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끝은 당신의 순종을 확인하는 곳이다"

구리시가 기존의 베드타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첨단 기업 자족도시,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고 한강변의 지리적 이점을 통한 워터파크 스마트도시와 고밀도 개발 콤팩트 시티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리시가 기존의 베드타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첨단 기업 자족도시,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고 한강변의 지리적 이점을 통한 워터파크 스마트도시와 고밀도 개발 콤팩트 시티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라봄의 저자 한명철 목사의 책을 읽다가 한 문장에 머물러 있다. "땅 끝은 당신의 순종을 확인하는 곳이다." 20003월 신대원을 졸업하고, 3월 구리시 지하에서 보증금 9백만원, 월세 70만원으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IMF의 찬바람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해 한강변 토평동 벌말 지역으로 이전했다.  23년전 구리시 토평동 지역은 허허벌판이고, 강변북로가 연결되지 않는 참으로 불편한 곳이었다. 차량도 없고, 도로도 없고, 아파트도 없고, 사람도 없고, 주택도 없고, 식당도 없고, 모든 것이 없었다. 오직 들판에는 비닐하우스와 파밭과 배나무만이 넓은 들판을 채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매일, 매달의 순간이 항상 땅 끝이었다. 일상의 루틴은 은행이자, 교회유지 및 가정생활을 위해 늘 생존권에 시달렸다. 사명이란 거창한 비전에 뜨겁게 던지는 인생이 아니라 하루하루 적자생존의 정글 같은 시대를 살아내는 것이 숙제이고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늘을 쳐다보며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을 가꾸고, 찬이슬을 맞으며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수없는 나날들을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채웠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날마다 땅 끝에서 순종을 배우는 훈련의 시간을 주셨다. 그래서 심령이 강건한 축복을 선물로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습관이  몸에 베여 목양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5일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전국 5개지구 8만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발표했다. 이 중 수도권에는 구리토평2지구를 후보지로 선정했다. 구리토평2지구는 한강변 약 292만㎡(88만평) 면적에 주택 1만8500가구가 들어선다.
전문가들도 이번 발표의 최대 관심지는 구리시라고 입을 모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구리시는 사실상 서울의 26번째 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면서 “3기 신도시 어느 곳보다 뛰어난 입지에 사실상 강동생활권과 다름없다”고 호평했다.

오늘 국토교통부로 부터 한강변 개발을 위한 주민의견청취를 요청하는 공문서를 받았다. 지금은 아주 매력적인 한강변 땅이며, 경제적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개발제한구역이라 구리시도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15년 이상 개발 계획이 진행되었지만 늘 무산되었다. 주변신도시는 전부 개발이 완료되었는데, 입지 조건이 가장 좋은 토평동 한강변은 지금까지 70년대의 모습 그대로 놓여있다. 오늘 개발계획에 관해 말도 많던 한강변 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개별 공문서를 받았다. 공문서를 들고 성전에 들어가서 읽고 또 읽었다. 오늘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시간들은 한강에 펼쳐질 교회의 미래를 놓고 수없이 상상속의 건물을 짓고 또 짓고 그런 반복의 시간이었다.

23년 사역의 장은 늘 땅 끝이었다. 그 땅 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순종과 온전한 헌신으로 순간순간을 채웠다. 이것 말고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능력이 없었다. 순종과 헌신은 내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인것 같다.

늘 재정적인 어려움은 일상이었다. 생존권의 문제는 모든 개척교회가 짊어져야할 숙명인 것 같다. 개척 10년째 예배당이 협소하여,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창고를 개조하여 교회예배당으로 사용했다. 창고를 예배당으로 리모델링하여 완성한 날 시청에서 40여명의 철거반들이 와서 교회당 내부를 부숴놓고 갔다. 그날 밤 부서진 교회내부에 앉아 망연자실하여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은 잊혀 지지 않는다. 2억이란 돈을 빌려서 공사를 했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개발제한구역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문제도 믿음으로 잘 견디고 이겨냈다.

다음세대 교육을 위해 국제대안오후학교를 개교했다. 미국에 한명을 유학 보내는데 매달 5백 만원이 들어간다. 그 비용을 내가 드려, 외국 선생님을 교사로 채용하였고, 외국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교육만이 무너진 사다리를 복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교육철학이었다.

개척 후 15년간 본국제신학교를 운영하였다. C국에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 리더를 훈련시키는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한 달에 두 번, 월요일 아침에 첫 비행기를 타고 금요일 철야예배 전에 교회 도착한다. 한 주는 매일 강의할 교제를 쓰고, 한 주는 신학교 학생들을 가르쳤다. 쉬지 않고 그 사역을 반복했다. 주님이 에너지를 주셔서 40대를 신바람 나게 선교에 올인 할 수 있었다.

8년 전 한국의 선교와 전도의 바람이 식어가는 것을 보고 본헤럴드신문사를 창간했다. 종이 신문은 곧 종말을 고한다. 앞으로는 인터넷모바일 신문시대가 올 것을 예측하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언론에 뛰어들었다. 정말로 교회개척처럼 맨땅에 해당했다. 비판적인 언론들은 한국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문제집단으로 매도했다. 그런데 그 내부에 들어가면 정말로 좋은 교회, 사명 따라 헌신하는 수많은 좋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많다. 그 아름다운 것을 알리려고 언론을 시작했다. 문제가 있지만 교회가 답이다. 성경이 지식의 근본이다. 그 원리는 바뀌지 않는다. 가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원리는 동일하다. 원리는 원칙이고 기준이다. 바로 성경이 세상의 기준이며 원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언론을 시작했다. 이것도 자비량으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한국교회 최초로 공유교회를 시작했다. 지금은 주일에 4교회가 시간을 달리해서 예배를 드린다. 교단도 다르다. 목회자의 나이도 다르다. 성도들의 구성원도 다르다. 건물 공간 나눔 선교는 건강한 공교회신학만 있다면 모든 교회가 할 수 있다.

본푸른교회 12광주리북카페
본푸른교회 12광주리북카페

교회가 작다고 목사를 작은 목사로 보는 편견이 많았다. 교회가 크면 모든 것이 다 훌륭하고, 교회가 작으면 목사의 실력도 인품도 능력도 없다고 보는 어리석은 성도들도 많다. 그런 편견과 비교의 벽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교회가 작기에 큰 교회 다니는 성도들에게 주눅이 드는 성도들도 보았다. 어떤 성도들은 교회가 작아서 우리 아이가 이곳에서는 배울 것이 없어 큰 교회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큰 것의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단지 건물이 기준이었다.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들은 누구나 경험한 이야기들이다.

개척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본푸른교회에서 끝까지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반드시 성장이란 기쁨을 주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런 믿음의 꿈들이 모여서 참으로 많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다.

오늘밤 히스기야왕이 생각이 났다. 히스기야왕이 앗수르왕의 협박 편지를 받고, 그 편지를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왕하19:14) 기도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19:16)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나도 국토해양부에서 보낸 공문서를 펴놓고 성전에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다시 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 심장은 요동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실 귀한 사역을 상상해본다. 수 많은 시간 그림을 그리고 말해왔던 꿈들을 담을 건물을 그려왔다. 이제 몇 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땅 끝에서 순종을 배웠다. 그리고 헌신으로 채웠다. 순종과 헌신의 결과물들은 나의 작은 이력서로 남았다. 그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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