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체력이 강해질 때까지 순종하며 기도하라

김에스더 목사,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왕상 18:41 - 45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Carmel)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기도자는 승리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바알의 선지자들과의 싸움이 끝나고 그들을 모두 죽인 후에 엘리야가 한 것은 메말랐던 땅에 단비가 내리도록 하는 축복기도였습니다. 영적전쟁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친 후에 많은 이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승리에 대한 도취감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빨리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축복기도를 해야 합니다. 승리에 감격하여 매일 파티하며 사람들과 즐길 때가 아닙니다. 승리는 또다른 사역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승리 후에는 반드시 기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동안 마귀에게 빼앗겼던 땅을 빼앗기 위하여 전심으로 기도해야만 합니다.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서 메마르고 갈라졌던 땅들이 비옥한 땅으로 변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디가 메말랐는지, 또 어느 땅이 딱딱하고 금이 갔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무언가 추진하고 있거나 또는 일이 잘 되어갈 때에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점을 말하면 "이렇게 좋은(중요한) 때에 왜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해서 기분 나쁘게 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사에 부정적이며 비판하기 위한 비판을 하는 것과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지적하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을 파악해서 문제를 수정해 나가는 것과,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결과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도자는 악을 처리하는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엘리야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최대한 빨리 바알의 선지자들을 잡아서 모두 죽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요소들을 적당히 내버려둔 채 살아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은 즉시로 죽이고 없애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별로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것을 할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오히려 반격을 당하여 우리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굳은 땅과 갈라진 땅에는 비가 와야만 합니다. 비가 와서 물이 스며들어가야만 딱딱하던 땅이 부드러워져서 갈라진 것이 서로 붙어 온전한 땅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비에 흠뻑 젖은 사람만이 딱딱하던 마음이 부드럽게 변하며, 상처로 여기저기 금이 간 마음이 치유가 되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6장 25절-27절까지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그러므로 우리는 정결한 물로 깨끗이 씻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우리의 굳어있는 마음을 모두 제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죄악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하며 깨달은 것은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주께 고백하여 근본을 뿌리채 뽑아야 합니다.

기도자는 문제를 정확히 알고 기도한다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엘리야는 이미 3년 6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생긴 문제는 엘리야가 기도해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3년6개월동안 이스라엘이 가뭄으로 고생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든 이스라엘 앞에서 보여준 뒤에 이스라엘이 겪고있는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분밖에 없음을 알려야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3년6개월간 구름 한 점 없던 곳에 비를 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엘리야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자는 기도 목적이 분명하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기도하는 목적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그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에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서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즉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말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면서 실제 속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여러분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3년6개월동안 가뭄이 들어서 마실 물조차 없어서 고생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며 보여주면서 그분만을 자랑하고 싶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금 성령님께서 조명해주시는 여러분의 마음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17장9-10절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말씀하듯이 인간의 마음은 세상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다고 성경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의 심장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살펴보시며 또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폐부를 시험하고"의 "시험하다"라는 히브리어 "바한(בָּחַן)"은 '시도하다(try)', '증명하다(prove)', '테스트하다(test)'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테스트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를 확실히 증명해 보이신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훤히 보여주신다면 어떨까요?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지 증명해 보이신다면 여러분은 고개를 들 수 있습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모든 사람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훤히 보여줄 수 있습니까? 아마 감추고 싶은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기도자는 정직하게 말하며 정직하게 기도한다

엘리야는 자기의 마음을 모두 드러내놓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바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하나님도 섬기고 자기들이 원하는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켜 줄만한 것도 함께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망을 하면서 "너희가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 머뭇거리면서 살아갈 것이냐?"라며 엘리야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않고 단호히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면서 피를 흘려가며 제사를 드릴 때에는 그들을 놀리기도 했습니다. "너희들의 하나님은 아마 지금쯤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지 모르니 좀 더 크게 외쳐라!"라고 그들의 마음을 자극시키며 조롱하는 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헛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한 뒤에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37)

기도자는 적당히 기도하지 않는다

불이 내리기를 간구할 때에는 열심히 부르짖었던 엘리야가, 비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기도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절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감히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간절히 그리고 또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를 간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전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를 간구했던 것은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고, 이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간구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축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자는 자기가 축복한 것이 성취될 때까지 기도한다

축복기도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이 성취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리고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은 채로 기도하기 시작하여 7번까지 기도했습니다. 그가 일곱번 기도했을 때에 드디어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복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더니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나 축복기도를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나 축복기도를 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엘리야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사방팔방을 쫓아다녔던 아합왕까지 축복한 엘리야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는 먼저 남편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목사님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리더가 잘 되어야 그 리더가 속해있는 곳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아내들이 남편을 축복하기는 커녕, 남편을 욕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물론 욕을 할만 하니까 그럴 수 있지만,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세벨이 아합을 이용한 것처럼, 많은 아내들이 '한 성질하는 남편'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 있습니다. "제 남편이 ... 해서요~"라면서. 사실은 자기가 하고싶고, 또는 자기가 하고싶지 않으면서 엉뚱한 남편을 핑계거리로 삼습니다. 심지어 세상에서는 "간 큰 남자 시리즈"까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또 교회 안에서는 어떠합니까? 교인들끼리 담임목사 흉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런 가정과 교회에서 잘 된다는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자는 축복이 성취될 때까지 합심해서 일한다

엘리야는 그의 사환에게 산 위에 올라가서 바다쪽을 바라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의 사환은 그 지시를 듣고 산 위에 올라갔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7번까지 다시 가라고 명령했고 사환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일곱 번째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7번까지 가서 보라고 할 때에, 엘리야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사환에게 7번까지 가서 보라고 할 때에는 엘리야도 7번까지 기도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여호수아 장군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뒤에서 쉬지않고 기도하던 모세와 같은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어떠한 지시를 할 때에, 참된 목회자라면 그들이 그것을 잘 할 수 있도록 쉬지않고 기도합니다. 영적 지도자는 하지말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어도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양떼가 실족해서도 않되며, 늪에 빠져도 않되고, 독초를 먹고 시름시름 죽어가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사환을 보내놓고 그가 구름을 볼 때까지 무릎 사이에 넣었던 고개를 들지 않고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사환이 중간에 포기해서도 안 되며, 도중에 자기 주장을 해서도 안 되며, 끝까지 충성을 다하여 성실하게 행해야 하므로 그가 축복의 구름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해야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응답이 언제 이루어질까요? 그것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어떤 것은 평생을 기도해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어떤 것은 마음에 소원만 갖고 있어도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은 금방 응답을 받고 어떤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빨리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며, 천천히 기도응답을 받는다고 답답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평안과 기쁨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살면 됩니다.

완전 순종하는 자가 가장 먼저 복이 임하는 것을 경험한다

일곱번까지 가라고 한 것은 완전 순종을 말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그의 지시에 완전히 순종하며 따라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도무지 근거도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야는 일반 사람에게 일을 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종에게 시켰습니다. 종은 상전이 하라는대로 무조건 순종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종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한 결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가장 먼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많은 재산을 갖고 큰 집에서 떵떵거리며 많은 명예를 갖고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죽을 때에는 하나도 갖고갈 수 없는 것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을 더 갖지 못해서 안달합니다.

예수님은 머리를 둘 곳조차 없다고 하신 것처럼 가난하게 이세상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존경하며 따라다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을 따라다니는 생활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못된 버릇을 속히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하와를 유혹했던 것이며, 사단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하와는 그 유혹에 너무나 쉽게 넘어갔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아담과 하와처럼 돈과 명예에 쉽게 넘어가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물리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의 허리띠로 단단히 우리의 옷을 동여매고, 하나님의 말씀인 의의 흉배를 띠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투구를 쓰고, 우리의 충성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복음의 평안의 신을 신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칼 즉 말씀의 칼로 그런 유혹을 단칼에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이 엘리야의 사환이 체험했던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체력이 강해질 때까지 순종하며 기도하라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는 말은 영적 체력이 강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순종하라는 것이며, 7번까지 기도했다는 것은 영적 체력이 강해질 때까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 체력이 강건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신실한 영적 지도자를 통하여 지시받는대로 계속해서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다리 사이에 머리를 박은 채 기도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시험에 들었습니까? 기도에 집중하지 않고 썪어져갈 자신의 육체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피곤해서 한 시간도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40-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한 시간도 기도할 수 없는 영적 체력이 매우 약한 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시간 정도는 쉽게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체력을 길러야만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고 모든 일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이들보다 먼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49절을 보면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를 보면서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라고 여쭙습니다. 이처럼 영적 체력이 약한 사람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영적 체력이 약하면, 기도도 오래 할 수 없을 뿐더러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보지 못하여 육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영적 체력이 강한 기도자는 다른 이들을 회개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제자들이 믿음의 순종을 하여 성령이 임하자 그들의 영적 체력이 7배나 강해졌습니다. 그들이 전에는 영적으로 잠을 잤었는데, 이제는 영적인 눈이 떠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며 그 비전을 꿈꾸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하루에 3천명, 5천명씩 회개시키는 역사를 이루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가도록 주도적인 일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인 율법을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헤롯의 교만함으로 그가 죽은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졌고(행 12:23-24), 또 성령을 받아서 자기의 삶에 유익이 되어 잘 살기 위한 방편으로 쓰려고 했던 이들에게 성령이 아닌 악령이 뛰어 올라가서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사건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행 19:14-20).

따라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지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감추어져 있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남들 앞에서 칭찬을 받고싶어하는 그 교만함을 먼저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한 것이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내가 없는 은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싶은 이유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정말로 순수한 마음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지겠지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이 헤롯처럼 교만하다가 죽게 될 수도 있고, 제사장의 일곱 아들과 마술사처럼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체력이 강한 기도자는 온전히 주께 헌신한다

결론적으로 엘리야와 그의 종이 했던 것처럼 우리는 7번까지 즉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된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을 면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 여러분의 생각과 삶을 조명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헤롯처럼 교만한 부분이 있거나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나 마술사처럼 성령의 은사를 받기 원하는 이유가 여러분의 삶이 윤택해지고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기 위해서 구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반드시 회개하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래야만 엘리야의 종이 체험했던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제자들처럼 자신의 칼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않고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엘리야처럼 영적 체력이 강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일곱번까지 기도했을 때 손바닥만한 구름이 생겼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일곱번까지 순종했을 때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러한 구름을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먼저 주의 종에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는 사역이니 목회니 하면서 핑계대지 말고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온전한 순종을 오늘도 기다리고 계시며 여러분과 대화를 하기위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세상 만물을 통하여 경배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예배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이 예배보다 낫다"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을까요? 죄성을 갖고있는 인간들이 가장 하기 힘든 것이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고싶고 원하는 것을 죽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죽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땅에 오셔서 죽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가운데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죽이고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는 최소한 한 시간 정도는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한 시간도 할 수 없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책망을 받는 자가 되지 말게 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반드시 엘리야의 종처럼 일곱번 즉 완전히 충성하므로 충성의 열매를 맺고 그것을 따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엘리야처럼 일곱 번 즉 완전한 기도자가 되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축복의 기도를 하며 살아가는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정말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는 분은 하루에 7번 기도하기 바랍니다. 반드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7번을 하지만 10분씩 한다면, 그것은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한 번 기도할 때에 30분~1시간씩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여러분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7이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입니다. 즉 7번 기도하라는 말은 항상 즉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하루에 7번 기도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항상 주님과 동행하며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굳이 정해놓고 하루에 7번 기도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경건의 훈련이 몸이 배어서 언제든지 주님과 대화하며 무시로 기도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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