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두번쩨 큰 도시 데살로니가_바울당시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수도
그리스에서 두번쩨 큰 도시 데살로니가_바울당시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수도

바울의 인사말

(1)서두 인사말_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교회를 생각할 때마다_하나님께 감사, 기도할 때마다 기억나는 교회

(3)데살로니교회 영적저력:

믿음의 역사_믿음의 이야기.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믿음의 살아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사랑의 수고_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소망의 인내_꿈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력.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 인내로 채워져야 한다. 인내의 시간은 힘들고 고달프고 보이지 않는다. 그 견딤의 시간이 마음의 근력을 단단하게 한다. 소망을 이루기 위한 인내의 시간은 축복이다.

(4)복음을 붙든 교회_환난과 핍박 가운데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충만한 교회,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을 붙들었기 때문, 복음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 복음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과 천국을 믿는 것이다.

성체에서 바라보는 데살로니가 도시
성체에서 바라보는 데살로니가 도시

 


2장을 읽으면서 진하게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은 복음전파에는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역_복음 전파를 위해 고난을 감수

1) 살전 22절에서 사도바울은 전도 사역의 중심적인 두 단어를 제시했다: 고난과 능욕, 하나님의 복음이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으나”(살전2:2).

 

2)바울의 인생도 다메섹에서의 영적 사건 전과 후로 구분된다.

(1)다메섹 이전의 청년 사울의 모습

다메섹에서 영적 사건을 경험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청년이었다. 그것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 전도자로 살면서 고난과 능욕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다.

바울이 거듭나기 전에는 인생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구약에 정통한 지식인으로서 이단 괴수인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유대사회에서 괴멸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사명으로 알았다. 예수를 따르는 잔당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중, 하늘에서 빛이 비추었고, 사울은 땅에 엎드러져 소리를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9:4,5).

사울은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지냈다. 3일이란 시간은 무너짐의 시간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지식의 체계, 확신의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사울은 예수님을 사단의 괴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구원자로 믿었다. 그런데 구약에 정통한 학자인 사울은 예수님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야가 이미 오셨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울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울은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 되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이름은 바울이 되었다. 사울은 큰 자란 의미이고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이다.

 

(2)다메섹 이후 바울의 인생_고난과 능욕

예수님과 추종자들을 핍박했던 사도바울이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복음 전도자의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고난과 능욕의 시간이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았다. 세 번 태장을 맞았다. 한번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일 동안 바다에서 지냈고, 강과 도적의 위험, 동족, 이방인, 시내의, 광야의 바다의 거짓형제의 위험을 당했다.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후11:23-27).

 

사도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빌립보 선교이야기는 행16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이 막았다.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다. 바울은 환상을 이렇게 해석했다. 하나님이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복음 전도지역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변경했다,

 

오늘날 터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했다. 빌립보 지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기도하는 장소로 가던 중에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났다. 여종은 점으로 인해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종이었다.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바울을 심히 괴롭혔다. 바울이 여종을 향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오라즉시 귀신이 떠나갔다. 귀신이 떠나가니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칠 수가 없었다. 주인은 자기 수익이 끊어졌기에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다. “우리 성을 요란하게 하는 자들이다.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매를 친 후 감옥에 넣었다.

한밤중 깊은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때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모든 문이 다 열렸다. 사람들을 묶고 있던 모든 쇠사슬들이 다 벗겨졌다(16:24-26).

간수들은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절망하여 칼을 빼서 자결하려 했다. 그때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간수들이 벌벌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서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언을 받으리라”(16:30-31). 그 밤에 간수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다(33).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16:34).

복음을 전할 때는 항상 진통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기쁨이 충만이다. 복음을 전한 사람이나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사람이나 항상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충만하다. 무엇보다 복음의 이야기들이 있다. 이것이 축복이다.

-바울일행은 빌립보를 떠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 도시로 이동했다(17:1).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했다. 강론이란 주일에 30분 목사님들이 예화 집어넣고 적당히 버무려서 듣기 좋게 가르치는 것을 강론이라 하지 않는다. 강론이란 구약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다는 것이다. 성경을 깊이 있게 논리적으로 가르쳤다.

바울이 가르친 성경은 무엇인가?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17:3).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님은 곧 그리스도라고 가르쳤다. 그분이 많은 해를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했다. 복음을 분명하게 가르쳤다.

이 사건으로 경건한 헬라인들과 많은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였다. 그 시기로 인해서 바울일행은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바울의 전도사역을 못하도록 괴롭혔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고 로마 황제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임금 예수가 있다고 전하는사람들이라고 고발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편안한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시기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당당하게 전했다.

 

(3)“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복음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은 분이다. 바울은 세상 학문을 초등학문이라고 했다. 세상 학문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 정도로 복음을 사랑한 분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생명을 걸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는 원어는 파르레시아조마이(παρρησιάζομαι)’라는 동사인데, 뜻은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두려움 없이 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울이 이 표현을 쓴 이유는 복음 사역 자체가 모호하거나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고, 분명하게 복음을 전한다는 뜻이다.

바울로부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분명한 복음을 받았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전하는 자가 확신가운데 분명하게 복음을 전달할 때 살아있는 메시지가 된다. 또한 듣는 사람들도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지만 영적 성장이 일어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아주 큰 진통이 있다.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는 영적 진통을 통과한. 아주 편하고 순조롭게 복음이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주 혁명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전쟁이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보이는 물건도 아니다. 복음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구 승천하셨다. 그 분이 다시 재림의 주님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재림의 주님으로 오실 때 예수 믿다가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공중에서 혼인잔치가 있고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고, 두 번째 악인의 부활이 있고 그 후에 모두 재판장 되신 예수님 앞에서 서서 백보좌 심판이 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는 분들은 모두 지옥형벌을 받고, 생명책에 기록된 주의 자녀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요 왕이었다면 예수님을 내 인생의 왕으로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종이고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다.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항상 영적 싸움이 있다. 고통이 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마귀의 간계를 이겨내야 복음이 전달된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0-13).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 말은 영적으로 무장하라는 것이다. 보이는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영들과 싸우는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전도와 선교가 가능하다.

 

2. 바울의 복음 사역_청지기 정신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2:4)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청지기로 소개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 복음을 위탁 받았다고 말한다. 즉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 자신은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바울이 위탁받은 복음은 나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말씀을 하나님의 복음’(살전2:2)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주어가 자기 자신이다.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이라 말했다. 주어가 하나님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절대 우월의식이나 특권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복음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종이요 청지기일 뿐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탁받은 청지기 정신으로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다.

 

(2)복음은 정직하게 전하라.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3)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정직하게 전했다. 복음 전도자는 간사함, 부정함, 속임수가 없어야 한다. 복음은 주님이 맡겨주신 것이다. 청지기는 항상 지혜롭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이다.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들은 정직해야한다. 복음은 좋은 복된 소식이다. 정직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주님의 도우심이 있다.

 

(3)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예수 사기꾼 되지 말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5).

복음 전도자 바울은 아첨하는 말,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다.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한다는 핑계로 아첨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아첨하는 말은 진실성이 없다. 위대한 복음을 전하는데 인간의 잔꾀인 아첨하는 말로 해서는 복음의 능력이 약화된다.

탐심의 탈을 써서는 더더욱 안된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속에는 탐심을 감추고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서도 안된다. 전형적인 예수 사기꾼들이다. 예수님 이름 팔아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은 항상 선하고 깨끗하고 정직하고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4)복음 전도자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말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6).

복음 전도자가 너머 지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보다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영광 받고, 그 영광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면 반드시 넘어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올무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언어 사용을 절제 있게 해야 한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많은 사역을 감당한 분이있다. 그분의 고백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한 점이라도 찍고천국에 가고 싶다. 겸손할 때 더욱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신다.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요 멸망의 선봉이다. 마귀 사단은 밀까 불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우리는 약할 때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강하게 역사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5)복음 전도자는 특권의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살전2:7,8)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 특권의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복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사도로서 권위를 내려놓았다. 특권의식을 내려놓았다. 나도 그리스도의 사도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며,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라는 특권을 내려놓았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특권의식을 다 내려놓았다. 오로지 복음을 위해서이다. 특권의식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걸림돌이 되어서도 안된다.

사도로서의 권위보다 유순한, 유모가 되어 자기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리더십으로 섬겼다.

하나님의 복음과 너희를 위해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자는 복음을 위해 직분의 특권의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히려 복음에 생명을 받쳐야 하고 목숨까지도 내어주어야 한다.

 

(6)복음전도자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9)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한다는 하나의 이유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밤낮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자비량 사역을 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사역하였다. 밀레도 해변에서 교회 장로들과 작별하면서 어떻게 3년간 사역을 하였는지 바울의 심정을 전하였다. 3년간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하였다고 한다.

내가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깨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3-34)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특권 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았다. 남의 것을 거져 얻으려는 공짜 심보가 없었다. 타인의 물질을 탐하지 않았다. 일행들의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썼을 뿐 아니라 힘든 사람들을 섬겨주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삶의 자리가 넉넉하지 않다. 일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의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다. 5일간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주일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모습은 아름답다.

저도 교회 개척을 할 때 연약한 성도들에게 어깨에 짐을 올려놓지 말자. 아내하고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교회 임대료와 운영비내고 우리 자녀들 우리가 교육시키면 되지, 꼭 교회에서 주는 것만 받아서 생활하라는 법이 어디 있어. 이런 마음으로 교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 빚 우리가 갚자.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건축헌금하라고 강요하지 말자. 말대로 하나님이 삶의 지경을 넓혀주셔서 모든 빚을 다 갚게 되었다.

23년을 본푸른교회를 담임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교회에서 사례비 더 받으려고 몸부림 친적이 없다. 휴가비. 등등 이런 것 생각해 본적도 없다. 교회하고는 흥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하고는 계산한다. 이것이 저의 철칙이다.

우리가 더 많이 벌어서 교회를 섬기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23년이란 시간을 통해서 엄청난 성장을 주셨다.

노후준비로 걱정근심이 많은데 저희 부부는 노후 걱정 안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광야에서 훈련을 고되게 받았기에 미래가 걱정되지 않는다. 따박 따박 주는 사례비로 살았다면 아무런 능력도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감사가 된다. 맨땅에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우셨기 때문이다.

 

(7)복음 전도자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

복음 전도자는 삶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동했다. 바로 너희들이 증인이고,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한다. 복음 전도자들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한다. 복음 전도자의 생활이 덕이 안되면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이요 조롱거리가 된다. 오늘날 전도를 가로막는 것은 믿는자들의 삶이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복음은 고난을 통해서 능력있게 확산된다. 복음전하다가 핍박을 받는다면 행복하게 여기라. 복음은 영적인 사건이다. 주인을 바꾸는 것이다. 내 안에 왕을 교체하는 것이다. 이 땅 너머 저 하늘 저 천국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미리 믿는 것이다. 복음을 믿는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다. 복음은 고난을 통과할 때 더욱 단단하게 빛을 발휘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나에게 위탁하신 것이다. 위탁받은 복음을 청지기 정신으로 전하는데 성실과 정직과 충성과 지혜로 전하는 복음전도자가 되자.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축복하신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면, 주님이 우리의 일을 대신 열어주신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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