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주일 설교> 본문 : 히13 : 7-9

가마산교회 장대선 목사

오늘 우리들의 시대는 참으로 참담하고 답답한 시절을 직면해 있습니다. 먼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근간을 유린당하는 일들을 또 다시 겪고 있다는 점에서 참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1979년 12․12 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했던 신군부에 대해, 당시 대통령을 대행했었던 국무총리가 일개 촌부처럼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자 그의 역할을 모두 포기해 버림으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를 불법 세력에게 순순히 넘겨주었던 것보다도 더욱 참담하게, 현 정권의 대통령은 모든 권력들을 일개 측근(지인)에게 비밀리에 양도해버리는 참담하기 이를 때 없는 일을 자행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우리들은 자본주의의 심각한 병폐와 도덕적 해이 뿐 아니라, 국가부채 및 가계부채의 심각한 누적에 직면해 있어서 언제든지 뇌관의 역할을 하는 사건만 벌어진다면 순식간에 사회·경제구조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과 두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시대상 가운데 놓인 개신교회들의 면면을 보면, 가히 종교개혁의 후손들이 아니라 종교개혁을 받아야 마땅한 후손들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각한 타락 가운데 있는 것이, 종교개혁 499주년을 맞는 이 사회의 기독교의 실상입니다.

이 나라 정부의 참담한 현실 못지않게, 그야말로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것이 기독교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부패하고 참담한 이 사회, 그 가운데서 똑같이 부패하고 참담하게 되어버린 개신교 신앙이 붙들어야 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르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가 언급하는 이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장로들과 목회자들을 말합니다. 사람에 대한 무서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에 관해 사도는 그들을 가르치며 교회를 치리하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장로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들을 치리하도록 부르신 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풀고 가르침으로 치리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그런 그들에 대하여 “생각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어 말하기를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데 사도가 그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고 인도하던 자들, 곧 교회의 치리자들을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치리자들을 시험하여 보라는 것은 또 어떤 말입니까?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롬 16:17절에서 이르기를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즉 그들에게 이미 가르쳐진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다른 교훈으로 분쟁을 야기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이미 전하여 가르친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히 13:8절에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앞선 히브리서의 구절들 가운데서 사도가 강조하고 있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12:2)가 누구였습니까? 앞선 히브리서의 말씀들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에게 누구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10:19)고 했습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에서 소개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던 것(11:13)이 누구를 바라다 본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구약의 허다한 증인들과, 이 땅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히브리 출신의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바라다보고 환영하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히 13:8절에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그들을 교훈한 것이 아닙니다. 롬 16:17절에서 사도가 권한 교훈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교훈이요 권면이니,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사도는 히 13: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 주고 인도하던 자들에 관하여 이르기를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인즉슨 그들이 말한 교훈과 더불어서, 그들이 또한 전하고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스스로도 헌신하며 신뢰했는지에 관하여 살피고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일러 가르친 자들의 교훈들은, 그저 말에만 그쳤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돈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 내가 너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뢰하고 붙들므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뢰하는 행실을 입증했던 자들인 것입니다.

행 12:1-2절 말씀은 이르기를 “그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었던(행 6:8) 스데반도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여 그리스도에 대해 입증했을 뿐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행 7:55)을 바라보며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그들의 행실의 결말로서 그들의 믿음을 보여주었고, 많은 이들이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에 착념했었던 것이 바로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장로들과 목회자들의 일관된 교훈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가르침과 인도함 가운데서 멀어지게 될 때에, 신자들은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려 결국에는 돈을 사랑하며 돈을 쥔 사람을 무서워하므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불행히도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그처럼 우리를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과 돈을 무서워하여 족한 줄을 모르고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널리 편만해 있는 시대입니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러 주고 인도하는 사역자들 또한, 돈을 사랑하므로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딤전 6:5)이 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돈을 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역자들이 극히 희소합니다. 지교회 뿐 아니라 노회와 총회까지도 온통 돈과 그것으로 산 권력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의 참담한 모습입니다. 예배당이 사업장이 되고, 사업자인 사역자들이 크건 작건 간에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일들이 엄연한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들은 교회들끼리, 사역자들은 사역자들끼리 무한한 경쟁과 시기로 엃혀 있습니다. 사회는 돈을 사랑하여 권력을 쥔 사람을 두려워하여 더욱 의뢰하고, 그런 가운데 있는 교회들과 사역자들조차도 돈을 쥔 사람을 무서워하고 의뢰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 시대에도 사도는 여전히 이르기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9절)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주의할 것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의하여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 목숨이 한 그릇 식물(食物)로 말미암아 비로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도록 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그런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음식을 공급하는 돈을 사랑하게 만들고, 그 돈을 쥔 사람을 무서워하여 어쩔 줄을 모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 정권의 참담하고 한심한 부패와 난맥상, 그 가운데 엮여진 무수한 사람들의 퇴행들은 바로 그처럼 철저하게 돈을 사랑하며 사람을 두려워하는 모습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에서 언급하는 구약의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과 히브리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사도 바울, 그리고 그 행실의 결말로 그들의 믿음을 보인 야고보와 스데반과 같은 성경의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사실 바로 그 교훈 외에 어떤 교훈에도 끌리지 않음으로써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여전히 동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 이미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변치 않는 진리의 교훈에 더욱 착념하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시대, 그리고 그런 정권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더욱 소망하며 바라보아 기도하시기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하며 축복하는 바입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