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 죄(罪)는 "죄(罪)는 회의문자(會意文字)로 그릇된(非)일을 하여 법망 즉 그물망머리(罒=网, 㓁, 罓)에 걸려들었다는 데서 '죄'를 뜻하는 글자이다"(이찬재).

죄는 보편적 개념인데, 서양에서 죄는 기독교 개념으로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식이 있습니다. 죄의식은 영어로 guilty로 연결해봅니다.

영화에서 판사가 guilty(유죄) 혹은 not guilty(무죄)라고 판결합니다. 무죄가 순수(Innocent)는 아닙니다. 법정의 무죄는 법정적 결정이지 인격의 순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죄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법정적 유죄가 인격적으로 순수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 법정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죄와 죄의식(죄책), sin and guilty(peccatum et culpa), guilty and Remorse(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의식의 변화를 세분하기도 합니다(테일러, Gabriele Taylor).

<참고> 토마스 머튼의 "죄의식(the sense of sin)", The Inner Experience 13장 번역한 인터넷 사이트의 글을 요약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죄의식(sense of sin)과 죄책감(sense of guilt)를 구분합니다. 머튼은 sin and guilt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머튼은 죄의식을 내면에 있는 악을 의식하는 것(sense of evil)으로 분류했습니다. 즉 머튼은 자기내면에서 올라오는 죄의식(sin)과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오는 죄책감(guilt)으로 구분했습니다. 머튼은 관상가들은 죄의식이 살아있게 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죄의식이 없는 사람이 악을 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머튼의 규정, "죄의식이 없으면 악을 행동한다"는 것은 정당한 분석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것은 악을 선택해서 행동하면 죄의식(sin)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왜곡된 의지(voluntas perversa)"라고 합니다. 신학에서는 전적부패(total depravity)라고 규정해서, 인간에게서 어떤 선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선택하는 문제에서 선과 악이 결정됩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이 선택하는 모든 것이 악이기 때문에, 인간은 부단하게 자기를 부정하며 정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악 안에서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심이 신비이고 자비입니다. 그 악이 드러난 양상이 죄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식(sense of sin)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우리시대 정신입니다. 본성에 충실하도록 증진하고 있습니다(계몽의 변증법, Dialectic of Enlightenment, 1944년).

필자는 sin and guilty(peccatum et culpa)를 구분을 제언합니다. sin는 "악의 성향이 외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인간 내면에만 있는 상황"이고, "guilt는 죄가 드러나거나 구체적으로 영향을 나타나는 상황"으로 제언합니다. 즉 죄를 죽이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께 반역하는 성향, 악을 억제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는 “악에서” 구함을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