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응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이것도 너희에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神)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립보서 3:10-21)“


김정효목사.
김정효목사.

 <신앙생활>은 <경주(競走)>입니다.                                                           

주님께서 정해주신 푯대를 향하여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이 달리기를 완주(完走)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말씀으로 삶의 좌표(座標)를 삼고, 그 좌표대로 달리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1. <신앙의 경주>는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0-12)“
 
  <신앙생활>이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서 <믿고 고백>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영접>해 드림으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있던 자신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고, 부활의 주님 안에서 <새 생명>을 덧입게 되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안에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4)“

이것은 위대한 <신분의 변화>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그러나 이 <영적 신분변화>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신앙생활>은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낙원>의 삶을 <소망>하면서, 애써 세상과 구별 되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추구>해 나가는 삶이고, 이에 따르는 <환난과 핍박>, <시련과 고난>을 <믿음>과 <기도>와 <인내>로써 이겨나감으로써,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주님 부르시는 그날, <성도의 부활>과 <주의 영광의 나라> 에 동참하게 되어짐을 목표로 하는 삶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6-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1-7)“

2. <신앙의 경주>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3)“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풍성>하면서도 <지속적>입니다. 
과거에 받은 풍성한 은혜에 도취되어 안일함에 빠져든다면, 이로 인하여 받은 은혜도 지닌 열정도 소멸되고, 다시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노예>가 되어 결국은 영영 주님께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있느니라! (요한 1서 2:15-17)“

<신앙생활>은 주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를 잃지 않기 위해 자나깨나 <말씀과 성령> 안에 <깨어 기도>하며, 오로지 <주님께만 열중>하는 삶입니다.

 „한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 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6:4-6)“

그래서 <신앙생활>은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는 과거의 신앙과 삶을 위한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삶 속에 항상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주님의 은혜의 역사는 내가 아직 영적으로 살아있고, 깨어있다는 명백한 증거들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3:3)“

3. <신앙의 경주>는 <부름의 상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4)“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장차 주님이 조성하실 <신천신지의 시민>이 되어, 주님과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될 이 <영광된 삶을 위해>서입니다.  바로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한 <승리의 신앙인>들이 <누릴 상급>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2:10)“
    
유명한 신학자 <에드워드 네이버>박사가 어린 시절 한 꿈을 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 문>에 서서 자기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생명 책>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들어가게 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고 그의 아버지가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천국 문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네이버>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그의 손을 밀쳐내며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넌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지, <내 이름>으로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단다!“ 

잠시 후 그의 어머니의 이름이 호명되었습니다. 그때 어린 네이버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늘어지며나도 함께 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대답도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그런 다음 그의 누나들과 형들의 이름이 불렸고, 결국 네이버만 남게 되었습니다. 어린 그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 이름이 <생명 책>에서 빠져있으면 어쩌지?“ 그때였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그 누구도 대신 응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결단하고, 스스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아모스 4:12)“

우리가 원튼 원치 안튼, 우리 각자각자에게 반드시 하나님 대면할 날이 이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칭찬과 상급>의 날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과 형벌>의 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만날 그때를 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화답>하고,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1:27)“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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