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호진 목사 “신앙의 영역은 빠름의 문제와는 달라”

 

설호진 목사는 목원대 신학대학과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감리교 목회자다. 대학 시절 "온누리찬양단"에서 활동했으며, 이 후 선교훈련원과 복음학교 등에서 수련했으며, 용인 수지 신봉동에서 교회를 개척 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 김수희 사모와 설이레 설로이 설루하 세 딸을 두고 있다.
설호진 목사는 목원대 신학대학과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감리교 목회자다. 대학 시절 "온누리찬양단"에서 활동했으며, 이 후 선교훈련원과 복음학교 등에서 수련했으며, 용인 수지 신봉동에서 교회를 개척 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 김수희 사모와 설이레 설로이 설루하 세 딸을 두고 있다.

십 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눈을 감고 뜨고 자고 일어나면 하루 사이에 많은 부분들이 변해있다. 변화의 속도뿐만 아니라 이제는 변화의 폭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이전보다도 훨씬 더 크며 강해졌다. 인터넷만 봐도 킬로바이트에서 메가 바이트로, 메가 바이트에서 기가 바이트의 초고속으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이제는 5G를 넘어 6G와 블록체인, 메타버스라는 초연결 시대로 이미 기업들은 변하고 있으며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이미 빨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참거나 기다리는 것에 대해 매우 힘들어하며 답답해한다.

물론 빠른 변화를 통해 우리 삶의 질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윤택해졌고 삶의 많은 부분들에 대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간에 항상 밝은 면이 있다면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우리는 쉽게 간과하거나 무시할 수가 없고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귀를 기울이며 해소하려는 노력이나 수정, 보완할 의지가 있어야만 영혼이 성숙하며 건강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변화와 속도는 요리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건 바로 요리의 인스턴트화다. 인스턴트 음식은 말 그대로 '즉석'이라는 뜻으로 빠른 시간 안에 간단히 조리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말하는 데, 예로 들면, 라면, 햄버거, 피자 등 현대인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스턴트 음식은 미리 가공된 음식으로 대부분 맵고 짜고 달며 고열량으로써 대량의 탄수화물, 지방, 염분과 당분으로 이루어져 입에는 좋지만 건강에는 무척이나 해로워 질병의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인스턴트 음식은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편리성과 음식이 주는 기쁨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자주 먹어 중독이 된다면 비만과 생명의 위험도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아예 안 먹는 게 의학적으로는 좋지만, 아예 금한다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나의 건강을 위해 최대한 스스로가 절제하는 것만이 달리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섭취하는 것도 되도록이면 빨리 삼키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음미하며 꼭꼭 씹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다. 음식을 예로 들었지만 세상에서 대부분의 좋은 것들은 빠른 것보다는 참고 기다려야만 나에게 유익이 될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사회가 급변하니 교회 안에서도 기다릴 줄 모르는 현상들이 많아졌다. 이 문제는 목사로써 평신도만을 질책하는 정도가 아닌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 베이
이미지 출처 : 픽사 베이

최근 신앙 미디어들을 보면 흔히 3분 설교라는 숏컷의 영상들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이는 분명히 복음 전도와 교회소개를 위해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영상들이 자칫 성도들에게는 인스턴트적인 신앙으로 변질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을 살다 보면 목적과 다르게 오용되는 사례들이 빈번히 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례를 예로 들면 작년에 성도님과 교제를 나누던 중, 영적으로 도움 되는 말씀을 추천드렸는데, 시간이 한 시간 이상의 말씀이라며 제게 '목사님! 저는 긴 말씀은 지루해서 잘 못 듣겠어요'라며 듣기도 전에 이미 애초부터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차단해 버리는 모습을 보며 추천을 내가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교제했던 성도는 내가 평소에 신앙에 대해 진지함을 넘어 열정과 체험이 확실하게 있으셨던 분이셨다. 그런 성도님께서 신앙의 열심을 위해 담당목사에게 조언을 구해 추천한 것을 당차게 거절하는 것을 보고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게 우리의 성향인데 내가 믿음이 있는 줄 착각하여 권면했다가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기다며 못 듣겠다는 말에 신앙이 변해가는 모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도 현재 교회 안의 미디어들은 세상의 유행에 상당히 민감하여 좀 더 자극적이며, 좀 더 트렌디하게, 좀 더 흥미위주로 제작되어 소위 떡상(신조어: 대박이나 로또와도 같이 조회수나 수익이 급상승하는 영상을 가리키는 말)을 기대하는 듯한 콘텐츠들이 상당히 많다. 분명 이런 모든 종류의 제작 목적은 불신자들을 위한 새로운 선교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기존 성도들까지도 이런 콘텐츠에 쉽게 노출이 되어 익숙해지다 보니 신앙들이 다소 인스턴트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 지가 염려가 된다는 뜻이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만 한다. 교회는 성경의 기준으로 차별성과 독특성, 그리고 십자가 복음 앞에 반드시 진지한 신앙생활로 죽음을 각오한 비범함이 성도들에게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닌 능력과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따라 눈에 보이는 교인 수 늘리기에 급급하여 이벤트나 행사 위주인 외모에만 치중한다면 진리가 변질되어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급한 병든 심령들이 서로 옛 자아나 옛 습관으로 인한 갈등과 분쟁, 문제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아 모두 함께 죽고 만다.

물론, 성장이나 행사가 다 나쁘며 쓸데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결코 아니다. 얼마든지 신앙의 형태는 이전보다도 훨씬 다양하며 선교의 전략과 모습, 그리고 성도 간의 교제와 교육은 끊임없는 고민과 치열한 자기반성으로, 영혼육을 건강하게 회복케 하는 도움들이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질인 영혼의 영적 성숙인 진리가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끝까지 절제하며 끊임없이 주의 뜻을 구하며 회개한다면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한계를 이미 다 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 영광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는 목회자의 역할과 역량대로, 또 성도는 성도의 역할과 역량 안에서 서로 동역자로서 협력하여 선을 이뤄야만 한다.

빠른 것과 변화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빠르게 하기보다는 아브라함에게 100, 모세에게는 40, 이스라엘에게는 400년이라는 애굽의 생활을 통해 연단하셔서 천국 백성으로 회복시키셨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원이라는 선물을 거저 주시 지를 않으셨고 기다림과 변하지 않은 진리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겨진 자들에게만 허락하셨다. 앞으로 변화의 속도가 신속히 날아가다 못해 눈 깜짝할 정도의 빛의 속도일지라도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진리대로 급할수록 잠잠히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며 변화하기 이전에 성경의 진리의 기준을 갖고 변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변하며, 변해서는 안될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는 초대교회와도 같이 목숨을 걸고 사수하여 잃어버린 옛 신앙의 좋은 모습들까지도 되찾고 보존하는 주의 정결한 신부들이 되길 소망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