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목사] 한 사람이면 족하다

  • 입력 2023.04.29 08:38
  • 수정 2023.05.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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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dson Taylor University 졸업식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 한분을 더없이 사랑하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신자수가 15억을 웃돌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주님의 기쁨이 될 순결한 신부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도 우리 생각보다 높기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에 대한 기준 역시 높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거룩함조차 누더기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격하신 기준에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예루살렘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라도 찾아보라시며, 만일 그런 사람을 찾으면 멸망키로 작정된 예루살렘성을 사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한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고 율법의 말씀을 들먹이며 악행을 일삼던 그들로 인해 예루살렘성은 결국 망했습니다.

예루살렘성에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음은 충격입니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는 사람은 꽤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준을 낮추지 않으십니다. 공의와 진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유일한 잣대입니다. 말씀은 다림줄이 되어 신자들의 믿음이 길고 짧은지를 재고, 저울이 되어 무겁고 가벼운지를 달아봅니다.

오늘 크리스천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 하나님이 구하시는 공의와 진리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느니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는 불신자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당연히 믿음이 있어야 할 신자들 중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에게 욕먹는 것은 주님께 받을 책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이지만 하나님이 구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에 비해 특별히 낫다고 주장할 만한 우리의 삶이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욕심 사납고 잘 싸우며 경우에 따라 거짓말도 합니다.

주일이면 교회 나와도 교회 밖에서의 우리 모습은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책을 끼고 예배드리며 간혹 선교지를 다녀오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립니다.

하나님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 통회하고 자복하는 영혼입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길 바라십니다. 우리는 회개하지만 실제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책에 눌려 습관처럼 회개를 반복할 뿐입니다. 우리의 공의는 반듯하지 못하고 긍휼과 사랑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고백과 찬양에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거북함과 제약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를 한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제사장도 많고 율법의 선생도 많았지만 모두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악한 시대이니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들 중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없을 수 있다는 가정은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때는 다윗 한 사람이 있어 하나님께 위로가 됐지만 지금은 정말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삶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 멸망당했지만, 예루살렘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확고한 믿음의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죽음이 두려워 모두 바위틈에 숨어 골리앗의 고함만이 엘라 골짜기를 울릴 때 소년 다윗, 한밤중이라도 아버지 명령으로 양떼를 돌보던 다윗, 하나님 한분을 사랑하고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던 다윗 홀로 골리앗을 마주 대했습니다.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이스라엘 용사들이 강적 골리앗의 위용에 압도당해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으로 하여금 불가능한 적을 향해 달려 나가게 한 것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앙이었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모욕당하던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려던 신앙이었습니다.

평소엔 믿음이 있지만 골리앗처럼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치면 이내 숨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아닙니까? 환경과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형편과 처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바른 믿음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사울왕은 한때 영웅이었고 이스라엘에는 용감한 장수도 많았습니다. 그들도 믿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에 비해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런 믿음이 있다면 마치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일마다 때마다 낙심하고 분노함은 왜입니까? 하나님이 구하시는 성경적 믿음에 한참 모자란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어떤 경우엔 신자가 불신자들보다 더 악하고 이기적이며 해롭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신자와 구별 짓는 믿음의 실체란 대체 무엇입니까?

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는데 우리에게 과연 소망의 실상이 있고 영원한 것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낙심이 있을 수 없고 절망이 있을 수 없으며, 일시적인 것에 마음 빼앗길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을 들여다보십시오! 너무 빨리 낙심하며 너무 자주 절망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아닌 것들을 더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 되고, 우리도 하나님의 기쁨 됩니다. 믿음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그의 존재하심확실한 보상입니다. We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고백하지만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 행동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확고하면 매사에 담대합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믿는다면 우리는 더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한 순종의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익숙한 삶의 환경도, 사랑하는 사람도 주님이 버리고 떠나라시면 뒤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순종의 사람, 바치라면 외아들까지도 죽여 바치려는 사람, 마치 순종에 미친 듯한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자신을 태울 나뭇단을 지고 산에 올라 돌제단에서 죽임 당하기 직전까지 반항 않고 아버지의 결정을 따랐던 이삭 같은 순종의 사람을 구하십니다. 늙은 아버지가 칼로 자신을 죽이려 할 때 얼마든지 그 상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세상 죄를 지고 묵묵히 십자가에 오르셨던 주님처럼 하나님께 번제로 바쳐질 어린양 이삭은 순종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는 아버지에 순종하는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도 순종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순종은 부분적이고 계산적입니다. 순종의 모습은 갖췄는데 몸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순종할 때도 있지만 불순종할 때가 더 많습니다. 순종보다 강한 것이 복종인데 사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복종입니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복종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주님은 최고사령관으로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의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온 밤을 지새우며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기도의 손 놓기를 거절하던 야곱의 끈질김, 산꼭대기에 올라 36개월 메마른 땅에 비구름 한 조각을 보기까지 일곱 번씩 무릎 꿇어 기도하던 엘리야의 간절함, 하도 많이 꿇어 무릎이 낙타무릎처럼 굳은살이 박였던 야고보의 처절함, 하나님이 구하시는 한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끈질기게, 간절하게, 처절하게, 부르짖고 또 다시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경은 엘리야가 보인 기도의 간절함과 능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Elijah was a human being, even as we are. He prayed earnestly that it would not rain, and it did not rain on the land for three and a half years. Again he prayed, and the heavens gave rain, and the earth produced its crops.”(Jam. 5:15-18)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62:6-7)을 붙들고 기도의 불꽃을 피우길 도전합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I have posted watchmen on your walls, Jerusalem; they will never be silent day or night. You who call on the Lord, give yourselves no rest, and give him no rest till he establishes Jerusalem and makes her the praise of the earth.)

무너진 성벽 틈을 막아서서 하나님의 심판이 멈추기를 호소하는 중보자, 성전에 엎드려 밤낮 부르짖어 여호와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는 중보자, 하늘에서 내릴 심판의 불비를 막고 재앙의 폭우를 그치게 하는 통곡의 기도자, 민족의 죄악을 지고 주야로 탄식하는 간구자가 바로 하나님이 구하시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끈질김과 간절함과 처절함에서 많이 부족합니다. 적당히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기도생활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에 올인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끈질기고 간절하고 처절한 기도는 피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돌이키지 않는 영혼 때문에, 각성하지 못하는 교회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정신 때문에 기도자는 울고 통곡하며 구로하는 밤을 수없이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중보자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순종의 높이와 기도의 깊이를 충족시키는 산 믿음은 결코 값싸지 않은 금보다 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과 타협치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공의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며 올곧게 진실만을 추구합니다. 신자다운 삶의 기준언제나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신자다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믿음,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믿음, 그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의도로 똘똘 뭉친 믿음, 바로 이런 믿음에서 아브라함과 이삭 같은 순종의 삶이 나오고 엘리야와 야고보 같은 기도의 삶이 나옵니다.

배움의 과정을 끝내고 영광스런 졸업에 임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할 믿음의 영웅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위대해서 위대한 믿음을 갖는 건 아닙니다. 보잘 것 없어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우리에겐 사람 많음이 문제이지만 하나님께는 사람 없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바로 그 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으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아모스처럼 져 나르는 짐꾼이 되고, 느헤미야처럼 어두운 역사에 빛을 뿌리는 등대가 되며, 예레미야처럼 뒤틀린 시대를 깨우는 하나님의 나팔이 되시길 권고합니다. 하나님밖에 믿을 것 없고, 예수밖에 사랑할 것 없고,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 없고, 죄밖에 미워할 것 없고, 복음밖에 전할 것 없고, 사랑밖에 행할 것 없고, 기도밖에 붙들 것 없는 바로 이런 한 사람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  원로목사이며 42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힘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  원로목사이며 42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힘쓰는 목회자다.

※Hudson Taylor University 졸업식(5월 5일, 11am) 때 전할 메시지입니다. 학부 학생은 8~900명에 이르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이고 신학교는 한인들이 대부분이라 들었습니다. 총장은 David J. Brewer입니다. 그날 새벽에는 벧엘교회(이혜진목사)에서 말씀을 전할 예정입니다. 주님이 갑자기 애틀란타 쪽으로 보내신 뜻을 헤아리며 준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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