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온 편지 ①

최영삼 목사 (예장통합, 광양 태인교회)
최영삼 목사 (예장통합, 광양 태인교회)

큰 사랑 섬, 태인동 주민들이 잠든 새벽, 하늘은 저수지 문을 열었습니다. 이미 아파트 마당에는 어디를 디뎌도 발이 젖을 정도입니다. 자동차 윈도 브러시를 가장 빠르게 해야 할 정도로 내리는 비는 그날을 떠 올리게 했습니다.

20여 년 전, 베이징에서 기차로 밤 새 달려 아침에 도착한 푸양에는 노아 홍수를 연상할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도착한 친구 집에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찜통의 더위로 가득했습니다. 가난한 시골이어서 에어컨도 없었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것은 선풍기가 유일했습니다. 밤이 되어 잠을 청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났습니다. 자기 전에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면 좋은 데, 그런 시설도 없어서 그냥 헉헉대며 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을 뒤척이다 끝내 침대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거죠.

다른 사람들의 잠을 방해할까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나서는 데, ! 그만 나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온몸에 난 땀과 짜증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후덥지근한 그 기분 나쁜 땀들이 전혀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별 때문이었습니다.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내 눈에 보이는 하늘에는 모두 별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빈틈 하나 없이 별들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새벽 1시 정도였는데, 은하수들이 낮에 보는 흰 구름들처럼 늘려 있었습니다. 유성들은 선을 그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지났어도 그 밤 별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서 반짝입니다.

육십 평생에 그날의 별들만큼 나를 황홀하게 한 것도 없습니다. 시골 냄새가 풍기는, 경남 울주군 농소면 호계리가 내 고향이라 많은 별들을 보고 자랐지만, 60년 동안 보아 온 별들을 다 합쳐도 그날 본 별의 수에는 미치지 못할 겁니다.

기차역에 내려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차 뒤에서 작은 의자에 앉아갈 때, 시골길의 울퉁불퉁한 빗길은 내 엉덩이를, 허리를 사정없이 아프게 했습니다. 차라리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민망할까 봐 웃으며 견디었습니다. 화가 날 정도의 무더위, 찬 물조차 없는 환경, 선풍기 바람이 오히려 더 열을 가했던 그 폭력적인 밤이 아니었다면 나는 단잠을 잤을 겁니다. 그 놀라운 우주의 아름다움을 지붕에 가리고 말입니다. 그 선물은 고통이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게 정상적인 하루였다면 나는 그 별을 못 보았겠지요.

세월이 준 깨달음은 고통이 모두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아팠기에, 아프기에, 불안하기에 우리가 얻는 뜻 하지 않는 선물들이 있습니다. 눈물이 녹아 진주가 되고, 밤 잠 이루지 못하는 통증이 나를 성숙하게 하며, 그놈 때문에 기도하게 되지요. 혹시 아나요? 당신의 지금 그 깜깜함이 내가 본 그 하늘을 보게 할는지…….

이미지 출처 :NASA, ESA and G. Gilmore
이미지 출처 :NASA, ESA and G. Gil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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