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을유문화사
○ 유현준 지음

아나돗교회 담임 정이신 목사.
아나돗교회 담임 정이신 목사.

문화는 이러한 에너지 흐름의 과정 중에서 생명이 만들어낸 2차 부산물이다. 둥그런 행성의 모양, 자전축의 기울어짐, 자전과 공전,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는 지역마다 다른 ‘지리’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지리적 배경은 각기 다른 ‘기후’를 만든다. 각기 다른 기후는 각기 다른 ‘환경적 제약’을 만든다. 이런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인간 지능의 노력이 ‘건축물’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비가 와서 지붕을 만들었고, 추우니까 벽으로 방을 만들고 온돌을 만들었다. 건축은 기후가 주는 문제에 대한 인간의 물리적 해결책이다. - [책 내용 중에서]

책을 통해 유현준이 쓴 건축과 공간에 관한 통찰을 읽으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의 사고에 집이 돼주는 게 언어고, 그 언어를 만드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가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공학에서는 컴퓨터의 용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합니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쓰는 가정용 개인 컴퓨터(PC)도 병렬로 연결하면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컴퓨터처럼 케이블을 통해 병렬로 연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의 뇌를 연결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케이블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언어’입니다. 언어가 만들어지고 발달하면서 인간은 주변 사람들과 높은 수준의 의견 교환을 하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집단 두되 간 시너지 효과가 커지게 됐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뇌와 내가 가진 뇌를 병렬로 연결하는 게 언어라면, 다른 시대 사람이나 먼 지역 사람들의 뇌와 내가 가진 뇌를 병렬로 연결하는 게 ‘문자’입니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문자는 회계 장부 정도의 기능만을 감당했지만, 시대를 거듭할수록 추상적인 개념을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언어와 문자를 통해 인류는 문명의 발달속도를 가속화 할 수 있게 됐는데, 이로 인해 등장한 게 ‘건축’입니다. 언어와 문자를 통해 초고도로 집약된 문명사회로 전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건축이 오늘날과 같이 사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정도로까지 발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언어와 문자의 발생 배경과 이게 담고 있는 생각이 다르듯, 문화권에 따라 건축에 대한 이해도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서양은 벽 중심의 건축물을 지었고, 이를 통해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물을 지었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모두 농업에 기반을 둔 문화였지만, 주식이 쌀과 밀이어서 이런 차이가 만들어졌습니다. 동양은 물이 많이 들어가고 노동력이 집약된 공동체 중심의 벼농사를 지었고, 서양은 상대적으로 물이 적게 들어가며 개인이 가진 노동력 중심의 수확이 가능했던 밀을 재배했습니다. 그리고 동서양의 건축물에는 이런 생각이 반영돼 있습니다.

동양권에서도 한국과 일본, 중국의 기후가 다르기에 한국과 일본, 중국은 다른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온돌로 지어진 한국의 건축물은 단층으로만 지을 수 있기에 2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했습니다. 한국과 달리 2층 이상의 건물을 지었던 일본과 중국은 상대적으로 집약적인 도시문화를 만들어냈지만, 한국은 이런 면에서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도시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책에서 저자가 최종적으로 말하는 건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가 서양으로 건너가 유럽의 문화를 바꿨듯이, 서양의 건축물이 지닌 좋은 것들을 받아들여 우리도 융합 공간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서양의 건축 문화 중에 우리가 빨아들여야 할 게 있다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새로운 공간과 생각을 창출할 수 있는 건축 문화를 시도하자는 게 지은이의 주장입니다.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건축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건축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을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말하는 게 있습니다.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를 넘어서서 저자의 말처럼 융합 공간을 통해 문화 변종을 탄생시키면, 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사의 흐름은 융합을 주도하는 시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에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없는 사실을 통해, 이런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고쳐야 할 영역을 정확히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발견해야 할 신대륙은 유럽인처럼 대서양 건너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사는 공간이 지금은 불완전하기에 언제든지 좋은 것으로 바뀔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또 내가 사는 건축물이 다른 건축물과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벽에 구멍을 뚫어 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걸 디지털과의 융합을 통해 이어령(李御寧) 선생이 말한 디지로그의 세계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중력’이란 건축물의 관습에 눌려 그동안 찾지 못했던 건축물 간의 소통을,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통해 융합의 매체가 되는 마당으로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이게 융합 건축물을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신대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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