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고린도전서 15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의 말씀을 배경으로 이 세상의 악한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동시에 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에 찬 어조로 선포하고 있는 본 찬송시는 17세기에 출간된 라틴 성가집에서 발췌, 번역한 것으로서 작사자 미상으로 되어있습니다.

찬송 곡은 이태리 태생의 교회 음악가로 당시 음악가의 최고 영예인 교황 전속가수가 된 지오바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 .P. da. Palestrina;1525-1594) 1591년 만들었습니다.

팔레스트리나와 교황 율리우스 3세
팔레스트리나와 교황 율리우스 3세

교황 율리우스 세는 팔레스트리나(Palestrina)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카펠라주리아의 악장으로 임명하였는데 그는 감사의 표시로 최초의 미사곡집을 간행하여 헌정했습니다. 그 외도 팔레스티나는 수백 편의 찬양곡과 아울러 음악사에 길이 남는 무반주에 의한 합창양식(Stile Osservato)을 창안했는데 때로는 그의 이름을 딴 팔레스티나(Palestrina)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불리고 있는 이 곡은 영국의 윌리엄 헨리 몽크(W.H.Monk:1823-1889)1861년 편곡한 찬송입니다.

 

1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싸움은 모두 끝나고 생명의 승리 얻었네

개선가 높이 부르세 할렐루야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죽음을 이기거나 극복한 이는 없습니다. 죽음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다들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느냐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라가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을 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겁내지 아니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 우리도 육체는 죽어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다시 삽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5절부터 57절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하며 부활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뜻은 이렇습니다. 예수를 완전히 사형해도 좋다는 빌라도의 공식적인 발표 때문에 예수를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다리를 꺾지 아니하여도 되었습니다.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무덤에 눕히고 돌로 봉인한 후 그 무덤을 군병들이 지켰건만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과 싸움을 끝내고 예수 생명이 승리하였습니다. 사망은 생명을 이기지 못합니다. 믿는 자들 역시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을 따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11:26)

 

예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미국 뉴스위크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미국 사람 중에 94%는 신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77%는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24%에 불가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도 죽음으로 끝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 신앙으로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진리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내가 이겼다."고 승리를 선언한 날입니다. 이긴다는 것처럼 좋은 게 없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 나가서 매번 패합니다. 지는 선수는 선수 대접을 못 받습니다. 군대가 전투를 합니다. '졌습니다'. 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겨야 삽니다'. '이겨야 환영받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이겨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합시다. 승리는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영광입니다. 실패는 비극입니다. 서러움입니다. 억울합니다. 안쓰럽습니다. 이깁시다. 절망에서 이겨야 합니다.

낙심하며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산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낙담이라는 산들을 부활 신앙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믿음은 기적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성을 초월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힘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집시다. 우리 모두 할렐루야! 승리의 개선가를 힘차게 부릅시다.

 

부활의 날은 "내가 이겼다." 라고

승리를 선언한 날

 

2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망의 나라 권세를 주께서 깨뜨리셨네

승전가 높이 외치세 할렐루야

 

사탄·마귀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사망과 생명입니다. 마귀는 질병과 절망과 죽음을 가지고 이 땅에 왔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주로 오신 예수님은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회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난 이들은 다시 아팠고, 다시 노쇠했고, 다시 병들었고,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님과 같은 몸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몸, 영원히 쇠하지 않는 몸, 영원히 병들지 않는 몸, 영원히 연약함이 없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20:17).

예수님은 완전하고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형체로 제자들에게 나타날 것을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반면 사망의 권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염려하여 빌라도에게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서 숨겨 놓고 그가 부활했다고 한다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니 군사를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27:64) 부탁을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27:65)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인봉하고 출입구를 군사들을 세워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1125-26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십니다.

프랑스의 어떤 회의주의자는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습니다. 결코 무덤 속의 죽음의 냄새, 시체의 썩는 냄새가 아닙니다. 빈 무덤의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다시 사신 주님의 냄새를 맡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냄새가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진동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망의 냄새가 아니라 생명의 냄새를 풍기며 온 땅에 부활의 승전가를 높이 외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빈 무덤의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다시 사신 주님의

냄새를 맡는 자들

 

3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슬프던 사흘 지나고 주께서 살아나셨네

영광을 주께 돌리세 할렐루야

 

요한복음 2011절은 예수님의 무덤 밖에서 울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로 말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소망 중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있어서 소망이요 생명이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자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사실 그녀는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가까운 친구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친구요, 애인이요, 선생이요, 후견자와 같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마리아는 밤을 새워가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붓고 싶어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또다시 좌절과 슬픔의 통곡이 그녀에게 몰아쳤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울고 서 있는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조용하고도 인자하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그리고 누구를 찾느냐?"(20:13) 여기서 "어찌하여"란 말은 "이제는 울 만한 이유가 없는데 왜 우느냐?" 하는 뜻입니다. "누구를 찾느냐?" 이 말은 "이미 죽은 예수를 찾을 필요가 없고, 죽었던 예수는 다시 산 예수로 네 앞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슬픔을 주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죽음 후에 찾아오는 고독입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육신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 버렸을 때,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슬피 우는 것은 그때부터 찾아드는 고독이란 아픔 때문입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이 '고독의 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와 같다고 느끼며 외로워합니다. 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 외롭습니다. 동정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아픔을 겪는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심지어 군중 속의 외로움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나와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이 오늘 슬픔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울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돌아서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 뵘으로 슬픔이 사라지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절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망의 문을 잠그고 생명의 문을 여셨네

부활의 찬송 부르세 할렐루야 아멘

 

부활절은 사망의 문을 잠그고 생명의 문”(4)을 여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사흘 전에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가 주일 아침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부활했다는 기록이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유대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장수하였으며 막벨라 굴에 장사지낸 이후로 아브라함이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활할 이유도 없습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는 80세에 식중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분은 임종 때 "법을 의지하고 나를 의지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자기가 구원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그 유골이 여덟 부족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석가모니는 부활한 적이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원조라는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사약을 마시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겠다고 예언한 적도 없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은 60세에 군대를 조직하여 메카를 무력으로 정복한 후 62세에 돌아갔습니다. 이슬람은 늘 칼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했고 지금도 '지하드'라는 성전(聖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호멧의 무덤은 만인에게 알려져 있지만, 부활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다른 종교와의 본질적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부활의 종교입니다. 더 나아가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 후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죽음과 사탄과 저주의 싸움을 종결하셨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젼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그가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한 어린아이가 새장 안에 갇힌 새 한 마리를 몹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그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좀 괴롭히다가 죽여 버리려고 해요."

목사님은 새가 너무 불쌍해서 아이에게 돈을 주고 그 새를 새장 채로 샀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새장의 문을 열고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 새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다음날은 부활주일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빈 새장을 들고서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원수 악한 마귀는 우리를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엄청난 대가로 지급하고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포로에서 놓임을 받고 자유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참 평안과 기쁨과 자유 함을 누리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관주

<후 렴>

할렐루야 *135:1,146:1,150:1,15:11,19:1,4

1

싸움 모두 끝남 *6:13,살전 4:17,딤전 6:12,딤후 4:7-8

생명의 승리 *6:51,54,3:15,6:9,딤후 1:10,

2

사망 권세 이김 *2:24,6:9,고전 15:54-55,딤후 1:10

승전가 높이 부름 *대상 29:11,20:5,고전 15:57,요일 5:4

3

사흘 만에 살아나심 *27:63,8:31,10:40,고전 15:4

영광 주께 돌리세 *9:8,11:36,고전 6:20,딤후 4:18

4

생명의 문 여심 *5:24,14:27,8: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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