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한삼서 1장 4절).
새벽에 내 눈에 들어온 책 제목이 있다. [성령 채우는 엄마]이다. 호기심이 생겨서 목차를 훑어보았다. 저자가 주장하는 글의 큰 흐름은 “영적인 것을 먼저 가르쳐라” 세상 지식 즉 영어. 수학이 내 아이의 영혼을 지켜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성령님의 동행하심만이 이 세상에서 내 아이를 지켜내는 힘이 된다고 한다.
저자의 강조점을 보면, “우리 아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세상 지식이 아니다.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아이의 영혼을 지켜줄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을 얻는다 해도 그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아이는 오직 성령님께만 맡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게 하라. 성령 안에 거하는 영의 자녀로 양육하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진리를 따르는 아이로 키우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요. 부모에게 이보다 더 큰 상급은 없다. 성령님께서 내 자녀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기도하라.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따르고 섬길 수 있도록 자녀의 영적 생명을 돌보는 믿음의 여정에 동참하라.”
어쩌면 이렇게 옳은 말만 끄집어냈을까? 저자의 혜안에 감탄했다. 자녀양육은 모든 부모의 숙제이며 짐이며 기쁨이다. 또한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 준다면 무슨 걱정이 되겠는가? 그런데 부모가 바라는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과 같은가이다. 부모가 바라는 자녀의 방향이 오직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고, 세상에서 하나 더 가지라는 세속적인 욕망에만 집중되었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하다.
부모는 자녀를 바라보면서 생각해야 한다. 나의 말이 옳은가? 가치지향적인가? 성경적인가? 내 자녀의 인생을 대양으로 인도하는 큰 흐름의 언어인가? 아니면 골짜기에 갇히게 하는 언어인가? 말은 씨앗이다. 씨앗은 어떤 형태로든지 자란다. 매일 자주 듣다보면 그것이 분위기가 되고 인생의 흐름이 되고 성공과 실패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먼 훗날 알게 된다. 그때 내가 달려왔던 길이 바른 길이 아니었을 때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 길이 참 힘들고 고되다. 그런 실수를 줄여 주라고 부모가 있는것이다. 부모는 먼저 한 발짝 인생의 길을 걸어간 분들이다. 내 인생을 망쳤던 방식을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요구한다면 그 또한 바른 교육방식이 아니다. 나의 교육방식이 성경적인가? 실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가? 유익한가? 꼼꼼히 들여다 봐야한다. 그것은 좋은 책이나 멘토나 좋은 인생을 살아냈던 분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내 생각을 말하지 말라. 내 생각이란 제한된 나의 삶의 방식이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부모가 본 세상은 자기가 아는 만큼 경험한 세계가 전부이다. 그것에 내 자녀의 인생을 맞춤 양복처럼 끼워넣지 말라. 세상은 오묘하다. 그리고 넓다. 그 넓은 세상을 마음껏 다니며 꿈을 펼쳐야 한다. 그 꿈의 크기를 키워주는 것이 부모이다. 부모가 자녀의 꿈을 재단하거나 제한하지 말라.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세계는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룰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회이다. 오늘의 직업이 내일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하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다. 검증된 성경말씀의 세계로 자녀를 인도하라. 그러면 실수하지 않는다. 나의 부족함의 한계와 장애를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다.
스스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상처받지 않고 함께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하는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단순한 암기로는 불가능하다. 인생은 단순한 암기력으로 풀려지지 않는다. 인생은 지식과 감정과 영성이 긍정적인 조합으로 결합되어 묶여져 있을 때 상황을 극복하는 건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인생사 꼬인 것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마음의 완악함과 속 좁음 때문이다. 넓게 보는 것, 넓은 마음의 부족으로 인해 간단한 인간관계도 풀려지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넓은 마음을 품는 것은 축복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과 부와 넓은 마음을 주셨다. 넓은 마음은 바로 성령충만할 때 주어지는 마음의 축복이다. 성령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울때 좁은 마음에서 벗어나서 넓은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좁은 마음은 관계의 단절이고 넓은 마음은 관계의 회복이다. 이것은 지식교육이 아니다. 지혜교육이다. 지혜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쏟아지는 생명수이다. 성령충만한 자녀들은 마음이 넓다. 넓은 마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기본적으로 성공의 인자를 부여받은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안목을 넓혀주는 스승이다. 이 사실을 잊지말자.
아이들만 그렇겠는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세상과 담을 쌓고, 이웃과 담을 쌓고, 학문세계에서도 타 학문과 담을 쌓고 오로지 자기 것만 최고인 것처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 그분들과 교제를 하려고 하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느낌은 항상 답답하다. 폭이 좁다. 안목이 좁다라는 마음이 든다. 폭을 넓혀라. 그것이 축복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말씀 안에서 성령으로 내 안을 아침마다 채워라. 그러면 마음의 크기가 자란다. 마음의 크기가 자라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이고 성장이다.
어른들은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간다. 닫힌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지옥이다. 자신의 관계망을 아주 좁게 만든다. 관계망이 좁아진다는 것은 축복의 인자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또한 나의 자녀들이 넓은 마음으로 친구들을 대하고, 넓은 마음으로 하루의 삶을 받아들인다면 그만큼 성장의 그릇이 커지는 것이다. 마음의 크기를 키워주는 힘은 오직 말씀이다. 그리고 말씀을 사로잡는 것이 성령님이다. 성령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우라. 이렇게 오늘 이 하루도 시작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