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토기장이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토기를 빚듯이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귀한 도구로 쓰기 위해 우리를 빚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빚기 전의 모습을 보면 거칠고 모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를 주셔서 주님나라에 소중한 일꾼으로 다듬어주시고 세워주셨다. 이것이 기적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 정도 빚으셨으니 사람답게 신앙인답게 호흡하며 살아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지체들을 바라보며 그 지체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들을 축복하면 좋겠다. 하나님이 어쩌면 이렇게 잘 빚으셨어요.’ 축복하자.

데살로니가 교회를 묵상하면서 느끼는 것은 참좋은교회라는 인상이다.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설명이 필요없다. 좋은 교회는 그냥 느껴진다. 좋은 사람도 그냥 느껴진다. 사람이 참 좋다는 것은 그냥 알아진다. 가식이 없고, 꾸임이 없고, 진실함은 그냥 저절로 느껴진다.

카페에서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 때 커피향이 참 좋다.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 때 나오는 그 향이 퍼져 코로 느껴질 때 찰라의 기쁨을 누린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좋은교회, 좋은 신앙의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 있으면 그냥 알아지는 것이다. 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식은 금방 벗겨진다.

우리가 데살로니가 전서를 함께 나누면서 한 가지 마음을 품었으면 좋겠다. 영적저력이 있는 좋은 교회에 대한 꿈을 지녔으면 좋겠다. 하나님 나라에 좋은 일꾼으로 다듬어지고 훈련되어지는 그런 멋진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전을 품었으면 좋겠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다. 그렇다고 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완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벽한 교회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상의 교회만 완벽하고 지상에 있는 교회는 완벽하지 않다. 지상교회는 불완전한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얻고 믿음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교회 공동체는 불완전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성결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지상교회는 서로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공동체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본질적인 교회를 향한 비전을 기도와 헌신으로 하나하나 채워가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 비결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개척했다(행17:1-9). 그 당시 데살로니가 도시는 약 인구 20만 내외 되는 큰 도시 중에 하나였다. 신약에 기록된 도시 중에서 오늘날 20세기까지 남아 있는 도시 중에 하나이다. 그리스에 가면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실 수 있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중 3주간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1)데살로니가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날 수 있었던 비결 중에 하나는 바울이 말씀을 강론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바르고 정확하게 전하면 누구에게나 역사가 일어난다.

바울이 말씀을 전했다. 오늘날 주일예배처럼 제목을 가지고 30분 안에 적당하게 배열해서 한 설교가 아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말씀을 강론했다. 강론이라는 것은 귀납적인 방법으로 하나하나 풀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사도바울의 강론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좋은 교회로 성장하는데 발판이 되었다.

17:1-3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2)좋은 교회로 세워질 수 있었던 비결은 성도들의 신앙적인 태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3)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이것이 성장의 비결이다. 말씀을 아멘으로 받을 때 역사가 일어난다. 좋은 교회의 특징은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말씀하신다. 즉 말씀을 레마로 받아들인다.

말씀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로고스와 레마이다. 로고스는 쓰여진 말씀을 의미한다. 레마는 쓰여진 말씀이 성령의 영감으로 깨달아진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가 로고스의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깨달아지고 다가올 때 그 말씀은 능력의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시험을 넉넉히 이기고 승리케 한다.


●좋은 교회란?


좋은 교회에 대한 꿈을 그려보라. 좋은 교회는 목사와 성도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목사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성령의 능력이 충만해지는 것이다좋은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그려보며 함께 축복의 가족이 되기를 원한다.

 

1)좋은 교회란_감사와 기도가 있는 교회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전할 때 아멘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의 마음에 늘 데살로니가 교회가 생각이 난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2절에 잘 담겨져 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살전1: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생각이 난다고 고백하고 있다.

좋은 성도, 좋은 교회는 누구인가?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교회이다. 기도할 때마다 생각이 나고, 기도할 때마다 중보하고 싶은 마음이 늘 일어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성도이다.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다.. 바울은 모든 교회를 향해 부모의 심정으로 기도했다. 전도자 바울을 통해서 얻어야 할 교훈은 기도하는 모습이다.

영적 지도자란 기도하는 사람이다. 지도자는 모든 문제를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사람이 훌륭한 지도자이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본인도 그렇게 살았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기도가 함께 어울려져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할 영적 유산이다. 감사와 기도가 항상 떠나지 않는 교회가 행복한 교회이다. 이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2)좋은교회란_모든 믿는자의 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자의 본이 되었는지라”(살전1:7)

신앙의 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함을 의미한다. 성숙한 성도가 많을 때 교회는 영적 안정감을 준다. 성숙한 성도가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 냄새가 나야 한다. 예수를 믿어도 세상 냄새만 나면 본이 안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고 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세상에 소금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소금 맛을 내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밟히는 존재가 되고 만다. 소금이 소금 맛을 낼 때 존재감이 드러난다. 소금 맛을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이 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5:14) 했다. 빛의 사명은 비추는 것이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빛이 있는 곳에는 항상 밝음이 있다. 빛과 함께 걸어가는 곳에는 항상 밝은 축복이 머문다. 우리는 하나님을 빛내는 빛이다. 생명의 빛을 비추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그런데 그 사람만 있으면 어두워지고 더욱 캄캄해지면 빛이 아니다. 거꾸로 그 사람만 있으면 그 공동체가 힘을 얻고 기쁨을 얻고 감사가 넘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이 빛이다.

좋은교회란 예수 냄새가 풍기는 교회이다. 좋은 성도는 예수 냄새가 삶속에 배어 있어야 한다. 좋은 교회란 항상 신앙의 본질적인 것이 살아있다. 데살로니가 교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균형잡힌 교회였다. 이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의 모습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1:3).

 

(1)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다.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믿음의 역사가 있으면 좋은 소문이 난다. 믿음의 역사라는 말은 믿음의 구체적 결과가 나타난 교회라는 말이다. 즉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교회였다는 것이다. 믿음은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과 죽음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였다. 믿음 중심의 삶속에는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나타난다.

또한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삶이 있는 믿음을 말한다. 믿음에는 그에 따르는 위대한 헌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럴 때 좋은 교회, 좋은 성도가 되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는 믿음은 가짜이다. 믿음이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믿음은 열매로 나타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이 살아있었다.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였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는자가 되었으니”(살전1:5,6).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이 살아있었다. 살아있는 복음이란 어떤 복음일까?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다. 살아있는 복음은 많은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님을 본받는 믿음이다. 또한 복음이 살아 있는 교회는 믿음의 소문이 퍼진다. 죽어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서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온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전해졌다.

 

데살로가 교회는 우상을 버렸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살전1:9).

데살로가 교회는 우상을 버렸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다. 믿음의 역사는 우상을 버릴 때 일어난다. 나의 우상은 무엇인가? 그것이 나에게 너무 소중하고 버리기 어렵더라도 그것이 우상이라면 버리라.

우상을 마음에 품고서는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다. 십계명 중 1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이다. 첫 번째 산을 넘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인생의 왕을 교체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자리는 오직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복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해보면

(1)내 인생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2)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내 인생을 세울 분, 내 가문과 일터를 세울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간절히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란다.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한다.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과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역대상29:11,12)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겼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신약에서는 법궤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법궤는 곧 하나님이다. 법궤를 옮길 때에 다윗의 마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히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6:14,15).

법궤를 옮길 때에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다윗은 법궤를 모시고 오는 것을 즐거워했다. 모두 즐거워하는데 유독 이 모습을 보고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울의 왕 미갈이다. 미갈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다.”

미갈은 영화로운 이스라엘 왕 다윗이 오늘 방탕한자가 염치없이 자기 몸을 드러내는 꼴을 보였다고 비난했다. 다윗은 내가 즐겁게 춤추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하는 것이다.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높임을 받으리라”(삼상6:21-22).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의 인생은 점점 강성해지고,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했던 미갈은 죽는 날까지 태의 문이 닫혔다.

우리의 삶을 능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믿음의 거룩한 역사를 써가라.

 

(2)좋은 교회란_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이다.

진정한 사랑은 말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수고로써 나타난다. 사랑은 입으로 보다 손으로 그리고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랑에 수고가 동반될 때 변화와 관계가 회복된다. 수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수고를 담대히 감당하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6,8).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너무 사랑하기에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분의 사랑의 수고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모든 질병과 원수마귀로부터 해방되었다.

 

에벧린 듀발 박사는 사랑은 여섯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로 사랑은 언제나 밖을 향해 나타내야 한다. 즉 남에게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 주어야 한다.

둘째로 참된 사랑은 창조적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 열심을 낸다.

세째로 사랑은 분담하기를 원한다. 나 혼자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괴롬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네째로 사랑은 []만을 생각하는 대신에 [우리]를 생각한다.

다섯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좋아한다.

끝으로 사랑에서 시간이 가장 확실한 시금석이다. 사랑하면 어떤 어려움에도 꾸준히 끈기있게 참고 계속한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3)좋은교회란_소망의 인내를 가진 교회이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았다. 정치적으로 로마당국으로부터 황제숭배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를 당했고, 유대교인들에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당했고, 또 직장이나 그 밖에 어떤 단체에서든지 핍박을 당했다. 이들이 이 고통과 환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1:10).

그들이 잘 견디어 낸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소망 때문이었다. 사실 사람은 소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잘 견디어 낸다. 그러나 소망이 없을 때에는 작은 어려움도 견디어 내지를 못한다.

유명한 주석가인 벵겔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가장 확실한 특징이라고 했다. 이것이 있어야 진짜 신자이다.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어려움이 있다.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그 어려움을 희망의 인내 속에서 꽃피우는 위대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빅톨 프랭클 박사가 쓴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란 책은 많은 감화를 준다. 나치독일의 처참한 유대인 수용소 관찰 기록을 남겼다. 그에 의하면 건강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 중에서도 남을 격려하며 도와주는 사람들이란 통계를 냈다. 이처럼 사람은 소망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아남는다. 희망은 수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좋은 교회가 되는 것,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한다. 목표가 분명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늘 신앙적인 본질을 찾아 가는 위대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는 것은 축복이다.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마음에 좋은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성도들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릴 때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다.

감사가 넘치는 교회, 생각할 때마다 기도하고 싶은 성도, 교회가 될 때 행복한 교회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좋은 교회란 본이 되는 교회이다. 어떤 모범을 보여야 하는가?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 사랑에 수고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교회, 재림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품고 인내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며 그 소문이 주변에 퍼져간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박박사.등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