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27회에 걸쳐 강해해 온 호세아서는 본문 9절 말씀으로 마감된다. 
* 호 14: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이 결론의 의미가 무엇인가? 누구도 하나님의 신비하고 오묘한 구원의 경륜을 알 수 있겠는가? 없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나 총명한 자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생각과 뜻 그리고 시행하시는 역사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깨닫는 자는 없다는 것이 호세아서의 결론이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1.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 


이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오솔길도 있고 고속도로도 있다. 지난 1959년 소련 대통령 흐루쇼프가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후 인터뷰에서 발달된 농업기술, 화려한 디즈니랜드와 같은 호락 시설 등 많이 있는 데 그 중에 가장 갖고 싶은 것은 고속도로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 참으로 고속도로는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좋은 시설이다. 

인생의 길도 여러 가지가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하는 지는 쉽지 않다, 매우 어렵다. 그 길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인생의 길을 제대로 가도록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자식이 부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인생의 길을 결정하여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는 부모의 말을 듣지만 머리가 커지면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나아간다. 물론 이런 아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성년이 되면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하여 결정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정상기 때문이다. 이때 그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무엇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호세아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북조 이스라엘에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호세아는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실천하면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자녀를 낳으라고 명하셨다. 호세아는 세 자녀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를 두었다. 이는 언약 백성임에도 더는 백성으로 삼지 않고 버려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겠다는 단호하고도 철저한 심판을 예고하는 이름들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정을 이룬 호세아는 이 자녀의 이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겼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심판만을 예언하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과 함께 구원을 예표 하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 호 1:10~11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이러한 구원의 완성을 예언하는 말씀은 마지막 장 14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호 14:4~7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배교와 우상 숭배의 길로 간 이스라엘에 진노하시며 심판을 경고하시면서도 그 과정을 통하여 고치시고 회복시키셔서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구원의 경륜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전 과정에 대하여 누가 이것을 알 수 있겠는가? 지혜가 있다면 때달아 보거라, 총명하다면 이해해 보라고 도전하신다.  
* 호 14:9a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란 선지자 호세아가 전한 모든 말을 뜻한다. 즉 호세아를 통하여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 누구가 알고 깨달을 수 있겠는가 라는 하나님의 도전이시다. 그렇다. 모든 인생은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운행하시는 섭리에 대하여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즉 예정 중생 성화 영화로 설명한 이후 결론적으로 교리 부분을 마감했다. 
* 롬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렇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그의 판단은 그 누구의 도움도 조언도 필요하지 않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 그리고 추진력으로 통치하시며 시행하신다. 

이렇게 성경은 단순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교훈을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뜻을 전하고 통치하심을 알려 그 길로 들어와 구원의 역사에 합류 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욥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다가 창조주 하나님 의 주장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했다. 
* 욥 23:2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2. 모두가 알아야 할 길


문제는 하나님께서 밝히시는 그 길을 찾기가 쉽기 않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죄 된 성향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정욕대로 하려는 반역적인 성향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싫어하고 조직적으로, 의도적으로 우상을 만들어 타락하고 배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당신의 언약 백성을 다루셨다. 혹독하게! 북조 이스라엘이 망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들은 주전 722년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여 온 세상에 흩어져 버렸다. 이스라엘이 이스르엘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시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셨다. 
* 호 14:9b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도”는 “여호와의 길들(the ways of the Lord"이다. 즉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다양한 길, 방법, 시도는 다 정직하다. 바르고 곧고 옳다, 이 길들은 옳은 목적을 향하여 가는 바른 길이며 참된 길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시행하시는 길은 궁극적으로 옳고 바르고 정직하다. 

이같은 교훈을 다음 구절들이 잘 보여준다. 먼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광야 40년을 인도한 모세는 그의 사역을 하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논했다. 
*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그리고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시 19: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특히 시편 119편 저자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믿음과 결단을 사모하며 다름과 같이 말했다.

* 시 119:33~37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도,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을 사모하고 순종하여 따를 때, 그 인생은 형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인생의 길에 대한 설명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기록해서 주신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성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던 것이다. 
*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렇다 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b)"인 것이다. 

호세아서 말씀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은 바로 하나님의 깊고 도저히 알 수 없는 구원 방식이다. 오늘날 성도들은 구약 시대 성도들 보다 복 받은 자들인 것은 신약 성도들이 이미 다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시기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모두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대하여 살피고 알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3. 의인이 되어야 갈 수 있는 길


호세아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마지막으로 그의 예언을 마감한다.  
* 호 14:9c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의로운 자가 되어야 정직한 하나님의 도 즉 여호와께서 제시하시고 허락하신 길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의인이며 누가 죄인인가?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여 따르는 자를 말한다. 그런데 어느 누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사도 바울은 의인이 되는 방식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 믿음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롬 10:10, 17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다. 복음을 들을 때,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듣고 믿고 시인할 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된다. 이러한 구원의 진리를 구약 성도들에겐 희미하게 주어진 진리이지만, 신약 성도에겐 부인할 수 없도록 역사 속에서 완성되어 기록된 진리가 주어졌다. 얼마나 갑사한 일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는 자를 강조하면서 구원의 도리를 설명했다. 
* 사 26:7~10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 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렇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원의 도리를 이미 전해 주셨다. 우리는 호세아서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했다. 그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의 진리이다. 구원을 얻기 원하는가! 이 믿음의 길을 선택하여 가야한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하였고 망하고 말았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제 호세아서 강해를 마치면서 다시금 이신칭의 진리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된다. 

결론 


이 세상의 길들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시편 73편 기자의 질문이 무엇인가?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이 무엇이며(합 1:12~17), 예레미야 선지자의 질문이 무엇인가(렘 15:10) 악인이 잘되고, 선한 사람이 고통을 겪는 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분통을 느끼며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가?
* 시 73:16~17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의 성소에 가서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동안 괴로워하고 갈등을 겼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방식에 대하여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진리이다. 그 진리를 믿을 때 의로워지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 

욥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그동안 귀로만 듣던 하나님에 대하여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 욥 42:1~5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백과 확신 그리고 성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믿을 때만 가능하다. 이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께서 이렇게 우리를 초청하셨다. 
*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본문 9절 말씀대로 의인은 여호와의 진리대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죄인은 그 여호와의 말씀에 걸려 망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죄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를 초청해 주신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이시며 길이시며 진리이심을 믿고 나아가기 바란다. 이것이 호세아서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하신 은혜이며 말씀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기원이며 과정이며 목적이시기 때문이다.
*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호세아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를 잘 배울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간섭과 경책, 그리고 회복과 구원 이 모든 말씀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짐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깊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더욱 깊이 살피게 하시고 그 진리를 사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믿게 하옵소서. 이 사악하고 죄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밝은 진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사랑과 공의 진리와 화평을 이루며 사는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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