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사역하는 최규연 선교사는 1989년 한양대학교 전자과를 졸업하고 IT(정보기술) 분야 회사에서 국내 삼성, 현대 등 IT 관련회사에 새로운 기술을 제공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또 1997년 중국 북경에 2명의 기술자와 함께 당시 중국의 미개척 분야인 통신 소프트웨어(S/W) 분야의 회사 지사장으로 1999년 중국에 통신 S/W를 처음 판매했으며, 2001년 SK와 서울시 버스 실시간 모니터링시스템 등 IT 실시간 처리 분야 전문가였다.

그러던 중 최 선교사는 2007년 한국전문인선교사훈련(GPTI)을 받고 선교사로서 2011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한국 교회에서 힘을 합해 대학교를 세우는 일에 합류했다. 학교 이름은 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UAUT)다.

UAUT는 산업인프라가 약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기술경쟁력을 갖춘 크리스천 엔지니어를 양성해 그들이 나라 발전에 초석으로 성장하게 하는 목표로 세워졌고, 최 선교사는 2012년부터 UAUT에서 대학교 시설 건축, 기술지원, 관리를 담당하다가 2015년부터 대학생과 현지 어린이들에게 태권도 보급의 사역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최규연 선교사, 봉사를 통한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은 사람

최규연 선교사는 2007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골프 지도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1여 년간 15명의 한국시각장애인골프협회 회원들을 지도하던 중 2007년 10월 1일 포천 베어스타운 클럽에서 열린 제1회 대신증권 배 한국시각장애인골프대회에서 지도자로 참가했다.

최 선교사는 “제가 전담으로 맡아 지도했던 선수는 9홀도 못 가서 포기할 것이라는 모두의 우려를 뒤로하고 18홀을 당당히 완주했다”며 “이에 따라 그 선수의 인생은 깜깜한 어둠에서 새로운 빛을 향해 나가는 멋진 삶으로 바뀌게 됐으며, 그 선수의 친정과 시댁 등 3가족에게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됐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이어 그는 “당시 저에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골프 지도는 내가 좋아하고 즐겨 하는 운동이며, 나의 시간 중 극히 일부를 나누는 아주 작은 섬김이었다”면서 “그것은 그 선수의 집과 시댁 그리고 친정까지 3가족에게 고통과 암울한 삶에서 기쁨과 희망의 삶으로 바뀌게 됐다는 감사 전화를 받게 돼 제겐 큰 충격과 함께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일로 나눔의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필리핀과 베트남 등에 의료인들과 함께 단기 의료선교에 참여하며 선교가 가지는 참 기쁨을 나누었고 GPTI에서 훈련받게 됐다”며 “당시 그 선수는 현재 시각장애인 국가대표 볼링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규연 선교사, ︎남겨진 삶을 주님의 명령에 따른 자비량 전문인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

최규연 선교사는 자신의 인생을 3단계로 구분했다.

최 선교사는 “평균수명을 75년이라고 가정할 때 25세까지는 자신을 위해 살고, 50세까지는 결혼하고 자녀들과 어른들 등 가족을 위해 살게 되며, 50세 이후의 삶은 이제 남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멋진 인생이라고 여러 강연을 통해 이야기했었고 그렇게 살기를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48세가 되었을 때인 2011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대학교를 세우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됐고 작은 힘이라도 도움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 11년 동안 낙후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강의실, 기숙사를 건축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 힘을 더하고 있다”며 “열정적인 학교 교육과 피와 땀으로 기간산업의 토대를 만들어 이룩한 경재・산업 발전은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에서는 귀감이요 국가 모델이기에 몸으로 체험한 것들을 이곳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몸으로 보여주며,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그들 스스로 발전의 주역이 되도록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모든 것이 어려움에 있을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며, 선교사들을 통한 복음의 전파가 그 원동력임을 알고 있음에 이제는 받은 것을 돌려줄 때라는 사명감으로 그리스도의 사람과 은혜로 무장된 선교사로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예수님의 사람과 함께 그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선교사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UAUT)에서 IT 계열 학부 공부를 마친 졸업생 중 13명이 한국에 유학을 와서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터넷보안 등의 분야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UAUT 1학년부터 2학년까지 태권도를 교양필수로 수업에 참여해 수련하고 3학년에는 국기원 1단과 2단을 획득한 학생도 있다.

최 선교사 “앞으로 탄자니아 학생들을 위해 일할 기회가 얼마만큼 주어지게 될지는 모른다”면서도 “남은 인생을 학생들과 태권도를 배우고자 열망하는 많은 탄자니아 유, 초등 청소년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규연 선교사, 끝나지 않은 도전의 삶

최규연 선교사는 “탄자니아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동안 내가 그곳 젊은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나 2015년 가르치던 젊은 태권도 선교사가 떠난 UAUT 대학교에서 ‘태권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과 ‘그것이 내 앞에 있다’라는 현실은 그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는 태권도를 초등학교 시절 1년 배웠고, 군대에서 잠깐 지도했던 일천한 태권도 경험이 전부였다. 그러다 인터넷과 지인을 통해 얻은 영문 태권도 교본을 사범으로 삼아 정신교육과 기본 품새 등을 기초로 나름의 교육과정을 세워 5년 동안 유단자 18명 배출, 3번의 한국대사 배 태권도대회 지원 및 개최하는 등 태권도 보급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최 선교사 “일취월장으로 바뀌는 태권도의 새로운 규정과 품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옛날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음에 많은 부끄러움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2020년 탄자니아 대학청에서 탄자니아에 없는 대학교 교양필수과목 태권도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졌다”며 “대학교 학점을 주는 과목의 강사로서 아카데믹 자격증(석사학위)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 폐강이 됐고 한국에 귀국하여 다음 사역을 놓고 기도하던 중 한국체육대학교에서의 대학원 석사과정 입학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워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움을 갈망하고 있는 탄자니아 태권도 수련생들에게 쉽고 정확하게 가르침으로 태권도가 가지는 정신과 자세를 통해 든든히 서게 하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함께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선교사는 비록 몸은 유연성이 떨어져 젊은 사범님들처럼 멋진 자세나 역동적인 태권도 시범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동네 태권도장에서 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매일 1시간씩 태권도 수련에 임하고 있다.

최 선교사는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 ‘내가 이것을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에 깊은 고심을 하기도 했지만 탄자니아 수련생들의 기대에 찬 눈망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며 띠를 고쳐 매고 다시 일어났다”며 “할 수 있는 한 잘 배워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기다리는 그들에게 잘 가르치고 더 많이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탄자니아 차세대 어린이들을 지도할 체육전문인 즉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되고 태권도로 정신과 육체가 든든히 단련된 체육교사(태권도사범) 양성을 사역의 비전으로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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