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태권도선교회(대표회장 이후관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태권도라는 귀한 달란트를 활용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부활의 복음 전파에 열심을 다하여 기적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대한태권도선교회의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는 박동훈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한국체대비전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박동훈 관장입니다.

 

현재 저는 3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먼저, 태권도청지회라는 단체에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특전태권도협회에서는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대한태권도선교회에서도 사무총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기원에서는 교육분과에서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태권도 경력으로는 2007년에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로 제2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며, 그 뒤로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를 지도하면서 러시아 태권도협회에서 기술위원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로 발리에서 있었던 제8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또 2022년 춘천에서 있었던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에 품새 국가대표 코치로도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 보니 대통령 훈장인 기린장을 받았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대한태권도선교회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대한태권도선교회는 2001년 현 선교회 회장인 이후관 목사님과 평신도 태권도 지도자 2인의 기도모임을 통해 시작됐고 세계스포츠선교회 소속 할렐루야태권도단 경인지회로 이후 할렐루야태권도선교회 개명했습니다. 또한  ▲필리핀 ▲러시아 ▲라오스에서 거행하는 할렐루야컵태권도대회를 지원함으로 선교지에서 태권도 선교가 활성화되도록 협력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5월 임원회를 통해 한국 태권도선교 발전을 위해 장자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교회 명칭을 대한태권도선교회로 개명하고 태권도선교신학의 정립과 교육과 훈련, 협력을 위해 힘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 현재 하시는 사역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선교와 관련된 사역으로는 세계 각 선교지에서 태권도용품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해외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태권도선교사를 위해 태권도용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 태권도대회 후원도 하면서 점점 선교사님들이 원하는 걸 듣고 접하다 보니 지속해서 하는 후원에서 더욱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선교사님 중에 연세 있으신 선교사님과 오래 해외에 나가계신 선교사분들을 위한 후원과 함께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해외 선교사들의 현지 제자들이 저의 도장(한국체대비전태권도)으로 와 함께 자고 생활하면서, 제가 태권도 교육을 하고 한국 문화 탐방을 하면서 보살피는 사역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태권도신학연구소장이신 안성일 목사님이 저희 대한태권도선교회에 오시면서 태권도선교신학과 함께 대한태권도선교회가 한 발 더 내딛는 계기와 함께 태권도지도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 태권도 이력이 화려한데요. 태권도를 언제 시작했으며, 시작한 계기가 있습니까.

저는 전라남도 장흥이 고향인데, 제주도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늘 소극적인 사람이었고, 자기표현도 약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다가 태권도장을 가게 된 계기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인 친구가 태권도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땄다고 자랑은 하는데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태권도장에 처음 가게 됐습니다. 

처음 태권도를 하면서 “운동은 솔직하다”, “땀을 흘리면 그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참 재미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태권도라는 운동에 더욱 빠져들었습니다. 

또 제가 태권도를 처음 시작하면서 만났던 관장님. 당시에는 수석 사범님으로 부르라고 하셔서 수석 사범님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사범님이 기억에 남아요.

태권도장에서 생활하시는 사범님이 너무 좋아서 새벽에도 도장에 찾아가고, 심지어 주말에도 도장에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생각하니 도장에서 생활하셨던 수석 사범님과 태권도장에서는 제가 느끼지 못했던 “따뜻하게 보호받고 있다”, “사랑을 받고 있다”라는 느낌을 처음 받았던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매도 많이 맞았는데, 무섭고 아프다는 생각이 아닌 정말 사랑의 매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범님을 보며 저와 같이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제 꿈은 태권도 관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아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떤 고등학생 형이 저를 옥상으로 부르더니 협박도 하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 형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면서 태권도를 쉬었다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면서도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고 군 생활을 하면서 태권도 교관도 하고 선수 생활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태권도청지회라는 단체를 만났고, 이어 태권도선교회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 태권도선교의 비전은 언제 품으셨는지.

제가 출석했던 교회의 청년부가 늘 서울 송파에 위치한 한 교회에 후원하고 분기별로 가서 아이들 목욕도 시켜주고, 같이 청소도 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많이 느끼게 됐습니다. 

그곳은 고아,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이 모여 살았던 곳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보잘것없는 제가 도울 수 있는 손이 있다는 것과 건강을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큰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하게 됐고, 비록 제가 고졸에 배움도 부족하고 돈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태권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제가 태권도 2단이지만 이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것이라도 받아주시면 제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7년 동안 군 생활 그리고 군을 제대하고 사범생활을 하면서 매일 새벽이든 퇴근해서 성전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 태권도선교의 비전 품고 어려움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이겨냈는지.

태권도선교에 비전을 품고 기도하는데 기도 응답이 너무 없어 하나님께 “저를 언제 사용하실 건가요”, “젊었을 때 쓰셔야죠, 힘이 있을 때 저를 쓰셔야죠”라며 기도하는 중 태권도청지회를 만났습니다. 

청지회를 만났던 이때에는 품새는 세계대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계태권도연맹 관계자와 식사하던 중 “품새도 세계대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고는 2006년 품새 세계대회가 생겨 국내에서 첫 시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200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품새 부문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그때 한참 스포츠 스타들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세리머니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도 “하나님이 가장 높은 곳에서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제가 두 손 높이 들고 할렐루야를 외치겠습니다“라고 마음에 새기며 국가대표 소집돼서 훈련할 때도 어디서든 입으로 할렐루야를 계속 외쳤어요. 

그리고 한 경기 한 경치 치르면서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우승을 하게 됐고, 약속대로 두 손 높이 들고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희 집사람한테 금메달을 걸어주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 태권도를 선교와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하셨습니까.

러시아 땅에서 개최한 할렐루야컵 태권도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는데,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당시 기차를 타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일 반나절 기차를 타고 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대회를 위해 힘들게 오는데 도착하면 숙소가 없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돈도 없어서 경기장으로 새벽에 도착해 이불 펴고 잠은 자는 거예요. 이 모든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은 길을 걷는데도 그 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태권도대회를 참가하고 할렐루야와 십자가, 옆차기가 새겨진 메달을 목에 걸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목에 메달을 걸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가장 잘 보이는 좋은 곳에 메달을 걸어놓고 늘 그걸 사람들이 오가면서 보는 거죠. 그렇게 복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을 하니 태권도가 정말 매력적이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시 대회에 1500명 정도의 선수와 가족이 함께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복음의 씨앗을 품고 각 나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태권도와 선교를 접목해서 하나님께 모든 걸 드리고 싶어졌어요.

◆ 모태신앙인가요.

절대 아니에요. 제주도로 이사 가고 그곳에서 교회를 다녔어요. 어릴 때는 교회에서 뭐 주니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교회 가면 성경을 읽으라고 했어요. 그때는 진짜 짜증 났어요. 내가 성경을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그만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에 길로 다니다 보면 들려오는 찬송가는 늘 따뜻해서 좋았어요. 그 따뜻함을 느낄 때면 “다시 교회로 돌아가야지”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런 순간들을 보내면서 지금 일본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한 형님이 있어요. 그 형 사촌 동생이 주일학교 교사여서 소개를 해주셨는데 저는 집, 학교, 태권도장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공통점이 없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 공통점을 찾다가...당시 제가 생각하는 주일학교 교사는 특별한 사람, 목사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교회에 나가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는데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국 군 생활을 하면서 세례도 받고 현재는 부천 목양교회에 출석하고 있어요.

◆ 많은 선교사들과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신다. 힘들거나 어려움은 없으신지. 

일단 제 모토가 “지치지 말고 하자. 그리고 오버하지 말자”예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열심히 뛰자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열심히 전할 수는 있잖아요. 제가 사람들을 만나면 “대한태권도선교회에서 해외에서 태권도 선교를 하는 선교사를 위해 태권도용품을 후원하고 있다. 버리지 말고 날 줘라”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이런 말을 하는 건 힘들지았습니다.

그리고 태권도를 배우고 싶거나, 훈련을 하고 싶어 하는 선교사가 오면 제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인 태권도를 나누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한 부분이에요.

◆ 현재 대한태권도선교회의 고민은 무엇인지.

아직 조직화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조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누구에게 물품을 후원받고 어느 선교사에게 물품이 전달됐는지 기록을 남기지만 힘든 부분이 있어요.

또 어떠한 일을 추진할 때 같은 뜻을 가지고 함께하는 팀들인데도 다 다르구나. 여러 이유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이런 상황에 선교회가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태권도용품 후원을 받아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태권도 체육관, 제가 출석하는 교회 등 여기저기에 쌓아 놓지만 늘 마음의 짐이에요. 

왜냐하면 월세 등 지불하면서 자신들이 사용해야 하는 공간인데 제가 사용을 하고 있고, 또 미관상으로도 소방법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생겨 고민을 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어려움들 속에서 선교센터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들어오면 ▲쉴 수 있는 공간 ▲훈련할 수 있는 공간 ▲선교 물품이 오면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 ▲태권도 선교를 하고 싶어 하는 전문 사역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무실 및 회의실과 같은 부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태권도선교회에서 생각하고 있는 선교사 후보생을 훈련하고 양육해서 보내는  과정들을 할 수 있는 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요즘 여러 과정 속에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비전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부탁드린다.

 

제가 소망하는 것은 태권도 선교센터가 세워져 하나님께서 제 삶을 선교센터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권도 선교센터를 통해 많은 선교사와 함께 협력하고 지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를 육성할 수 있는 미션 스쿨 기독대안학교 또한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 소망이고 대한태권도선교회와 함께 앞으로 한 발 더 내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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