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사도바울은 궁핍과 환란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면서 디모데를 파송했다.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며,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소개한다. 디모데는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일꾼이 되었다. 디모데를 통해서 얻는 교훈이 있다.

첫째는 누구나 복음 안에서 자라면 인물이 된다. 환경이 인생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복음안에서 뿌리를 내리면 존귀한 자로 성장하게 된다.

둘째, 디모데가 살고 있었던 헬라문화권과 21세기 오늘 한국의 상황과 사다리를 놓으면, 한국의 이주노동자와 유학생들이 240만명이 된다. 한국에 이주노동자 500만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많은 다문화가정을 볼 것이다. 그들을 편견의 눈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보라. 우리 앞마당으로 걸어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선교의 동역자로 보라. 그러면 한국교회의 길이 보인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란가운데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교회가 환란과 궁핍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보고 바울은 이제 숨을 쉴 수가 있다고 한다. 마음에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1. 사도바울의 마음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살전3:10). 10절 말씀에서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발견한다.

1)사도바울은 주야로 기도했다(10).

성도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위해 주야로 심히 간절히 간구하였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에 열심히 있으나 지식이 부족하였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지식이 부족해서 환난 가운데 넘어질까 봐 마음을 조아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리더의 모습이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 성도에게 편지를 쓰기를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9,10).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하늘보좌로 올라가신 주님께서도 날마다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우리는 연약하다.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은 도우신다. 때로는 삶에 찌들 여서 무엇을 구해야할지 모를 때가 많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와 상황을 아시기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신다. 부모님이 자녀의 아픔과 어려움을 아시고 자신이 아픈 것처럼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당신의 가슴을 찢으며 탄식하며 울부짖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 그런 마음으로 친히 간구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누가 내일도 아닌데 친히 자기 일처럼 간구할수 있을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중보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미움보다 주님의 사랑이 더 크면, 기도할 수 있다.

사무엘선지자는 사사, 제사장, 선지자였다. 사사는 침략자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군사적 지도자이고,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고, 예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자 역할을 감당했다.

사무엘이 공적으로 은퇴를 선언 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삼상12:23-25).라고 말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 영적지도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본다. 사무엘 선지자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가를 알게 된다. 공직에서는 은퇴하지만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영적 어른으로서의 자리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무엘 선지자가 보여준 영적 어른으로서의 삶이다.

 

2)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10)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에 열심히 있으나 지식이 부족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부족한 믿음을 보충하기 위해 주야로 간구한다. 데살로니가에 가서 얼굴을 보고 직접 신앙을 견고하게 세우기를 원하고 있다.

지금은 교육의 방식이 다양하다. 면대면 강의, 시공간을 초월해서 하는 실시간 영상 교육, 유튜브로 제작하여 교육을 하거나, 책이나 글을 써서 이메일, 카톡, 실시간 영상교육 등 교육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21세기 교육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당시만 해도 바울이 성도를 교육하는 방식은 두 가지 밖에 없다. 직접 얼굴을 보고 교육을 하거나, 서신을 보내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식이 부족했다. 성경지식이 부족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지식으로 보완되면 그 무너지지 않는다. 의심이 들지 않는다. 환란과 핍박을 당할 때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올바른 성경 지식입이다. 믿음의 내용을 채워가는 것이 지식이다. 지식이 없다면 부르짖는 소리가 공허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에 내용을 채워야 진짜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 감당이 가능하다.

 


우리의 뇌에 지식을 쌓으면 어떤 이점이 있는가?


(1)지식과 지혜의 관계

지식과 지혜는 한 나무이다. 지식의 열매가 지혜이다. 지식과 지혜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wis-dom, 智慧)라는 뜻의 히브리어 원어는 호크마이다. 호크마는 지혜, 명철, 현명함, 다양한 학식, 신중함, 사려 깊음, 능숙함, 유능함 등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소피아’(sophia)라고 불렀다. 소피아의 기본적 의미는 지혜로움’, ‘능숙(노련)’, ‘’현명(영리), 탁월한 지식이나 재주 혹은 능력이나 학술 등을 두루 말할 때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지식의 최고봉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이라고 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했다. 지식과 경험의 총합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빚어져서 참된 지혜로 나타난다.

성경에서 참된 지혜란 구원에 이르는 지혜, 즉 복음의 진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참된 지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위로부터곧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참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하는 것이다.

 

(2)지식의 총합이 쌓이면 삶을 대처하는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지식의 총합이다. 지식이 없이 지혜는 없다. 성경은 최고의 지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지혜가 생긴다. 지식은 배움이다. 배움은 축복이다. 배움은 영적 정신적 관계적, 정서적 살을 찌운다.

인류의 성장과 발전에는 배움은 필수적인 것이다. 지식이 없이는 인류는 발전하지 않는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교육 없이는 미래는 없다. 현실을 극복하는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열어가는 힘도 교육이다. 교육을 포기하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지식은 교육을 통해서 얻는 열매이다. 교육을 포기하면 지식은 쌓이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식이다. 새로운 지식을 계속 담게 되면 생각이 늙지 않는다. 대처 능력이 탁월해진다. 이렇게 지식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노년기의 지혜의 최고봉은 마지막 단계에서 빛을 발휘한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가 참 길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면 좋은데, 오랜 시간 병마와의 힘든 싸움, 재정적 어려움, 정서적 외로움, 기능상실로 절망하거나 진절 머리를 내는 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이 시간이 오히려 무너짐의 시간이 아니라 임무의 완결, 온전함, 고결함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어디서 생길 수 있을까?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 순간 그 너머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에서 나온다.

 

(3)지혜로운 사람이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운 환경을 대처하는 능력을 말한다.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심리적 기능을 되찾는 회복탄력성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은 지혜와 연결된다. 지혜는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지혜란 우리가 배운 지식과 경험과 모든 정보들이 농축이 되어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융합하는 능력을 말한다. 지혜란 단순히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지식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실제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는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 지식이며 능력이다.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분들에게 젊은이들보다 회복탄력성이 뛰어나다. 회복탄력성은 지혜에서 나온다. 지혜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는 시기 전후에 큰 역할을 한다. 나이 듦의 과정에서 종교는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준다. 나이 듦의 과정에서 회복탄력성이 없으면 한 번에 영적,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관계적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긴 어둠에 갇혀 홀로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다가 쓸쓸하게 마무리 하게 된다.

 

(4)지식은 인간의 뇌를 더 성장시킨다.

지식이 쌓이면 생각이 자란다. 그리고 무의미한 삶을 버리고 목적 있는 삶을 추구한다. 목적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인지 장애가 적고,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 한결 양호하고, 심장마비나 뇌졸중 발생이 적고, 더 오래 산다, 이런 현상은 모든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목적은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며, 더 나아가 삶을 보호'해 준다.

나이 듦의 과정에서 목적 없이 산다면 긴 무너짐의 시간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 시간은 고통 그 자체이다. 목적 없는 시간은 인간의 뇌세포를 죽여 가며 성장을 멈추게 한다. 젊은이나 나이 들어가는 분들이 하루의 시간이 고통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사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강한 목적의식과 더불어 지식을 쌓아 가면 인간의 뇌는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장 한다고 한다. 목적이 없이 사는 분들과 배움을 포기한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식은 더 유연한 사고, 창조적 발상,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한다. 계속 성장하도록 한다.

삶의 현실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순간이 있다. 그러나 목적과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휘어질지 몰라도 부러지지않는다. 회복탄력성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에 대처하고, 역경 뒤에 다시 일어나거나 균형을 되찾는 능력을 뜻한다.”

회복탄력성은 지혜에서 나온다. 지혜는 경험과 지식의 총합이다. 최고의 지혜는 위로부터 주어진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 속에 지혜는 빛나게 된다.


2.사도바울의 권면_피차 더욱 사랑하라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12).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먼저 실천하고 성도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도록 권면하고 있다. 나조차도 사랑을 베푸는 것에 인색하면서 세상에 사랑이 없음을 한탄하지 말자.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5:12).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6,8).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내어준 사랑이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이 하늘의 모든 권세와 능력과 위엄과 영광을 버리고 이땅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다. 영적 존재가 인간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이 낮아지신 것이다. 이것은 사랑 때문이다.

성자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과 상처와 아픔과 병들의 장벽을 다 허물어버렸다. 성자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던진 십자가의 사랑이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그리고 먼저 주님을 알고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죄악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찬양하며 예배하며 생명의 빛으로 감싸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먼저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그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전후 70년 만에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또한 복음의 장자 나라가 되었다.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더 베풀고 살아야 한다.

절제는 소극적 절제가 있다. 아껴 쓰는 것이다. 절약하는 것이다. 적극적 절제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마음껏 의롭게 베풀고 사는 것이다. 먼저 더 큰 은혜를 받은 우리가 더 손을 내밀고 사랑을 베풀면 세상은 그 만큼 따뜻해진다. 세상이 왜 이렇게 인색하냐?, 이기적이냐? 따지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손을 내밀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3. 바울의 소원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3).

바울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주님이 지켜주셔 야지만 마음도 교회도 가정도 일터도 지켜지는 것이다.

 

(1)정금 같은 굳건한 마음을 주소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는 공동체였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의 자리는 환란과 궁핍이다. 고난받는 자리이다. 믿음을 지켜내기가 참 힘들다.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심령이 강건해야 한다. 마음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는 안 된다. 마음이 반석같이 견고해야 한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구술종합시험 주제를 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네가 복이 있는 사람이고 축복했다. 그리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라”(16:18,19).

너는 베드로라. 베드로는 헬라어로 반석‘, ’이라는 뜻이다.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교회는 믿음의 반석위에 세워야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위에 세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원수마귀사탄이 공격해도 파괴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하게 복음의 능력을 회복한다.

네게 천국 열쇠를 주리라. 반석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하늘의 문이 열린다. 연약한 믿음 가지고는 이 어둠의 세상을 뚫고나갈 수가 없다. 강력한 믿음, 반석 같은 정결한 믿음만이 삶의 자리를 세울 수 있다.

반석같은 견고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100% 사랑하는 것이다. 예배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어떤 고난도 뛰어넘는 은혜를 받는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가 무너지면 내안에 틈이 생긴다. 틈을 만들어주면 어둠이 삐 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내 안에 주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마음이 연약해지고 환경앞에 나약해지고 너머 진다. 마음을 강건하게 하라.

 

(2)정결하고 온전한 성도로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재림의 주님과 함께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마음의 소원이다.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정결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서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마음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지고 몸의 행실이 지져 분해지고 타락과 부패된 곳에 던져버린다. 성도의 목표는 거룩이다. 성결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다.

거룩함과 지져 분함과의 차이가 있다. 미혹의 영 마귀는 거룩한 성도를 싫어하고 지져 분한 것을 좋아한다. 더럽고 지져 분한 것은 마귀가 좋아한다. 하나님은 깨끗한 분이다. 거룩한 분이다. 정결한 분이다. 정결한 성도를 좋아한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과 유황으로 심판 당했다. 그 땅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성행했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원했다. 그 땅에 의인 10명을 찾지 못해서 그 땅은 불과 유황으로 심판 당했다. 하나님이 찾은 사람은 의인이다. 의인을 통해 이 땅을 거룩하게 세워가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씻음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천국백성의 삶의 모습은 주님이 재림하실때에 거룩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가 갖추어야할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와 함께 재림하실 때에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한다. 거룩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지져 분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주님 앞에 설 때 성도는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도가 입어야할 옷은 세마포이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였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19:8).

신랑을 맞이할 신부들이 입을 옷은 세마포이다.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의 혼인잔치에 신부로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굳게 가져야 한다. 옳은 행실로 살아야 한다. 마음이 약하면 행동이 무너진다. 이 시대는 마음이 믿음으로 말씀으로 굳건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믿음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 마음을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 예배로 무장해야 한다. 예배는 날마다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마음은 음식으로 굳건 해지지 않는다, 마음은 은혜로서만 굳건해진다. 은혜를 날마다 공급받으면 마음이 굳건해지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마음이 청결해진다. 마음이 부요해진다. 은혜를 날마다 받으라. 날마다 경건생활에 자신을 드려라. 그러면 마음은 굳건하게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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