이 끝난 뒤 49일을 지난 다음 날 지내기 때문에 50일이 되는 날이어서 오순절이라고도 하며, 7주를 일곱 번 거치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은 장막절, 초막절이라고 하며 가을 추수가 끝난 뒤에 지냅니다. 이 절기가 되면 모든 남자는 반드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출23:17).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50: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예레미야서 30:11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에베소서 5:20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2:7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보세요, 감사는 명령입니다. 감사 할 수 있으면 해라, 하는 게 좋다, 하든지 말든지 네 의향대로 해라, 그게 아닙니다. 명령형입니다. 감사하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감사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일에 감사가 없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무엇이든 자기가 잘나서 자기 힘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를 모르는 교만한자 중에 가장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이 보다 더 악한 사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래서 골로새서 4장에 보면 "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하셨는데,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과 같이 사용된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감사는 기도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또 한가지 이렇게 감사를 명령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감사하지 못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때 그 때는 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무엇인가에 감사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기쁨으로 살기 원하시기 때문에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감사를 찾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어떤 상황, 어떤 악조건, 어떤 환란과 궁핍, 어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발견해 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요. 하나님은 그 완전하심으로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요.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며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맥추감사절의 감사는 어떤 의미의 감사이여 어떻게 감사해야하는 것일까요.

첫째, 맥추감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마지막 장자를 치는 재앙에서 유월 Pass over하여 40여년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만나가 끊기면서 그 땅에 첫 소산물 보리나 밀의 수확으로 드리게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수확의 감사가 아니라 그들을 구속하신 구속의 은혜가 바닥에 깔려 있는 감사입니다그러니까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이게 다 유월절과 관계가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맥추절의 감사, 그 근원은 나를 구속해 주신 구속의 감사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자유를 잃고 압박과 설움과 고통과 얽매임 속에 신음하던 저들을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잊지 말고 먹어도 감사, 자도 감사, 저장해도 감사, 무조건 감사해라 그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는 어떤 감사입니까? 430년이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억만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십자가 보혈의 피를 흘려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므로 나를 구원해 주신 그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맥추절,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자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모든 것을 초월 할 수 있는 가장 절대적인 감사의 원천이 됩니다.

에베소서1:7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죄사함 받은 자 답게 구속함을 받은 자 답게 살아야 그게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 때에 그냥 감사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본문17절에 보니까? 이 절기에 모든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 몸을 보이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점호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저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된 자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얼굴을 보십시오. 이렇게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15절에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감사의 표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고 물질로 보이고 그것도 토지에 처음 익은 열매 첫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정성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지극히 지극히 인격적이신 분이예요. 이렇게 세밀하신 분이예요. 이렇게 확실하신 분이예요. 그런데 신앙생활 그렇게 사람 눈앞에서만 할 수 있습니까? 정성없이 형식적으로 할 수 있습니까?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제 맘대로 제 성질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맥추절, 우리가 구약의 절기를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신앙생활 하기 원하시는가, 어떤 감사를 하기 원하시는가? 를 충분히 알게 하시고 내 신앙을 충분히 점검하게 하시고 바른 감사를 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맥추감사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약에 와서 맥추절, 또는 칠칠절은 오순절로 특별한 의미를 더하게 됩니다. 유월절 이후 7일을 일곱 주를 지냈다는 뜻으로 7x749하고 고 다음날 50일째를 오순절이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는 바로 그 날에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2:1-4). 그래서 영어의 Pentacost라는 단어도 50일째라는 뜻입니다. 이날 성령의 강한 역사로 복음이 방방곡곡에 전파되었고 그 때부터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날을 교회탄생일이라고도 부르고 성령강림절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교회에 매우 뜻 깊은 날입니다. 정말 잘 알고 지켜야 할 귀중한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오순절이 우리에게 주는 감사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교회는 그리고 교회된 성도는 오순절 사건을 통해 이미 성령의 강한 임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감사해야 하고 성령의 임재를 누려야 합니다.

 

맥추절, 성령의 임재를 누리자

생각해 보세요. 자녀들이 태어날 때 이미 부모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납니다. 발가락까지 머리털까지 그대로 닮습니다. DNA가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태어날 때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강한 성령의 임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DNA 성령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는 당연히 성령이 충만합니다. 건강한 성도는 당연히 성령이 충만합니다. 이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방황합니다. 성령을 찿아 헤메고 헤멥니다. 우리교회는 성령이 충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성령이 충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파랑새증후군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꾸고 찾아 헤매었던 파랑새가 알고 보니 자기 집 처마 밑에 자기들이 기르던 새였다는 모리스 마태롤링크의 동화 파랑새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직장, 가정, 사업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떠나야지, 언젠가 다른 걸 해야지 하며 방황하기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 무엇을 하든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한국교회는 성령의 파랑새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산기도도 해보고 신유집회도 쫓아 다녀보고 은사집회도 해보고 간증집회도 해보고 성령운동도 해보고 교회도 기도원도 다 지어보고 다 해보았지만 만족하지 못합니다. 쫓아다닐 때뿐입니다. 갈증이 더 심합니다. 어느 순간에 터무니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신앙심에 주저앉고 당황합니다.

요한복음 14:16에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이 약속대로 주님은 교회에 보혜사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 성령은 영원토록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 성령이 영원토록 교회인 성도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조건 없이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바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를 깨끗한 영으로 감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많은 사람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예 없다고 생각하거나 내 생각, 내 뜻으로 성령을 이미 소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맑은 영성을 가지고 성령을 훼방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바다에 요트가 항해하려면 돛을 바람에 맞춰 걸고 바람을 타야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돛을 거두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많은 성도들이 자기 마음대로 돛을 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바람이 불라고 요구합니다. 요청합니다. 때로 명령합니다. 믿음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가장 미련하고 허무한 짓이 성령운동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령을 역사하시는 분이 바람 같이 임의로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운동을 합니까? 내가 운동한다고 성령이 내게로 옵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려면 자기를 비우고 스스로 맑게 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였고 계획이었지 저들이 모여 기도하거나 요청하거나 해서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4,5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역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약속대로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날에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불의 혀같이 강한 성령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 이것이 교회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이 생존해 계실때까지는 성령세례의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예수님이 구주시며 메시야 되심을 몰랐던 사람들은 당연히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이 주체이신 성령의 세례를 알고 받아야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볼로가 성령의 세례를 몰랐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성령충만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실체가 성령이셨고 승천하시므로 보혜사 성령을 주고 가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수를 구주로 믿고자 하는 자는 물로 세례를 받을 뿐 아니라 동시에 주고 가신 성령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된 것 뿐입니다. 그 당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과 그사람들 한테 전해 들은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이걸 성령의 세례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령세례 , 성령세례하고 없던 체험을 꾸며대고 날짜까지 엮어놓고 하는데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이 편만히 전파된 오늘날 우리는 세례 받을 때 목사님이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노라 하고 성령세례의 의미를 이미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세례받은 후 성령의 역사와 감동을 받고 성령의 체험을 했다면 그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으며 성도는 성령이 역사할 때 돛을 세우고 성령을 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굳이 뜨거운 체험이 없었다고 해도 성령세례를 받지 않거나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상태가 아닙니다. 반지나 시계를 껴보세요. 처음 낄때는 착용감이 있지만 오래 끼다보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계는 가는 것입니다. 시간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19:1-7) ”하는 질문의 믿을 때는 한 순간이 아닙니다. 알 때와 믿어질 때의 시간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성장의 시간도, 숙성의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먼저 일 수 있고 나중일 수도 있습니다. 체험이 먼저일 수도 있고 나중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이미 성령 안에 있고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미 성령 안에 있고

은혜 안에 있어

그러므로 기독교는 누가 뭐래도 믿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은 체험보다 우선합니다. 파랑새가 내 집 처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깨닫는 것은 엄청난 깨달음입니다. 오랜 신앙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며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맥추감사절에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이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주신 성령,감사해야 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감사해야 합니다. 이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순간 순간 설레며,순간 순간 기대하며 순간 순간 감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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