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진 박사는 고려신학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교, 그리고 풀러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하셨다. 현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연구중이시다.
전호진 박사는 고려신학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교, 그리고 풀러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하셨다. 현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연구중이시다.

지난 5월 방콕에서는 군부억압정치에 억눌렸던 젊은 세대의 감정이 멋지게 폭발하였다. 40대 하버드 출신의 피타가 리드하는 정당(전진당)이 제1당이 되고,  탁신의 딸이 리드하는 정당(프아타이당)이  제2 정당이 되었다. 방콕 지역의 의석 34석 가운데 33석을 두 야당이 차지하였다. 영국식으로 하면 제1당이 된 당수 피타가 총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7월 총리 선출은 안개속이라고 보도한다. 상원의 군부가 뽑은 250명이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군복입은 국회의원이 ¼를 차지하는 미얀마와 똑 같다.    

인도차이나는 기독교와 민주주의(서구식 민주주의)의 자갈밭(돌짝밭)이다. 기독교가 자갈밭이 된 것은 이미 수차례 페이스북에서 거론하였다. 왕이 신이 되는 일본과 동남아 불교국가는 선교의 자유가 있으나 대중의 마음문이 닫혀있다. 민주주의도 동일한 상황이다.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면 군부가 엎어버리고 만다. 미얀마는 민주화로 나가는 것 같았으나 지금 군부가 나라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인도차이나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았다. 1976년 태국은 좌익학생들의 격렬한 데모를 군부가 제압하였다. 태국 외 4개 국가는 공산주의 혹은 준공산정권이 통치하고 있으나 독재와 부정부패가 반복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저서 “1984”에서 이 사실을 예언적으로 소설화하였다. 그는 1930년대 미얀마(버마)에서 영국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면서 공산주의의 모순을 직시하였다. 

종교를 아편으로 보는 공산주의는 불교국가에서는 뿌리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정반대이다. 인도차이나에서는 불교 사회주의 이념이 등장한 것이 오래되었다. 심지어 승려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기도 하였다. 캄보디아 전 국왕 시하누크도 공산주의로 전향하였다. 그래서 폴포트와  처음 손을 잡았지만 도리어 추방당하여 평양에서 무려 10년 이상 비싼 “식객노릇”을 하였다. 그는 김일성 주체사상에 반한 자였다. 93년 왕으로 귀국하여 프놈펜 중심가의  한 거리를 “김일성로”로 명명하고, 북한 대사관을 특별 대우하였다.  미얀마는 아예 불교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소수의 서구 불교 연구가들은 크메르 루즈(킬링필드)의 잔혹한 인종청소(genocide)는 불교의 차용이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대하여는 PhD학위 논문까지도 나왔다.

민주주의 가치관을 전 세계에 확산하는 미국은 중동전쟁을 통하여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리비아의 가다피를 제거하면 민주정권이 들어 설 줄 알았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신악이 구악을 대신할 뿐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식 민주주의가 성공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 3대 이념으로 발전한 후진국의 모델국가이다. 일본은 국회의원만 투표한다. 왕은 “신이 임명하여” 국민들이 선출할 수 없다. 아시아 국가에서 대부분 청년은 민주화 열망으로 가슴이 부글부글 타지만  독재가 물러가도 좋은 대안 세력이 없다. 민주화의 영웅 아웅산 수지는 “영파워”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젊은 “투사”는 많았는데 정작 나라를 통치, 관리할 전문  기술관료(technocrat)가 없었다.  

왜 민주주의의 자갈밭인가? 


인도차이나는 왜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자갈밭인가? 지배 종교(dominate religion)의 사슬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은 언론, 종교, 출판 등에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종교, 인종, 문화의 다원화 사회가 되어야 한다. state religion과 official religion은 종교의 자유도, 다원화도 거부한다. 비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영국과 미국이 민주주의의 원조이다. 영국은 왕권으로 인한 억압정치였지만, 시민혁명으로  비국교 신자들을 영국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에서 해방시켰다. 미국 독립운동도 같은 영국 사람끼리 싸운 전쟁이다. 영국 국교회의 박해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신대륙으로 건너갔는데, 무주공산의 신대륙을 영국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자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신앙”을 외치면서 결사항전하였다.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만들었다.  

소승불교국가 인도차이나는 힌두교 영향으로 왕은 신이고 절대 권력의 통치자이다(deva-raja). 앙코르제국 첫 왕인 자야바르만 2세가 인도차이나에서 deva-raja의 원조이다. 힌두교의 계급주의가 그대로 수입되어 보이지 않는 신분사회를 만들었다. 왕이나 정치가들의 학정과 부패에 대중은 카르마 사상으로 저항할 줄 모른다. 운명론의 불교 문화가 “혁명열기”를 죽인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증오하였다. 

인도차이나에서 데모는 청년들과 대학생들의 몫이다. 76년 10월,  태국왕권과 군부에 대항하여 좌익 대학생들이 격렬히 데모하여 수백명이 죽었다. 이들을 영어로는 Octobrists세대로 정의한다.  

티다는 왕권제도 폐지, 징병제 폐지, 동성연애 지지를 선거공약으로 내 걸었다. 왕정폐지는 신성모독죄와 같은 민감한 이슈이다. 징역 15년형 감이다. 청년들은 여기에 적극 지지하겠지만, 왕실을 지지하는 군부와 기득권 세력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태국왕은 인기가 없지만 전 국왕 라마 9세는 므루산(Mountain Meru)에서 내려 온 라마신의 화신(incarnation) 으로 존경을 받았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를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라고 본다. 과거 캄보디아 왕도 일부 대중에게 신으로 여겨졌다. 폴포트가 왕을 추방하자 일부 농민은 왕이 없는 캄보디아에 농사가 잘 될 수 있을까 우려하였다고 한다. 캄보디아 역사 전문가 찬들러는, 시하누크 왕은  캄보디아 비극을 만든 책임자라고 신랄하게 정죄하지만 백성의 정서는 정반대였다. 

피타가 총리가 되면 혁명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국가의 모든 부동산은 왕이 주인이었다.  왕이 없어진 미얀마 경우 군부가 그 재산을 차지하고 있다. 양곤의 요지 땅은 군부 소유이다. 태국도 마찬가지이다.  수년 전 외국의 한 언론은 태국왕은 세계에서 5대 부자 중 하나로 발표하였다. 왕의 친척들이나 기타 기득권 세력들이 재산을 관리하고 있다. 산지도 마찬가지다. 인도차이나에서는 백성의 소리가 곧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서양 격언은 통하지 않는 동네이다. 

인도차이나는 군부독재의 국가들이다. 군인들은 카스트의 두번째 계급이다. 태국은 군부 쿠데타의 나라이다. 1932년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프라자디폭 왕을 군부가 쿠데타로 견제하여,  절대왕권을  입헌왕권제로, 정치 체제를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18-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러면 군부는 국민편인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철저히 태국 군부는 왕을 위한 군대이다. 태국 국제정치학자들의 저서  The Knights of the Realm: Thailand’s Military and Police, Then and Now(2013)는 이것을 증명한다. 이 책 제목대로 군부는 왕의 기사들이다. 인도차이나에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결론으로 인도차이나 정치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politics of despotic paternalism(독재적 가부장주의 정치)이다.(Thak Chaloemtiarana, Thailand: The Politics of Despotic Paternalism를 참조할 것) 교회 지도자들도 가부장적 리더쉽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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